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의미는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이전의 대학이 학문 탐구의 장이었다면, 지금의 대학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이에 발맞춰 ‘취업률’이 중요한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취업률이 높다는 것은 곧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고, 대학의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한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는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변화하는 대학의 모습이 대학의 본질 자체를 흔들고 있는 현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학업 외의 스펙… 취업 땐 활용 못해, 졸업은 힘들어!


언제부턴가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학점·졸업 논문 외에 부수적으로 대외활동을 하거나 공인 어학 성적을 취득해야 하는 제약이 생겼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도 졸업을 위해 공인 어학 성적 조건을 달아놓거나 대외활동 인증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건국대는 전 학과가 ‘매경테스트’ 시험에 응시해야 졸업이 가능하며, 한국외대는 한국외대 자체 어학시험 ‘FLEX’를 일정 점수 이상 취득해야 한다. 또한 한양대의 경우, ‘인턴십 의무제’를 시행하고 있어 취업 관련 교과목 인턴 또는 연구실 인턴 과정을 거쳐야만 졸업을 할 수 있다. 우리대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원주캠 경영학과의 경우 토익 스피킹을 Level 6 이상 또는 Opic IM2 이상을 받아야 졸업할 수 있다. 다른 단과대도 등급은 다르지만 일정 점수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대학들이 이러한 졸업요건을 만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실무·연구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의 이력 쌓기를 돕는 것’이다. 한양대 홍보팀 관계자는 인턴십 의무제 도입 취지에 대해 “실무능력과 우수연구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 재학생들이 관심분야를 폭넓게 탐구하도록 한다”며 “대학 졸업 전까지 목표달성에 필요한 이력을 축적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대 이모씨는 “졸업요건에 토익과 같은 스펙을 넣는 것 자체가 대학이 취업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경제적인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대 파이낸스보험경영학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TOEIC 점수가 800점이 넘어야 한다. 이외에도 취직은 했지만 졸업요건 때문에 졸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학과 통·폐합 문제, 시대의 요구인가?


학과 통·폐합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동국대와 중앙대를 들 수 있다. 먼저 동국대는 독어독문학과와 윤리문화학과를 차례로 폐과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교수진의 많은 반발이 있었으며,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는 상황까지 있었다. 중앙대는 최근 연일 뜨거운 이슈를 만들고 있다. 중앙대는 지난 2월 26일 보도 자료를 통해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아래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발표했다. 보도 자료의 내용에 따르면 중앙대는 2016학년도부터 학과제 모집을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학생을 모집할 예정이며, 융·복합 학문단위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중앙대 홍보팀 관계자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늘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학과 통·폐합 움직임에 교수·학생 사회는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우선 교수 사회는 해당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허남결 교수는 “폐과의 잣대가 된 취업률·재학률과 같은 지표들은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지표에 짜 맞춘 것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어 학내·외에서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대 역시 교수들이 앞장서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중앙대 교수들은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를 열어 학교 측의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 비대위는 학교 측 개편안에 대한 교수들의 의견을 묻는 찬반 투표를 실시했는데, 투표대상자 864명 중 555명이 투표에 응했으며, 555명 중 반대의사를 보인 사람은 513명으로 92.4%의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비대위는 지난 3월 3일 중앙대 총장과 기획처장에게 질의서를 발송하는 등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학생 사회는 해당 문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타낸다. 중앙대 이모씨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학생들 중에는 취업·졸업 결과가 더 좋은 학과로 이동할 수 있어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에 중앙대 권모씨는 “자신이 다니던 과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대책이 전무한 상태”라며 “단과대학 단위로 학생을 뽑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렇듯 학생들은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었다.
이에 대해 동국대 홍보팀 관계자는 “학과 폐지를 결정할 때는 취업률 외에도 여러 가지 기준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 변화 흐름에 맞춰 단과대나 학과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외에도 전과와 같은 제도들 때문에 학과 유지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졸업 위해 필요한 스펙, 학과 통·폐합까지…

 

▲ 강원대 통폐합 문제에 맞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강원대 독문과 교수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대학도 변화하고 있다. 동국대 홍보팀 관계자는 “이전에는 서울 시내 대학에서도 농과대학이 존재했다가 사회가 변화하면서 상당수 폐과됐다”며 “사회의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학과의 구조조정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학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는 부분도 사실이다. 허 교수는 “신자유주의는 효율의 합리성과 경쟁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라 대학의 현안문제를 풀 수 있는 관점으로는 부적합하다”며 “대학은 과거의 교훈과 현재의 진단 및 미래의 비전을 동시에 고민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또한 “현 시점에서는 교육을 상품으로, 학생들을 교육 소비자로 생각하고 소비자 만족도를 취업률로 나타낸다”며 “여기에 취업이 힘들어지니 취업이 안 되는 학과를 통폐합시키는 경우는 시장주의 교육정책의 일례”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세상 모든 것이 상품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위의 내용은 이 관점과 일치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대학, 신자유주의라는 물결 속에서 대학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학의 본질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 대학의 경쟁력과 더불어 대학의 본질 또한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대학생들, 그리고 대학 자체적으로도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대학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박상용 기자
doubledragon@yonsei.ac.kr

<사진제공 http://snapj.net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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