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문학상(소설 분야) 당선작]

빗방울

이민수(시스템생물·18) 

 

나는 비가 될 거야.”

 

726, 너의 생일이었다. 하늘은 어두웠고, 물방울보다는 물줄기에 가까운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샤워기 아래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너는 만취해 있었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분위기의 영향인지 너의 영향인지 다소 어지러웠다. 그런 폭우 속에서 우리는 적당히 작은 우산을 나눠 쓰고 호수를 보기 위해 걸었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얼큰하게 취한 너는 캠퍼스 안에 있는 호수를 꼭 봐야겠다고 억지를 부렸기에 나는 혹시나 네가 호수에 빠져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따라나선 것이었다. 우산을 나눠 쓴 우리를 보며 동기들이 장난기 섞인 어조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우리를 연인 또는 그 비스무레한 것으로 여기려는 듯한 잡담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너는 신경 쓰지 않았고, 네가 신경 쓰지 않았기에 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너는 그날 진작에 우산을 잃어버렸지만, 어서 호수를 보러 가자고 재촉하는 너 때문에 근처에서 우산을 살 수도 없었다. 덕분에 호수에 도착했을 즈음 나의 왼편, 너의 오른편은 축축이 젖어 있었다. 바닥에 튕긴 물방울은 바짓자락을 적셨다. 나는 종아리가 드러나는 치마를 입었어야 했는지 잠시 생각했다. 너는 그런 나를 뒤로하고 장난꾸러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로 씩 웃고는 우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말했다. 비가 되겠다고.

 

야 뭐 하는 거야! 감기 걸려 얼른 우산 안에 들어와!”

 

폭우는 소리 또한 가차 없이 쓸어내렸기에 소리를 지르듯 말해야 했다. 그러나 너는 듣지 못한 것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모르겠어? 비가 될 거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얼른 들어오라니까!”

저길 봐! 표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데! 그러니까 나도! 세상이라는 호수에! 파문이 될거야!”

 

너는 다분히 오그라드는 말을 마치고는 양팔을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렸다. 네가 입고 있던 흰 반팔 티셔츠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안쪽으로 너의 마르고 단단한 몸이 비쳤다. 마치 발가벗은 것처럼. 마치 원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마치 지구 반대편 거대한 예수상처럼.

 

너도 우산 접고 이리로 나와봐! 자신을 가두지 마! 비가 되자!”

 

나는 그런 너와 꽤나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고 서 있었다. 다음날 너는 감기에 걸렸고, 나는 감기보다 더 독한 것에 빠졌다.

*

꿈을 꿨다. 네가 나오는 꿈이었다. 호수에서 함께 비를 맞던, 그날의 기억이 투영된 듯한 꿈. 나는 비몽사몽한 몸을 이끌고 창가로 가 커튼을 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가을이 만연함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허공을 보며 어젯밤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 시절의 장면을 애써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은 제법 오래되었다. 네가 없어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생겼고,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리는 알람은 그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덕지덕지 발린 너를 정리하곤 출근해야 했다. 그러나 집 밖을 나오는 순간조차 여전히 너에 잠긴 기분이었다.

 

김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에요, 부장님.”

 

오전 8, 나는 텁텁한 냄새가 감도는 교무실에 들어섰다. 지금의 학교에 부임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교무실은 여전히 내게 어색한 공간이었다. 내 자리도, 동료 교사들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학생들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것 또한 너 때문일까 홀로 생각하곤 했다. 하늘이 맑아도 우산을 챙기는 습관처럼 너는 내게 깊이 물들어 있었고, 세탁을 수십 번 반복해도 사라지지 않는 얼룩처럼 너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삶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니까.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들을 마주하고, 판서를 하고. 때로는 기계처럼 정해진 일들을 척척 수행했다. 학생들은 도통 질문하는 법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수업은 내게 일이었고, 일에 많은 감정을 쏟아붓는 것은 피곤한 일이니까. 다만 차분히 말라가는 감각은 피하기 어려웠다.

 

김 선생님, 점심 같이 드실까요?”

 

부장 선생님은 말라가는 내게 다가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친절하고, 친절하고, 친절한 사람. 그를 표현하기 위한 어떤 문장에도 친절하다는 수식이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마치 단어의 반복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 같은.

 

네 가요. 오늘 메뉴가 뭐였죠?”

모르겠네요. 이럴 때는 애들한테 물어보면 다 알 텐데.”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문신처럼 얼굴에 새겨진 듯한 웃음. 그는 겉으로 티 내는 법이 없는 내가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료 교사들 틈에서 섞일 수 있도록 도왔고, 항상 내게 괜찮냐고 물어왔다.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면 애써 캐묻지 않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분명한 사실이 그가 가정 폭력을 저질렀고, 그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더했다. 거짓말 같았다. 나는 그가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사랑의 매조차 들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철제 식판에 반찬을 받으며 그가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억지로 상상했다. 그것도 자신의 가족을. 아내와 열 살 남짓의 아들을. 혁대를 풀어 손에 감거나, 손에 잡히는 단단하고 긴 대 같은 것을 쥐고 휘두르는. 상상 속에서 그는 울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아닌 자기 자신을 처벌하는 듯한 처절한 얼굴로. 상상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김 선생님, 무슨 생각 해요?”

 

그가 불쑥 물었다. 식판에 두었던 시선을 올리자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상상 속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울고 있지도 않았고, 처절해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눈가 주름이 선명히 접혔다.

 

그냥 멍 때렸어요. 불고기가 맛있네요.”

그러게요. 맛있네요.”

 

나는 그의 주름이 눈물이 흐른 길이 아닐지 홀로 생각했다.

 

*

 

김 선생님, 오늘도 그. 카풀 해서 갈까요?”

. 오늘도 감사해요.”

 

하루가 빠르게 지나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그는 내게 친절하게 물었다. 지난여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버스를 기다리다 우산으로 채 막지 못하는 빗물에 젖어가던 나를 그가 발견한 뒤로 그는 매번 나와 함께 퇴근했다. 어디선가 들은 카풀이라는 단어를 어색하게 쓰며. 사는 곳이 서로 가깝기도 했으니 어찌 되었든 잘된 일이었다. 나는 그의 친절함이 좋았다. 종종 호의는 와전되어 질 나쁜 뒷소문으로 변질되는 법이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내가 좋다면 좋은 일일 것으로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장 선생님은 내게 말을 많이 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꿈과 너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비가 쏟아지던 날, 호수, 우산, 그리고 너. 너는 물가를 좋아했다. 바다도, 강도, 호수도. 하다못해 비가 갠 날 한쪽 구석에 고인 물웅덩이조차 즐거워했다. 성격 나쁜 고양이처럼 젖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며 피하는 나와는 달랐다.

 

고여 있는 물은 세상이야.”

 

너는 식탁에 물을 조금 붓고는 말했었다. 그리고는 신난 표정으로 손을 물에 적시고는 손끝으로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고여 있던 물에서 작게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방금 떨어뜨린 물방울은 인간이고.”

 

너는 고요해진 고인 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인간의 삶은 정말 짧아.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에 일렁이는 파동처럼 말이야. 대신 세상의

일부가 되지. 삶이 짧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나는 당시에 네가 했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세상이 어떻고 인간이 어떻고. 그저 그런 말을 하는 네가 좋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사라진 이후로 오랫동안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다.

 

무슨 고민 있으세요?”

, 아뇨.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김 선생님은 생각이 참 많으신 것 같아요. , 안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친절하게 말을 덧붙였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흘렀고, 나는 풍경 중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잠시 눈길을 끄는 게 있더라도 순식간에 지나쳐갈 터였고, 금세 잊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지나치는 일은 다소 서러운 일이기도 해서 창밖에 시선을 두어도 뭔가를 집중해서 보지 않았다. 부장 선생님이 운전하는 차를 멈춰 세우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신 나는 다시 너에 대해 생각했다. 부장 선생님은 성실한 운전자답게 종종 사이드미러를 확인하며 정면만을 응시했다.

 

너는 탁자 위에 고여있던 물을 닦고는 다시금 손을 적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탁자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이것도 세상이야. 한 사람도 하나의 세상이 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너는 연이어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투명한 점처럼 몇 개의 방울이 탁자에 찍혔지만, 그것은 연결되지 않고 각자의 위치를 고수했다.

 

사람이 사람과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인연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사람이 우연히 쏟아지는 세상에서 인연은 쉽지 않아. 그래도.”

 

너는 다시 탁자에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네가 떨어뜨린 물방울은 처음에 찍혔던 물방울과 절묘하게 만나 하나의 큰 물방울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 그렇게 전보다 넓은 세상을 가지게 되는 거야.”

 

네가 말하는 비유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네가 좋았다. 네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그날 탁자 위에서 마주친 두 물방울이 너와 나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네가 사라진 이후로 나에게 떨어진 물방울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곧 주말인데, 김 선생님은 주말 계획 같은 거 있으신가요?”

아뇨. 딱히 없어요.”

 

오늘따라 부장 선생님이 말이 많았다. 평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오래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소라면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내 옆에서 말없이 운전하고 도착해서 꺼내는 내일 보자는 한 마디가 대화의 전부였을 것이다. 나도 대화를 시도해야만 할 것 같았다.

 

비는 왜 올까요?”

 

겨우 꺼낸 질문이 그거였다. 방학 동안 지긋지긋하게 내렸던 장마는 이미 끝난 지 오래였고, 하늘은 가을답게 탁 트여 있었지만, 나는 다른 대화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라면 온종일 떠들고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라며 웃으며 돌아갈 만한 질문이었다.

 

비요? 하하. 철학적인 질문인가요?”

아뇨. 그냥 부장 선생님 말씀이 듣고 싶은 거예요.”

.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차가워지면서 응결하고, 그게 떨어지는 거죠.”

그게 전부인가요?”

 

부장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고민하는 표정마저 친절했다. 나는 그가 비가 내리는 이유 따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 하는 그는 친절했다. 나는 그의 친절함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안쓰럽고, 어쩌면 부담스러웠다.

 

그게 전부는 아니죠, 당연히.”

 

나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그를 바라봤다. 여전히 친절한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대류를 통해 공기가 상승하면 기압이 떨어져서 공기가 팽창하는데, 단열팽창과 유사한 원리로 온도가 하강하는 거죠. 그래서 응결이 가능한 온도까지 내려갈 수 있는 거고요. 또 전선의 충돌처럼.”

 

그는 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쳤다. 아무래도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야 내가 그의 수업을 들을 일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야기를 줄줄 내놓고 있는 그를 보고 나는 너를 떠올렸다. 너와 부장 선생님은 전혀 다른 사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질문에 이야기를 줄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너와 같았지만, 너와는 전혀 다른 사람. 세상을 기계처럼 분해하고 해부하여 원리를 알아내곤, 나아가 기상청이 그러하듯 미래를 감히 예측하려는 이야기. 아무래도 과거에 머무른 사람은 관심 없는 이야기.

 

“...재미없지요?”

아뇨. 괜찮아요.”

 

부장 선생님은 아무래도 비가 인간이라던지, 호수가 세상이라던지 하는 말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미안해요. 저도 김 선생님이 재미있어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잘 안 되네요.”

 

그가 친절하게 말했다. 내가 재미있어하기를 바란다고. 조용히 내 눈치를 살피며. 그는 역시 네가 아니었지만, 친절했다. 조금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철학적인 근거는 뭔가요? 김 선생님 생각도 궁금하네요.”

.”

 

너는 내 생각을 묻지 않았다. 너와 나의 대화에서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나는 말주변이 없는 나였고 주장보다는 질문이 편했다. 그래서 너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러나 지금 내가 대화하는 상대는 네가 아니었다. 부장 선생님이었다. 대답해야 했고, 질문을 듣는 쪽이었다. 나는 대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으나, 결국 떠오른 것은 너뿐이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수증기가 하늘에서 한데 뭉쳐져서 떨어지고, 땅에 고이고, 다시 마르는 거죠. 그래서 비가 오는 거죠. 저는 그 순환이 좋아요. 모든 것은 돌고 돈다는 게 철학적인 근거가 아닐까요?”

나는 그 순환이 좋아. 결국 삶이라는 파장을 일으키고 세상의 일부가 된 물방울은 언젠가 증발한 뒤에 다시 비가 될 테니까. 그래서 비가 계속 내릴 수 있으니까.”

 

겨우겨우 답한 문장은 너의 것이었다. 결국 내 것은 가진 게 없고 네가 남기고 간 것만 붙잡고 살아가는 게 나였다. 비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말을 이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삶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순식간이고, 고였다가, 말라가는 거잖아요.”

재미있네요. 사람도 비랑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정말요? 너도.”

 

. 부장 선생님을 그렇게 부르고 말았다. 과속 방지턱을 덜컹거리며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부장 선생님은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았고,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말을 고치려 했다.

 

아니 그러니까 선생님도.”

 

그러나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허공을 보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창 밖으로 세상이 흘렀다.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하하.”

 

그는 다시금 사람 좋게 웃었다. 너는 너였다. 내게 이인칭으로 고정된 사람은 언제나 너였다. 그는 너처럼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지만, 너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다른 너를 찾고 있다고 쳐도, 그는 네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영문 모를 죄책감이 바닥에서부터 스며들 듯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착했네요.”

 

그의 말대로 어느새 멈춘 차 밖으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나는 안전띠를 풀고 도망치듯 내리려 했다. 왜 도망치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태워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 김 선생님?”

?”

 

그의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평소처럼 친절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평소와는 어딘가 달랐다. 미묘한 뉘앙스라고 할까, 어조라고 할까, 그런 게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삼키려 애쓰는 듯했다. 친절함이라는 겉 포장을 뚫고 드러나려 하는 무언가.

 

혹시 시간 괜찮으시다면 오늘 식사라도 같이하실래요?”

.”

 

그제야 나는 그가 감추고 있던 것을 알아챘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것을 감춘 것조차 친절했다. 나는 그의 친절함이 좋았다. 그러나 그는 네가 아니었다. 결코 네가 될 수 없었다.

 

죄송해요.”

 

멈춘 차 안에서 정적이 둘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살을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친절한 그가 좋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좋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식사를 같이하고, 어쩌면 오늘 주말을 같이 보내고, 어쩌면 밤조차 같이 보내는 사이가 되어도 좋을 정도로. 그러나 그는 네가 아니었다. 나는 고여 있는 세상이었지만,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는 내가 가진 수분의 전부였고, 네가 차분히 증발한 뒤로 남아있는 나는 물과 기름이 섞이지 못하듯 다른 존재와 섞일 수 없었다.

 

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도망치듯 차 문을 열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네가 보고 싶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일어났다. 네 꿈을 꾸지도 않았고, 잠을 설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장 선생님에게 따로 사과의 메시지를 보낼까 생각했지만, 역시 그만두었다.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정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문자 메시지만 덜렁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사과할 문장을 생각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부장님 아직 출근 안 하셨어요?”

그러게요. 보통 가장 먼저 출근하시는 분인데 오늘 몸 안 좋으신가? 연락도 없이 지각하실 분도 아니고.”

! 김 쌤 왔어요? 혹시 부장님한테 말씀 들으신 거 없으세요? 아직 출근을 안 하셔서요. 연락도 안 받으신다고 하더라고요.”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알아본 동료 교사가 내게 물었다. 그의 빈자리를 보자 생각한 사과의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아뇨. 저한테도 별말씀 없으셨어요.”

그래요? 부장 선생님이 김 쌤 아끼셨던 것 같은데 김 쌤이 한번 전화해 볼래요?”

. 지금 전화해 볼게요.”

 

나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 연락처 목록을 내리며 부장 선생님의 번호를 찾았다. 이름 세글자. 그리고 뒤편에 딱딱하게 적힌 부장 선생님의 직위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너와 부장 선생님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분명한 우연이었다. 내가 진작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우연.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부장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차분하고 예의 바른 음성이 곧이어 들려왔다.

 

전화기가 꺼져 있나 본대요.”

그래요? 어머,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부장 선생님은 갑작스럽게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사람을 한 명 더 알고 있었고, 그 또한 사라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부장 선생님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네 생각으로 돌아갔다. 타원형의 육상 트랙을 돌아 출발선에 돌아오듯 내 원점은 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나는 또다시 너를 떠올리며 하루를 보냈다. 부장 선생님의

빈자리가 눈에 밟힐 때마다 나는 너를 생각했다.

 

*

 

열대 우림에서는 스콜이라는 비가 내린대.”

그래?”

. 한국의 소나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쏟아져서, 물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쏟아져서 흐를 새도 없이 고인다더라.”

 

너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런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겨우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즈음이었고, 폭우가 쏟아지던 너의 생일이 작년이 되고 다시금 장마가 시작하는 기색이 보이는 습한 시절이었다. 짝사랑이었지만, 마냥 일방적이지는 않았던 애정으로 천천히 서로를 대하던. 그런 즈음이었다.

 

너 비 좋아하잖아.”

그렇지. 그래서 이번 겨울에 다녀올까 해. 겨울이 우기거든. 그 비를 보고 싶어.”

그래?”

. 같이 가지 않을래?”

 

조심스러움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물음이었다. 그런 너의 당당함은 종종 나를 당황하게 했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너를 만나기 전의 삶은 놀랄 일이 아무것도 없었고, 사막에 떨어진 것처럼 건조한 일상뿐이었으니. 그래서 아마존 열대 우림에 비를 보러 가자는 대책 없는 계획조차 나는 즐거웠다.

 

. 같이 가자.”

 

그날 나는 너를 향한 사랑을 인정하는 길었던 과정을 끝마쳤다. 그날 거짓말처럼 장마가 시작되었고, 열대 우림이 무색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발목까지 빗물이 차오른 길을 우산 하나에 의지한 채 함께 걸으며 나는 네게 사랑을 전했고, 너는 거짓말처럼 내게 입을 맞췄다.

 

그러나 나는 브라질로 향하는 비행기 편에 오르지 못했다. 그해 겨울, 그러니까 출국이 이 주 남짓 남았을 때 나는 비와 눈이 섞여 내리던 첫눈에 미끄러진 차량을 피하지 못했다. 나는 삼 주간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깨어났을 때 내게 남은 것은 아마존의 빗물을 받아와 선물하겠다는 짧은 편지뿐이었다.

 

그렇게 너는 사라졌다. 내가 가진 것은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손글씨와 자취방에 두고 간 오래된 향수, 속옷 몇 벌과 적당히 작은 우산 하나뿐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다시 시작고, 계절이 바뀌어도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네가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너를 기다리다 잠들곤 했다. 겨우 쪽잠만을 잔 뒤 수업 시간에 졸거나, 아예 자버리는 날들이 늘었다. 사람이 잠들지 못하면 세상이 점멸하듯 보인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너는 그 점멸의 순간에 종종 나타났고, 나는 그것이 꿈인지 혹은 정말로 네가 돌아온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네가 보고 싶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날은 너의 향수를 종이에 뿌렸다. 은은하고 중성적인 향

이 공기를 촉촉하게 적시면 그 향지(香紙)를 얼굴에 올려놓고 너를 떠올렸다. 마치 그 옛날 얼

굴에 적신 도모지(塗貌紙)를 올려 죄인을 질식시키는 형벌처럼. 나는 너로 질식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

 

주말에는 가을비가 내렸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다. 부장 선생님은 여전히 연락을 받지 않았고, 그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사과의 문장을 잊어버렸기에 매번 같은 고민을 해야 했다.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무엇을 사과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보이지 않는 문장이었다.

 

지난번 저녁 식사의 초대에 응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가버려 죄송했습니다.”

 

너무 딱딱했다. 직장 동료라고 하더라도 친절한 그에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제가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설명도 없이 갑자기 가버려서 죄송해요.”

 

변명이었고, 무엇보다 거짓말이었다.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기분을 신경 쓴다는 이유로 함부로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문장을 몇 번씩 고치고 적절한 사과를 찾아내면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주말을 꼬박 새웠다. 너를 기다리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부장 선생님은 내게 남기고 간 것이 없었다. 어쩌면 더는 남길 것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결혼 생활도, 아이도, 가족도, 그들에게 휘둘렀던 오만이나 슬픔 같은 것까지도 전부 소모해 버렸고, 가진 게 없기에 앞만 봐야 하는 슬픈 사람. 나는 부장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주말이 다 가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부정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2년은 사람을 온전히 파악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시간일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친밀한 사이가 되면 다른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그의 친절함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는 네가 될 수 없었다. 너는 너니까. 나에게 네가 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로 월요일이 찾아왔다.

 

*

 

월요일 아침 나는 평소처럼 잠에서 깼다. 창밖에는 가을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네가 나오는 꿈을 꾼 것 같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출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삭막한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부장 선생님의 자리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출근하지 않은 듯했다. 동료 교사들은 걱정하는 듯한 말들을 조곤조곤 나누었고, 때로는 내게 알고 있는 것은 없는지 물어왔다.

 

아뇨. 저도 연락해 봤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 별일 없으셔야 할 텐데요. 걱정이네요.”

교감 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해 보신다고 하더라고요. 부장님 이혼하셔서 확인해볼 방법도 없어서요.”

 

그들은 대화를 마치고 각자의 교실로 하나둘씩 이동했다. 나도 평소처럼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평소와 같았다. 질문 같은 것은 없었고, 그편이 좋았다. 4교시가 끝날 무렵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어두운 표정을 하고 한데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두려움이 나를 바늘처럼 찔렀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울린 대학 동기의 전화가 그것을 방해했다. 나는 전화를 받으며 황급히 교무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수진아, 소식 들었어?”

소식? 무슨 소식?”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듯 숨을 깊게 들이쉬곤 한 호흡으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행방불명 됐었던 너 예전 남자친구. 브라질에서 찾았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세상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도망친 길에서 전보다 더욱 거대하고 묵직한 벽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너를 찾았다. 나를 두고 사라졌던 너를. 하늘이 열린 듯 폭우가 쏟아지는 열대 우림으로 떠났던 너를. 육 년 전의 일이었다. 네가 나를 두고 사라진 것이 꼬박 육 년이었다. 나는 비가 올 때마다 너를 떠올려야 했다. 병원에서 우울증 약을 타 먹으며 흐릿한 정신으로 임용고시를 공부하면서도 너를 떠올려야 했다. 그런 너를 찾은 것이었다.

 

브라질 카르텔 암매장터에서 유골을 찾았대. 일부라도 찾은 게 기적이라고 하더라.”

.”

 

짧은 몇 초의 시간이 늘어지고 연장되어 천천히 흘렀다. 나는 그 수 초 동안 주마등처럼 너와의 이야기를 되짚었다. 머릿속으로는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네가 연락 한 통 없이 사라질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더라도 사실에 닿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게 일순간 증명된 사실이 되었다.

 

장례식장 위치 문자로 보내줄게.”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굳어버린 몸을 이끌고 교무실로 돌아가 내 자리에 앉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창밖 풍경을 보는 듯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너를 찾았다. 비를 보겠다고 떠났던 너였다. 축축하게 젖은 마른 몸을 했던 너를. 살갗도 내장도 전부 썩어 없어지고 유골이 된 너를. 이제는 너의 생전 모습이 남지 않았을 뼛조각 몇 개가 되어버린 너를.

 

나는 세상이라는 호수에 떨어지지 못한 작은 물방울이었고, 그 위에 절묘하게 떨어져 마주친 빗방울이 너였다. 네가 사라진 뒤로 나는 끊임없이 증발해갈 뿐이었는데.

 

김 쌤.”

“...?”

부장 선생님이요.”

 

동료 교사의 목소리는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내가 가라앉고 있는 심해는 그보다 깊은 곳에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차이를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돌아가셨대요. 자택에서. 유서도 나왔다고.”

.”

각반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오후에 함께 조문 가기로 했습니다.”

 

부장 선생님이 죽었다. 그 사실은 네 생각을 향해 추락하고 있던 나를 일순간 끌어올렸다. 머릿속은 이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긴 사고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유서. 유서가 나왔다면 부장 선생님 또한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죽기 마련이지만, 보통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며, 유서로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아마 그는.

 

.”

 

그 뒤는 차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과거를 전부 버리려 했던 그가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남아 있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장 선생님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친절하다는 단어를 반복하면 그가 될 것만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쩌면 나 때문에.

 

쇳덩어리를 정수리에 올려놓은 듯 머리가 무거웠다. 네가 돌아온 것도, 부장 선생님의 죽음도. 한데 얽혀 나를 짓눌렀다.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둘 중 어느 장례식에 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자신이 역겨워 올라오는 구토감을 쉬이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책상에 기대려 팔을 뻗었고, 그러다 물이 가득 담긴 물병을 엎고 말았다. 어딘가에 채 스며들지 못한 물이 책상 위에 고였다. 그 위로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며 작게 동심원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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