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당선작]

*

숲지기

홍하늘(철학·19)

 

선 채로 죽은 우리 옆에서 꼬인 채로 산 덩굴들이 술렁인다 흙바닥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를 때 공작새 꼬리깃의 셀 수 없는 눈들은 번갈아 깜박이고, 녹빛 눈물 흘리고, 먼지를 빼내려 속눈썹깃과 고군분투하고

발바닥을 내려놓을 때마다 위이잉 하는 소음이 귀를 채운다 그걸 두려워하면 이 숲을 탐험할 수 없어 이제 거의 산지기가 된 너 나뭇잎 살랑이듯이 혓바닥을 움직여 내 손등을 핥아 주다가, 공작이 흘린 눈물 자국을 쫓아 오솔길을 발굴한다 그리고 그런 너를 쫓아가던 내가 맞닥뜨린 건 거대한 동굴

 

 

 

볕을 등지고

     내리막길을

          따라가면서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사랑스런 파국을

    불러오는지

생각한다

   그치만

      저 아래

         저만치 먼저

             내려가고 있는

                  네 작은 등이

                      갑자기 어둠에

                             흐려지더라도

                         동굴의 습기를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

 

 

 

 

 

석순은 하늘을 찌르려고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종유석은 길게 매달려, 박쥐처럼 매달려 매달려 너의 정수리에 눈물을 흘리고, 이마가 온통 축축하게 젖기 전에 동굴을 나가야 해 하지만 닦아낼수록 닦아낼수록 눈썹 아래로 흘러내리는 방울방울들이 많아진다, 발바닥이 척척하다, 위령비들이 빽빽하다,

유령들이 어슬렁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유령이 아니라고 떼 쓸 생각은 없다며 너의 중얼거림이 시작돼

 

시쓰기를 의심하며 시쓰는 사람이 감히 방에 시를 걸어놓을 수 있겠어? 내 방에 매달린 시들은 빼곡한 시들은 눈알을 부라리며 나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 저 눈에서 나는 빅브라더를 떠올려. 그러니까 인공지능은 거대한 민주주의 포르노야. 인간 쓰레기부터 최고의 엘리트와 세속적 스펙트럼 바깥의 쿨하게 나쁘게 웃기게 역겹게 미친 애들까지. 그 모든 애들을 보울에 쏟아넣고 비트 단위까지 갈아버려 고기완자를 만든 거다. 말하는 고기완자라니 그건 너무 끔찍하지 않니. 그치만 거기서 우리는 모든 미래를 시뮬레이션해본다. 가능세계와 가능세계 이면에 개미굴을 뚫고 어지러운 지하제국을 세우자. 그거야말로 우리의 사명인 구멍 뚫린 ( )체 복합체를 지구에 구현하는 것. 그렇게 우리의 현실이 갉아먹어진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거대한 굴이 바로 그 비열한 좀먹음의 흔적이야. 이 바깥이 있을까? 우리에게 바깥이 있을까? 걱정 마, 우리가 굴을 빠져나갈 즈음 나는 반드시 기필코 운명적으로 ఝે઀౲ࣿໝ⸌. 그렇지 않아? ?

 

그 때 번개

 

(베토벤 9번 교향곡 1악장의 포르티시모)

(그 이상의 포르티시모)

(이전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이 일제히 울부짖는 바로 그 순간)

 

내리친다

 

.

.

.

 

(이 사이엔 억겁의 시간이 흘렀고 고고지리학자들은 이후를 기계세로 부르는 것에 합의했으며)

(나는 끝내, 끝끝내 뒤돌아보고야 만다)

.

.

.

 

선 채로 죽은 내 앞에서 꼬인 채로 산 덩굴들이 술렁인다 공작새는 우아한 꺾음새로 제 꼬리 깃을 치장하고, 나무 아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온통 축축해졌어, 싸면 안 되는 걸 싼 것처럼 엉거주춤한 기분이야 내가 눈을 깜박일 때 공작새의 깃털도 깜박, 깜박

대체 조율은 언제 끝나고 음악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웅성거리는 풀꽃들과 나뭇잎들이 살랑이며 내게 야유를 보내면, 하나씩 섞여드는 잡음들 플랫들

 

개구리가 꺽꺽거리며 숲속을 구불구불 안내할 때 세상은 점점 뜨거워져 온갖 곳에서 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내 빨간 손톱 끝 옷자락 목젖과 선인장 위에서. 선인장들이 자라날 때 대추야자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날 먹지 말라는, 빨갛게 반들거리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돼. 여기 이 발이 딛고 선 곳은 괴물의 정원, 푸른 줄거리의 도시들. 언제까지고 얽혀 있을 듯한 플롯의 역동성을 의심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그래 나는 언제나 먹이가 되고 싶었어, 그리고 더 좋은 건 뭔지 알아, 항상 2악장은 유치하게 느껴지더라*

 

* : 레자 네가레스타니 저, 윤원화 역. 사이클로노피디아: 작자미상의 자료들을 엮음. 서울: 미디어버스, 2021.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