“국민이 통제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없다” -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슨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전임자 존 애덤스(John Adams)에게 보낸 편지에서 학생사회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어떤 단어가 적절할까. 나는 ‘무관심’이라 생각한다. 지난 2021년 12월부터 학생사회를 대표할 총학생회(아래 총학)는 빈자리로 남아있다. 게다가 2023학년도 1학기 중반엔 총학의 빈자리를 대신할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마저 구성되지 못했다. 총학의 부재가 마주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총학이 지니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은 쉽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참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면 이성적으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어떨까? 구성원들 사이에서 건설적 논의가 이뤄지는 것이 이상적인 공론장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비판을 빙자해 실상 비난을 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정당한 비판을 비난으로 듣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날카로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미움을 낳기 쉬운 까닭이다. 이성적 비판이라도 어떤 과업을 추진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간단하다. 과업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고려 사항은
처음 당구장에 간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첫 면도로 인해 아직 아린 피부와 그 피부에 닿는 당구장의 아른한 담배 연기는, 마치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아저씨 무리를 피해서 가장 구석에 자리 잡았다. 난생처음 잡아보는 큐대를 제멋대로 들고, 우리끼리만의 규칙을 정해 점수를 계산했다. 짜장면의 고소함과 담배의 씁쓸함, 아저씨들의 피곤함과 우리들의 천진함이 얽혀있었다. 그리고 그곳 천장에는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 커다란 팻말 하나가 달려있다. 새빨갛고 굵은 궁서체의, 300 이하는 맛세이 금지.‘
우리대학교 미래캠 「총학생회칙」의 개선 방안에 관한 보도를 준비할 때다. 당시 학생사회에 오래 몸담았던 한 취재원은 “학생회칙은 기본적으로 성문법주의를 따르나, 모호한 조항의 해석에 있어서는 앞선 사례를 중시한다”고 회칙 해석의 방법을 설명했다. 학생사회 제도 전반에 있어 선례는 ‘판례’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학생사회의 의결과 집행 하나하나가 전부 판례가 돼 후대에 남는 족적이 된다. 하지만 지난 1학기 우리대학교 학생사회는 후대에 떳떳한 족적을 남겼을지 의문이 든다.지난 2022년 12월, 우리대학교 미래캠 학생사회는 횡령 및
지난 2022년 9월, 나는 취재를 위해 청년의 날 축제 현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청년들은 열정, 패기, 희망, 도전 등의 단어로 똘똘 뭉쳐 있었다. 나에게 청년은 그런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날의 이미지는 내가 그려낸 것에 불과할 뿐, 현실은 더 어두웠다.청년의 날 축제 이후 몇 번의 취재를 거치면서 나는 사회에서 소외된, 더 나아가 고립된 청년들을 만났다. 내가 지금까지 구멍 뚫린 고깔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고깔을 벗고 보니, 그제야 나의 시선 너머의 청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류 사회에서 밀려
“우리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됐습니다”“바이라인*이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신문사 기자들은 임기가 끝나면 후배들에게 이월서를 전하는 전통이 있다. 보도부 기자 생활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이 담긴 선배들의 이월서는 나에게 큰 감동이자 동기부여가 됐다. 이에 답장하고자 했으나, 답장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부기자 생활을 끝마쳤다. 그렇게 보도부 기자로 지낸 지 한 학기가 지났다. 지난 한 학기 동안 나는 바이라인이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작성해 왔나. 수습기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름 기자로서의 지론이 있었다. 누구
지난 2015학년도 입학 이후 학생사회에 오래 있었다면 꽤 오래, 많은 활동을 했다. 확대운영위원으로 1년, 총학생회 집행위원회로 반년, 거기에 굵직한 활동은 없었다지만 단과대 집행위원회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한 것까지 합치면 학생사회에서 활동해본 학생 중에서도 중위값 이상은 하지 않을까. 심지어 이젠 「연세춘추」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니 어떤 위치에 있든 학생사회를 떠나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나에게 떠나지 말라고 강제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선거 출마나 동업 제안은 있었지만 강제는 아니었다. 그럴만한 인물도 아니거니와 입대나 취업을 핑계로 물리친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군대 다녀오고서도 꽤 오래 활동을 했으니, 잡는 사람은 없어도 할 만한 게 학생사회인 것 같다.학생사회에서 일하던
정부서울청사는 싸늘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단상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빗발쳤다. 지난 11월 28일 교육부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 소재 16개 대학에 정시 비율 40% 이상을 권고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투명성 증대방안도 발표했다. 기시감이 든다. 대입제도 변화는 항상 ‘수난사’였다. 현재 중1부터 고2까지 모든 학년의 대입제도가 다를 정도다. 이번엔 특히 소위 ‘인서울’ 대학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정해주기까지 했다.흔히들 정시가 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시험을 치른다. 여기엔 누군가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다. 반면 학종을 비롯한 수시는 정성평가다.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금수저들의 등용문이라고도 비난한다.정시와 수시의 비율
지난 10월 1일 발행된 1면 기사 ‘두 캠퍼스 이야기’가 모처럼 학내외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한주 내내 캠퍼스 간 통합 여부를 궁금해하는 지인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독자들의 소중한 관심과 별개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마음을 짓누른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차마 밝히고 싶지 않다. 다만, 수많은 익명의 댓글들은 혼란을 야기한 학교본부가 아닌 원주캠 학생들을 힐난했다.4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우리대학교 자치언론사 「연세통(通)」은 『한겨레21』과 함께 기획 기사를 발행했다. 발단은 입학 형태와 캠퍼스에 따라 학생들을 서열화한 온라인 커뮤니티 ‘세연넷’의 글들이었다. 게시물을 그대로 인용한 기사 제목은 분명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수긍
고작 신문 한 면의 반을 차지하는 기사였다. 무더운 밤 13시간을 꼬박 새운 나의 노력은 연세춘추 1817호 반 면에 담겼다.동행한 사진기자는 즐겁고 보람찬 취재였다고 말했다. 6시간 내내 쉼 없이 셔터를 눌러 겨우 사진 한 장 지면에 실은 사람의 말이었다. 13시간의 노동이 신문 반 면에 담긴다. 6시간의 노동은 사진 한 장에 담긴다. 연세춘추 기자들은 이렇게 신문을 만들고 있다.발품 판 시간만 13시간이다. 기사 기획과 실제 작성까지 고려하면 일주일을 온전히 쏟았다. 그러나 생색을 내려는 건 아니다. 부족함 투성이인 기사지만, 그저 내가 전하려는 현장의 목소리, 삶이 온전히 담기길 바랄 뿐이다. ‘사실’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통해 ‘진실’이 전달되길 원한다. 기술이 발전해 노동을 대체할 수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나는 체 게바라라는 혁명가로 인해 연세춘추에 들어왔다. 체 게바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아버지가 권하신 『체 게바라 평전』을 접했을 때다. 안정된 의사라는 자리를 버리고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혁명에 뛰어든 그는 쿠바에서 혁명에 성공한 이후에는 안정적인 자리를 또 다시 버리고 제3세계로 또 다른 혁명을 벌이려 했다. 이 사실 자체에도 당시의 나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의사와 혁명가, 국립은행총재, 외교관 등 한 사람이 일생에 하나 가지기도 힘든 직업을 여러 개 가지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내가 하나의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가치관을 가지고 나도 체 게바
무력감.지난 봄, 대학언론사의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이다. 온몸으로 밀어내며 글을 써봐야 바위 같은 부조리는 손톱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가 세상을 향해 힘을 갖는 것은 고사하고, 몇백 명에게 읽히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마저도 종종 들었다.훈수질.흔히들 미약한 상태를 바둑에 빗대 미생(未生)이라고 표현한다.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완전하게 살아있지 못한 상태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미생이라는 비유조차도 과분했다. 바둑판에 돌 하나 놓지 못하면서 멀찍이서 아무도 안 듣는 훈수질이나 재잘거리는 것 같았다.본령(本領).지난 여름, 너무 식상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물었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무엇인가. 식상한 자문
나에게는 남들이 보기에 독특한 취미생활이 있는데 바로 뉴스 시청이다. 인터넷 기사를 통한 뉴스 소비가 아닌 특정 매체의 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매일 보는 것이다. 바쁜 일과 때문에 못 볼 때는 집에 돌아와서 다시 보기로 본다. 그러던 와중에 자연스럽게 매일 접하는 뉴스 미디어가 어떤 방식을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지적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들어온 ‘연세춘추’였지만 기자생활에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사진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 내내 취재를 한 적도 있었고 신촌캠퍼스에서 국제캠퍼스로 사진을 찍으러 간 적도 많았다. 바쁜 업무 외에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학과 공부와 대학교 생활을 함께한 친한 친구들이 군대에 입대한 점들은 심리적 부담이 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지적 호기심보단 삶의 피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현 정부의 헌법 유린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난 몇 달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최순실 개인에게로 쏠린 경향이 있지만, ‘최순실 게이트’의 진짜 몸통은 대통령 그 자신이다. 아무 자격이 없는 비선실세에게 국가 기밀을 넘기고 개인의 이권을 위해 정부 부처와 각료들을 내세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결과다.이렇듯 국가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과 피로감이 국민들을 덮쳤는데도 대통령은 ‘영혼 없는 사과’만 반복하고 있다. 대국민담화를 통해 ‘누구라도 잘못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대통령 본인의 책임에 대한 언급은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의 사과며, 명백히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비선실
최근 개봉한 영화들 중 흔히 흥행에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한국 영화들을 살펴보자. 우선 떠오르는 것은 ‘대중은 개, 돼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내부자들』, 다양한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한국전쟁의 참상과 함께 당시 주요 인물들을 다룬 『인천상륙작전』 등 주로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영화들이 당시 사회를 제대로 조망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해볼 만하다.최근 영화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시 유행하고 있는 말이 ‘국뽕’이다. 국뽕이란 국가의 자부심에 심취해 무조건적으로 국가를 지지하려는 성향을 나타내는 용어로, 인터넷상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사실 국뽕이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는 대중문화
오는 12월이면 춘추 기자생활과 함께 길었던 나의 대학생활이 끝난다. 학생 신분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거의 평생에 걸쳐 교육기관을 전전해 온 내게 자못 낯선 일이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보면서, 학생의 입장에서 느꼈던 대학 교육에 대한 아쉬움을 정리해봤다.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대학에 진학하면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만나게 될 줄 알았다. 외국영화에서처럼 교수님과 현안을 놓고 토론하고, 시험 답안에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강의를 기대했다. 상상 속의 대학 수업은 암기로 점철된 소위 ‘주입식 교육’에 신물이 나있던 내게 큰 로망이었지만, 현실은 이상과 사뭇 달랐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강도 높은 암기를 요하는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서술형 시험마
이번 호 제작에 115기 수습기자들이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내가 연세춘추에 입사한지 정확히 365일째 되는 날이었다. 설문지와 과제에 시달리던 수습기자 시절이 잠깐 머릿속을 스쳐가며, 문득 이제는 내가 이 수습기자들에게 과제를 내줄 차례라는 사실이 떠올라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동기들이 함께했다. 1년 전 바로 그곳에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애드바룬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우리는 어느새 1주년 케이크의 촛불을 같이 끄며 사진을 찍었다. 이 사람이 휴학을 했었더라면, 그 사람이 군대를 늦게 갔었다면, 저 사람이 면접 때 떨었더라면, 지금의 113기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연세춘추에 113기로 들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소속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아쉽게 당선에 실패해, 온라인
학과활동과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지켜보며 필자는 그들이 늘 부러웠다. 어딘가에 소속돼 그 활동에 대한 애착을 가지는 학생들을 보면 ‘나도 대학에서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저렇게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등학교 시절 방송부 아나운서 활동을 했던 나는 우리대학교에 입학해 방송부처럼 학교를 대표하는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응원단에 지원도 해보고, 총학생회도 지원해봤지만 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그 곳에 들어가기에는 그 당시 필자의 무대담력이나 리더십 등이 여러모로 부족했다. 우리대학교 응원단 단장의 멋진 응원사위를 보며 ‘저기가 내 자리다’라는 막연한 꿈은 그저 나의 허망한 생각뿐이었다. 하고 싶은 활동을 하지 못하고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채 갑자기 선택하게 된 군 입대
며칠 전, 수강하고 있던 수업에서 『비저블 이펙트』의 저자인 김동준 박사가 약 2시간 정도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다. 김 박사는 학생들을 둘로 짝을 짓게 한 뒤, 여러 단계를 거쳐 ‘서로가 생각하는 선물’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와 짝을 지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는 김 박사가 시키는 대로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 선물의 종류와 선물을 주는 방식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정리해 나갔다. 마지막에는 풍선, 색지, 실, 점토 등을 이용해 서로가 생각하는 선물을 실제 사물로 만들어보는 활동을 했다. 나의 짝이었던 친구는 나의 선물 준비 방식을, 즉 ‘예산에 맞춰 선물을 준비하거나 선물을 사기 위해 돈부터 모으는 행동’을 분홍색 돼지 저금통으로 만
“바쁜데 굳이 지금 그걸 해야 해?”, “대학생활을 좀 더 즐겨”. 지난 2013년 1학기, 대학을 입학한지 고작 한 달 정도 된 필자가 우리신문사 입사를 고민할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멋진 학과생활과 열정적인 외부 활동을 모두 하고 싶었던 필자는 그런 조언들을 깔끔히 무시한 채 우리신문사를 지원했고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거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학과생활은 완벽히 무너졌다. 학과의 모든 행사나 엠티는 신문사의 제작과 겹쳤고 과 친구들에게 필자는 ‘설문지 주는 애’라는 이미지가 전부였다. 무리한 욕심이 가져다 준 당연한 결과였다.그러나 필자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디어국 부기자가 된 후 재밌어 보이는 체험을 모두 해보고 싶은 욕심에 아이템 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