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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지기홍하늘(철학·19) 선 채로 죽은 우리 옆에서 꼬인 채로 산 덩굴들이 술렁인다 흙바닥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 공작새 꼬리깃의 셀 수 없는 눈들은 번갈아 깜박이고, 녹빛 눈물 흘리고, 먼지를 빼내려 속눈썹깃과 고군분투하고발바닥을 내려놓을 때마다 위이잉 하는 소음이 귀를 채운다 그걸 두려워하면 이 숲을 탐험할 수 없어 이제 거의 산지기가 된 너 나뭇잎 살랑이듯이 혓바닥을 움직여 내 손등을 핥아 주다가, 공작이 흘린 눈물 자국을 쫓아 오솔길을 발굴한다 그리고 그런 너를 쫓아가던 내가 맞닥뜨린 건 거대한 동굴 볕을 등지고 내리막길을
특집
연세춘추
2023.12.04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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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제작을 위한) 세미나 김흥준(정외·18) 등장인물 : 레몬, 고래, 기린, 하마 레몬 우리 극은 박수를 자주 칩니다. 박수의 크기는 이 정도이죠. 괄호 열고 박수를 친다 괄호 닫고. 짝. 금방 제가 박수를 친 것은 이 연극에 연극적인 요소를 삽입하기 위함입니다. 연극 제작을 위한 세미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연극은 실제 이 연극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세미나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현실과 연극이 잘 분간이 안 되는데요. 이건 분명히 연극이란 것을 알리기 위해 우리 극은 박수를 자주 칩니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박
특집
연세춘추
2023.12.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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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민수(시스템생물·18) “나는 비가 될 거야.” 7월 26일, 너의 생일이었다. 하늘은 어두웠고, 물방울보다는 물줄기에 가까운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샤워기 아래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너는 만취해 있었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분위기의 영향인지 너의 영향인지 다소 어지러웠다. 그런 폭우 속에서 우리는 적당히 작은 우산을 나눠 쓰고 호수를 보기 위해 걸었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너는 캠퍼스 안에 있는 호수를 꼭 봐야겠다고 억지를 부렸기에 나는 혹시나 네가 호수에 빠져
특집
연세춘추
2023.12.0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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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심사평정명교우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말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는 대학 내의 문학 활동이 썩 활발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열기 속에서 새로움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대학생 문학은 본격문학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들이 그런 대학생 문학의 ‘소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 다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들 속에 끓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고심은 자주 작위성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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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
2023.12.0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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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당선소감] 홍하늘(철학·18) 저는 항상 읽히려고 글을 쓰는데, 공모전에 내면 최소한 심사위원분들은 읽어 주시잖아요. 그냥 그렇게라도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게 신나서 여러 번 투고하다 보니 이런 큰 상도 받게 되네요. 인정받는 선배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브이, 완전 크고 귀여운 브이. ✌이 수상소감은 물론이고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정말 깊은 감사를 드려요. 기쁜 마음이 너무 커서 그것 말고는 별생각이 안 나네요. 여담이지만 이번 겨울에 저는 삶의 한 챕터를 마무리해서 예쁜 매듭
특집
연세춘추
2023.12.0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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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2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2023 정기 연고전 마지막 경기인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우리대학교는 0:3으로 아쉽게 패배했다. 살벌하게 맞붙은 전반전 우리대학교는 3-4-3 진형으로 나섰다. 공격수는 강민재(스응산·22, FW·10), 박건희(스응산·22, FW·9), 박호인 선수(스응산·21, FW·25)가, 미드필더는 최형우(스응산·20, MF·22), 하재민(스응산·21, DF·14), 장현도(스응산·22, DF·7), 박시영 선수(스응산·22,DF·2)가, 수비수는 장재혁(스응산·20, DF·5), 이승민(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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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박준화 이서준 기자
2023.09.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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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수상소감] 박초원(건축·18) 기뻤다. 그 뒤의 글자들은, 마음 속에 묻기로 한다. 언젠가 가 찾아오기 전에, 시詩로 환생하기를 바라며… 무언가 써지고 지워진 이유는,1. 세자면 끝이 없고,2. 말이 되는 순간 부정확해지며, (말의 필연이랄까,)3. 마치 별과 수프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실 말의 필연이랄까, 같은 말로 무책임하게, 말로써 할 수 있는 말의 자기 구원을 미루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구원이라기보다도 구원에 가장 근사한 값을 향해 수렴하는 태도를… 물론 그런 것을 믿
특집
연세춘추
2022.11.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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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심사평정명교우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응모작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시로서 평가받으려면 일반의지의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도약을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솔직한 감정이라고 생각한 게 꼭 솔직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현의 장르인 소설과 달리 시가 자기 심사의 표현이라는 널리 알려져 있는 정의에는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이 전제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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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
2022.11.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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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주영표지인(철학·17) 1. 나는 오늘도 달린다. 어제도 달렸고 내일도 달릴 것이고 지금도 달리고 있다. 예전부터 나는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누구나 특기 하나정도 가지고 있다면, 나의 특기는 달리기일 것이다. 달리기 선수가 되고싶은 건 아니다. 그냥 달릴 뿐이다. 언제부터 달렸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항상 달리고 있길래 나는 역시 언제나 달리고 있구나, 한다. 그래도 굳이 기억을 거슬러 보자면,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고, 아닌가. 그때가 아니었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대충 떠오르는 대로 말하겠다. 아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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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
2022.11.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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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빛이었다. 그래서 광속으로 다녔다. 그러다가 하루는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경찰에게 붙잡혔다. 과속했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보호구역은 시속 30킬로미터로 다녀야 하는데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다녔으니 제한속도를 3600만 배 넘긴 셈이었다. 빛은 범칙금 납부를 거부한 끝에 법원까지 가서 정식 재판을 치르게 됐다. 그리고 재판에서 졌다. 판사는 벌금을 내라고 선고했다. 시속 10억 8천만 킬로미터는 보행자여도 운전자로 간주하여 제재할 만큼 위험한 속도라는 게 검사 측 근거였다. “운전대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는데 운전자라뇨.” 빛은
특집
연세춘추
2022.11.28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