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 육찬우 기자(글창융경제/데이터사이언스·21)
보도부 육찬우 기자(글창융경제/데이터사이언스·21)

 

“우리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바이라인*이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신문사 기자들은 임기가 끝나면 후배들에게 이월서를 전하는 전통이 있다. 보도부 기자 생활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이 담긴 선배들의 이월서는 나에게 큰 감동이자 동기부여가 됐다. 이에 답장하고자 했으나, 답장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부기자 생활을 끝마쳤다. 그렇게 보도부 기자로 지낸 지 한 학기가 지났다. 지난 한 학기 동안 나는 바이라인이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작성해 왔나. 

수습기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름 기자로서의 지론이 있었다. 누구나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으나 대안 제시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기사는 건설적인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언론의 의무다. 해결 방안이 제시된 기사는 발전적인 담론 형성에 도움을 준다. 또한, 언론은 사안을 다각적으로 접근해 종합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일주일은 이를 위한 숙의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기사는 독자의 시각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나는 수습기자 과제 또한 이 기준을 적용해 수행했다. 

그러나 부기자가 되고 나서부터 내가 작성한 기사는 좋게 말해도 그 숙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시한 조건을 만족하는 기사를 내 역량으로 쓰기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매번 초고 마감 시간 안에 기사를 마무리하기 급급했다. 그렇게 제출한 기사에 숙의는 없었다. 기사의 부족한 취재내용과 얕은 인사이트는 매주 월요일 평가회의 시간에 변명만 늘게 했다. 과연 내가 연세사회에 필요한 말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당장 지면을 채우기에 필요한 면피용 글을 작성하는 건지 고민하게 했다.

시간에 쫓겨 글을 써내고 있자면, 나는 마치 기자가 아니라 생산 라인에 배치된 노동자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노동자는 컨베이어벨트 위의 부품이 생산 라인을 떠나기 전까지 모든 물건을 가공해야만 한다. 생산자로서 내 조립라인의 불량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내 할당을 채울 필요가 있었다. 마치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장면처럼 나 역시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나에게 이러한 과정은 기자는 저널리스트임과 동시에 콘텐츠 생산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우리신문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산업적인 측면에만 매몰된 기자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보도부 기자로 지내며 길지 않은 취재 기간과 부족한 역량, 순탄치 않은 취재 과정을 경험하다 보니, 그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때 내가 미워했던, 형편없어 보이는 글을 내보내며 가끔 질타도 받는 그들도 분명 그들만의 저널리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면은 우리신문사의 얼굴이다. 자신만의 저널리즘을 펼쳐온 우리신문사 동료기자 모두에게 빚을 져 왔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나에게는 기자로서의 시간이 남아있다. 미디어 산업의 구조 속 나만의 저널리즘을 실현할 수 있을지 여부는 내 역량에 달렸다. 내가 미워했던 과거의 기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내 임기를 마치기 전까지 진짜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바이라인(byline): 기사의 시작이나 끝에 해당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적은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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