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데 굳이 지금 그걸 해야 해?”, “대학생활을 좀 더 즐겨”. 지난 2013년 1학기, 대학을 입학한지 고작 한 달 정도 된 필자가 우리신문사 입사를 고민할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멋진 학과생활과 열정적인 외부 활동을 모두 하고 싶었던 필자는 그런 조언들을 깔끔히 무시한 채 우리신문사를 지원했고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거란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학과생활은 완벽히 무너졌다. 학과의 모든 행사나 엠티는 신문사의 제작과 겹쳤고 과 친구들에게 필자는 ‘설문지 주는 애’라는 이미지가 전부였다. 무리한 욕심이 가져다 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필자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디어국 부기자가 된 후 재밌어 보이는 체험을 모두 해보고 싶은 욕심에 아이템 배분 때 무리하게 체험 기사만 많이 받았다. 부기자가 된 지 2주 만에 첫 체험 기사를 위해 떠난 충남 당진, 그곳에서 노숙까지 해가며 앞으로 기자 생활 앞에 남아있던 수많은 체험 기사들이 떠올라 우울해진 기억이 난다. 

이렇게 지독히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기자의 욕심과 실수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정기자 때였다. ‘정기자답게 일해봐야지’라는 욕심을 가졌던 기자는 한 주에 100매(보통은 많으면 한 주에 30매 정도 쓴다)를 쓸 계획을 잡았다. ‘한 주에 100매’. 매수가 기사의 전부는 아니지만 갖고 싶었던 ‘타이틀’이었다. 미친듯 바빴던 그 한 주는 기자의 욕심이 얼마나 대책 없는지를 잘 보여줬다. 그 때 필자가 내쉬었던 한숨에 왜 땅이 꺼지지 않았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매번 필자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벌인 일들을 치울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따라왔다. 그동안 학과 친구들을 많이 못 사귄 것처럼 욕심을 다 못 이룬 경우도 있었고 100매를 꾸역꾸역 채우며 욕심을 다 감당한 경우도 있었다. 결과가 어찌됐든 필자는 욕심 때문에 항상 후회했지만 이상하게도 욕심 부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기자로서의 생활이 얼마 안남은 상태로 지난 일 년 반을 뒤돌아보니 필자는 이제 한 때 혈기로 부렸던 욕심에 감사하고 싶다. 학과 친구들은 얼마 없을지 모르지만 끈끈한 신문사 동기들을 얻었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필자 홀로 무계획 여행뿐 아니라 여러 체험들을 해봤다. 또 정기자 때 미친듯 기사를 써보고 필자니 신문사 일에 대한 자신감은 늘었고 미디어국의 기사는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욕심은 필자를 성장시켰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사자성어를 필자도 안다. 지나친 욕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분명 독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이 열정과 도전에 그 뿌리가 있다면, 그래서 그 욕심이 언젠가는 스스로의 발전을 만들어낸다는 확신이 있다면 필자는 때론 과욕도 한번 부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곧 미디어국 부장과 사진국 부장을 겸임하게 된다. 부장 한 자리도 힘들다는 데 두 자리라니. 이번에도 하고 싶은 일들이라며 필자의 아직 젊은 피는 다시 욕심을 부렸다. 언젠가 욕심 때문에 후회가 될 수 있단 건 알지만 그래도 그것이 스스로를 성장시킬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필자의 욕심은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이고 이런 선택을 누군가 실수라 말한다면 필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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