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도서관

지난 20세기 말,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종이 종말론이 대두됐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는 소멸할 것이라는 맥락에서다. 어느 곳보다 많은 종이를 보관하던 도서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기영 교수(문과대·문정)도서관이 문을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를 살펴봤다.

 

도서관, 디지털 시대에도
오히려 성장 중

 

가정마다 컴퓨터가 보급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식과 정보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할 필요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도서관은 오히려 확장되는 모습이다. 지난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공공도서관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아래 공공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196개였던 도서관은 20201172개에서 20221236개로 증가했다. 지자체들은 지속적으로 확충 계획을 내고 있다. 지난 1월 경기도에서도 성남, 시흥 등 6개 시·군에 공공도서관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도서관들이 모두 개관하면, 경기도는 총 325개의 공공도서관을 보유하게 된다.

디지털 시대에 도서관이 사라지기는커녕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서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도서관법4조에는 공공도서관의 주요 목적이 공중의 정보 이용 독서 활동 문화 활동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도서관이 배움 소통 교류 문화생활을 위한 공공시설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도서관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윤유라 교수는 도서관이 기록관, 박물관 등과 결합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하면서 라키비움(Larchiveum)*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도서관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일례로 우리대학교 도서관은 지난 2008년 연세·삼성 학술정보관을 신축 개관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대학도서관에 복합문화공간의 개념을 도입했다. 우리대학교 학술문화처 남혜현 관장은 도서관은 단순히 학술 정보 자원을 활용하는 공간을 넘어섰다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우리대학교 도서관은 북콘서트 출판기념회 트렌드 세미나뿐만 아니라 음악회 전시회 옥상정원영화제 등을 개최하며 학생들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 관장은 대학 안팎의 환경과 교육 패러다임이 달라지면서 대학도서관의 역할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설명했다.

 

▶▶ 우리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 포스터
▶▶ 우리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 포스터

 

도서관의 가치, 공공성에서 찾다

 

최근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이 날로 강화함에 따라, 공공도서관이 우리 사회에 여러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도서관이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 회복 지역 간 균형 발전 도모 지역 활성화 정보 격차의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분석에서다.

우선 공공도서관은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이연옥 교수는 요즘 사람들이 만나 공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도서관이 사람들의 대화와 토론을 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성북구립도서관은 지난 2016년부터 지역사회 공론장으로 마을in수다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스마트폰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노인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나아가 공공도서관은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 남양주시의회 이상기 부의장은 남양주 전체의 균형 발전을 위해 화도읍에 장난감도서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남양주의 다른 읍면동에도 있는 장난감도서관이 관내 영유아 수 2위인 화도읍에는 없다. 지역 간 인프라의 수준이 균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인정받아 지난 20238월부터 도서관 건립이 추진됐다. 이에 남양주시청 보육정책과 담당자는 오는 4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공공도서관은 지역 활성화를 돕기도 한다. 창원에서는 폐교를 개조해 지혜의 바다라는 이름의 도서관을 개관했다. 창원은 유동 인구가 거의 없는 지역이었으나, 이에 힘입어 타지역 주민들도 찾아오며 주변 상권이 활기를 띠게 됐다. 윤 교수는 최근 도서관이 지역 경제 파급 및 홍보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24년 도서관 문화예술 동아리 활동 지원 공모사업도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해당 사업에 선정된 울산의 울주도서관은 공모전 지원금을 활용해 지역사회 문인화 체험 공간 운영 등 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이용재 교수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공공도서관이라고 밝혔다.

정보 격차의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윤 교수는 도서관은 공공기관 중 접근성이 좋고 친근한 장소라며 저소득층, 고령자 등 정보 취약 계층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의 가치이자 철학이라고 밝혔다. 이연옥 교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정보 제공과 자료 안내 등을 통해 시민들 간의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남대 문헌정보학과 권선영 교수는 도서관에서 신기술을 접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강남구의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은 증강현실(AR)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외에 3D 펜을 체험하거나 가상현실(VR) 기기를 활용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용재 교수의 책 도서관 경영전략과 마케팅에 따르면, 미국 뉴욕 맨해튼시의 과학산업비즈니스도서관의 경우, 전문 사서들이 관내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의 취·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의 미들컨트리공공도서관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연결해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돕기도 한다. 각종 분야 전문가 발표회인 도서관비즈니스커넥션(Library Businees Connection)’이 대표적이다. 관심이 있는 지역 주민 누구나 해당 발표회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전문가의 강의와 식사가 무료로 제공된다. 또한 미국 뉴욕 맨해튼시의 미드맨해튼도서관은 도서관 밖 교도소 수감자에게 책을 제공하는 등, 지역사회의 소외된 곳에도 손길을 뻗고 있다. 이렇듯 도서관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원천을 마련하고 있다.

 

미래의 도서관을 향한 조건

 

이에 반해 국내 도서관의 운영은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홍보 부족 사서 부족이 문제로 꼽힌다. 권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는 도서관을 찾는 사람만 가고 있다최대한 많은 사람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한 도서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서 확충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공공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1관당 방문자 수는 142160명으로 전년 대비 23.6% 증가했다. 그러나 1관당 사서(정규직) 수는 연도별 차이가 거의 없다. 2018년 기준 4.4명이었으나, 20204.5명에서 20224.7명으로 균일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2022년 기준 사서(정규직) 1인당 봉사 대상 인구수는 무려 8937명에 달한다. 지난 2강북희망네트워크가 주최한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우리 일터 이야기에 참여한 사서 노동자들은 인력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도서관협회는 ‘2024 도서관 정책제안서를 주요 정당과 후보자에게 전달했다. 제안서의 주요 내용은 도서관의 사서 수 증원, 사서에 대한 열악한 처우의 개선, 과감한 예산 투자 등이었다. 이어 이연옥 교수는 서비스 혜택을 받는 시민들이 주도해 도서관 관련 정책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도서관학 석학 시야리 라맘리타 랑가나단(Shiyali Ramamrita Ranganathan)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A library is a growing organism)’라고 정의했다. 도서관은 독서 활동 중심 공간에서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고 있다.

 

 
 

글·사진 최혜정 기자
culture_shock@yonsei.ac.kr

 

* 라키비움(Larchiveum):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영어 합성어다. 도서관, 기록관, 박물관의 기능을 가진 복합문화공간을 의미한다.
** 미디어 리터러시: 다양한 매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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