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제작에 115기 수습기자들이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 내가 연세춘추에 입사한지 정확히 365일째 되는 날이었다. 설문지와 과제에 시달리던 수습기자 시절이 잠깐 머릿속을 스쳐가며, 문득 이제는 내가 이 수습기자들에게 과제를 내줄 차례라는 사실이 떠올라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동기들이 함께했다. 1년 전 바로 그곳에서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애드바룬을 하느라 정신이 없던 우리는 어느새 1주년 케이크의 촛불을 같이 끄며 사진을 찍었다. 이 사람이 휴학을 했었더라면, 그 사람이 군대를 늦게 갔었다면, 저 사람이 면접 때 떨었더라면, 지금의 113기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연세춘추에 113기로 들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소속과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아쉽게 당선에 실패해, 온라인 지원 마지막 날 급하게 연세춘추에 지원한 나는 필기시험 때문에 좌절해 면접도 가지 않을 뻔 했다.
이렇듯 천신만고 끝에 뭉친 113기는 사실 나에게 썩 좋은 시기의 그것은 아니었다. 원하는 대학에 갓 입학했던 나는 3월 중반까지만 해도 정말 열심히 과 활동을 하고 있었고 아직 많은 과 행사들과 새내기가 누릴 수 있는 특권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맘때에 연세춘추에 입사한 나는 과 엠티를 비롯한 각종 활동을 놓치고 말았다. 이런 상황과 연세춘추의 다소 빡빡한 틀에 내 역량 부족이 더해져 급기야 과 사람들과 멀어지기에 이르렀다. 서로 더 많이 만나고 어울릴수록 더 친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는 피상적이다’라는 말보다는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는 노력에 달렸다’라는 말이 더욱 와 닿았다. 실제로 그렇게 지속적으로 어울린 사람들을 보면 절대 피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관계에 이르렀고 나는 슬펐다. 분명히 더 친해질 수 있던 사람인데, 같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인데, 아쉬움에 몸서리쳤다. 최근에는 중앙 탁구동아리에 가입했다가 오래지않아 탈퇴했다.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탁구동아리 엠티에 가 있었을 것이다. 연세춘추라는 틀은 새로운 인연의 가능성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113기임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놓친 인연들보다 이 사람들이 더 좋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같이 수습 생활을 버텨나가고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고 고민을 털어놓고 우리만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고. 제작을 끝내고 한 잔 하기도 하고 기념일을 챙기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고 일을 같이 해나가고 여행도 가고.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연세춘추 생활을 버틸 수 없었다. 연세춘추가 없었다면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기에 애증이다. 어쩌면 113기에 인복을 다 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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