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예술인 테너 신형섭을 만나다

신형섭(45)씨에게 노래란 삶의 버팀목이다. 갑자기 찾아온 편마비*로 인해 높은 음역대를 소화하기는 어려웠지만, 결국 노래를 향한 굳은 의지로 테너로 활동하고 있다. 편마비를 딛고 타인을 위해 노래하는 장애 예술인, 테너 신씨를 만나봤다.

 

1: 나를 위한 음악

 

Q. 자기소개 부탁한다.

A. 장애인 성악가 신형섭이다. 성악에서 남자 가수 중 가장 높은 음역을 내는 테너로 활동하고 있다.

 

Q. 성악가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수의 꿈을 꿨다.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크면서 대중가수는 외모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접었다(웃음). 그러다 고등학생 때 교회 선배의 권유로 가수 박종호의 성악곡을 듣게 됐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성악의 매력을 알게 됐다. 그렇게 무작정 성악가의 꿈을 꾸게 됐다.

 

Q. 강릉대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긴 시간 성악을 공부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면.

A.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다. 보기보다 소심하고 잘하는 것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노래는 자신감을 줬다. 종종 교회에서 노래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변 지인들의 칭찬을 받았다. ‘나도 잘하는 게 있구나’를 느끼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2: 나를 살게 한 음악

 

Q. 이탈리아 유학 중에 갑작스레 뇌경색으로 편마비를 얻게 됐다. 당시의 심정은 어땠나.

A. 이루 말할 수 없다. 할 줄 아는 게 노래밖에 없었기에, 노래를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이탈리아까지 갔다. 편마비가 찾아온 뒤 목소리는 낼 수 있었지만,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에 한계가 생겼다. 최소한 테너라면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높은 음역대인 2옥타브**를 소화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지만, 이전처럼 노래할 수가 없으니 살 이유를 찾기 어려웠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Q. 그럼에도 다시 노래를 시작한 계기는.

A. 이비인후과에서 목소리만 잘 나온다면 성대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들었다. 이에 특정 음역대만 발성할 수 있다면 다시 노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다른 장애인 성악가분들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Q. 장애인이 된 이후로 힘든 점을 한 가지 꼽는다면.

A.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계속 이탈리아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애인을 보는 시선이 이탈리아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인 것도, 배려가 필요한 것도 맞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장애인 스스로 비장애인과의 차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외부의 측은한 시선까지 더해지면, 장애인은 밖으로 나올 힘을 잃고 만다.

 

Q. 성악가가 되고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A.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후 나를 성악가로서 찾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 2019년에 주변 지인과 학교 선후배를 통해 앙상블 단체  ‘I semi(이쎄미) 앙상블’을 조직했다. 내가 활동하고 싶은 마음에 만든 단체였으며, 앙상블 자격으로 여러 지원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던 중 특수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이 되니 장애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였고 저 친구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속초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3년에 이어 오는 5월에도 ‘속초청해학교’에 가서 음악회를 연다. 특수학교에서 노래하다 보면 나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노래할 수 있음을 느낀다.

 

3: 누구나 꿈꿀 수 있도록

 

Q. 장애 예술인이 꿈을 펼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A. 장애 예술인들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찾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에는 막연히 누군가 나를 찾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되든 안 되든 노래하는 영상을 SNS에 꾸준히 찍어서 올린다. 테너 신형섭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지역 사회에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음악을 통해 돈을 버는 게 목표였는데, 최근에 장애인예술단에서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 그 목표를 이뤘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본다면, 더 왕성한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싶다. 이를 통해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이 일하고, 세금을 내고, 전문 분야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신체적 장애가 그의 목표를 가로막진 못했다. 그는 오늘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성대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가 세상에 더 울려 퍼지길 응원한다.

 

 

글 최혜정 기자
culture_shock@yonsei.ac.kr

<사진제공 신형섭>

 

 

* 편마비: 편측(한쪽)의 상하지 또는 얼굴 부분의 근력 저하가 나타난 상태를 의미한다.
** 옥타브: 완전 8도 음정.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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