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신자유주의. 학문과 지성의 전당인 대학마저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요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많은 대학이 대학평가의 줄 세우기식의 평가방식에 맞춰 단기간에 급속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부작용에 맞서 대학평가를 거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단발성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 대학평가는 대학의 본질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어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문제는 순위평가


대학평가는 ‘인증평가’와 ‘순위평가’로 구분된다. 인증평가는 대학의 기본적 역할인 교육 및 연구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평가다. 반면 순위평가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량을 수치화할 수 있는 평가지표를 활용해 대학들의 순위를 매기는 방식을 말한다. 문제로 지적되는 대학평가는 언론사 대학평가의 순위평가다. 물론 순위평가도 객관적인 기준으로 잘 이뤄진다면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순위평가는 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 기업의 인사 담당자, 정책담당자 등이 대학을 판단할 때 필요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대학의 높은 성과가 순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대학 운영의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장점들에 대해서는 많은 학생이 공감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박현규(운동처방재활·14)씨는 “대학평가 나름의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학평가의 기준을 공정하게 세운다면 대학교육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력해진 언론사 대학평가


국내 대학들의 평가는 언론사와 교육부, 해외기관 등 매우 다양한 기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상위권 대학들을 중심으로 국내 평가에서 해외 평가로 관심을 돌리는 추세지만 여전히 국내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대학들과 교육수요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언론사로는 1994년 국내 최초로 대학평가를 시행한 중앙일보, 지난 2009년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공동으로 대학평가를 시작한 조선일보, 2013년에 ‘청년드림대학평가’를 시행한 동아일보가 있다. 이들은 국내 신문 발행 부수 1~3위를 차지하는 국내 주요 일간지로서 그 영향력이 매우 막강해 대학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가려지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림대 언론정보학과 윤태일 교수는 지난 2013년 『관훈저널』에 기고한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점」이란 글에서 ‘언론사 대학평가의 문제점은 비판 여론을 주류언론이 전혀 보도하지 않아 건전한 공론장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자사 대학평가를 자화자찬하는 기사는 도배하지만, 정작 그 문제점을 지적한 비판적 여론은 묵살하고 그저 한두 마디 장식용으로 언급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사들의 대학평가에 대한 또 다른 비판도 있다. 언론사들이 앞다퉈 대학평가에 뛰어드는 이유는 언론사의 수익과 대학의 홍보라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아래 대교연)는 지난 2014년 9월 발표한 논평에서 ‘대학평가가 발표되는 시점인 8~10월은 대학 원서접수를 앞둔 시기이기 때문에 학부모와 입시생들이 대학순위에 가장 민감할 때고, 대학들도 집중적으로 홍보해야 할 시기’라며 ‘이 시기 신문 광고를 통해 대학 홍보가 집중적으로 이뤄지며 연간 1천억 원에 이르는 대학 홍보비의 상당액이 ‘조·중·동’으로 들어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교연 이수연 연구원은 “대학들이 언론의 평가를 무시할 수 없어 대학과 언론의 우열관계가 형성되고, 이런 상황에서 대학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4년 11월에 한국영어영문학회에서 ‘대학순위평가와 대학의 몰락’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고부응 교수도 “이는 대학이 광고수익을 추구하는 대중 매체의 주요 수익상품이 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나


많은 대학평가 기관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파급력을 지닌 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1994년부터 대학평가를 시작한 중앙일보다. 하지만 그 파급력만큼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중앙일보의 대학평가가 비판받는 주요 이유로는 ▲대학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평가지표 ▲평가지표의 획일적 적용 ▲평가방법의 투명성 문제 ▲성균관대에 대한 후한 평가 등이 있다.
먼저 평가지표가 대학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김단아(사회·11)씨는 “대학평가의 기준이 정말 질 좋은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지표에 치중하고 있어 대학 순위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일보의 평가 지표를 살펴보면 교수의 논문 발표 수나 외국인 교원과 유학생 수, 대학 재정 등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과는 상관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의 내실화가 얼마나 이뤄지고,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배웠는지 측정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지표의 수치가 올라가면 학교의 순위가 올라가는 방식인 것이다.
그 예로 국제화 지표의 세부항목 중 하나인 ‘영어강좌 비율’을 들 수 있다. 영어강좌 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대학의 평가 점수가 올라간다. 하지만 영어강좌의 내실은 고려치 않고 무작정 숫자만 늘린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우리대학교 반현주(JCL·14)씨는 “경제 영어강좌를 들었는데 교수님의 영어 전달력이 떨어져 알아듣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교수연구 지표의 ‘교수 당 국제학술지 논문 피인용 수*’ 항목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고 교수는 지난 2012년 상위권 3개 대학 소속 교수들의 논문 피인용 횟수가 지난 2008년 대비 231%, 275%, 274% 증가한 자료를 제시하며 대학의 논문 수 늘리기 경쟁을 비판했다. 고 교수는 “순위평가에서의 논문 1편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숫자 1’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됐다”며 “좋은 논문을 썼는지, 그 논문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관심이 없고, 관심거리는 오직 숫자”라고 지적했다.

각 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평가지표의 획일적 적용도 문제시 된다. 고려대학교 김길섭(신소재·11)씨는 “평가항목에 여러 가지 평가요소들이 들어가는데 이러한 것들을 한 번에 점수화해서 획일적으로 순위를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학교마다 추구하는 정책과 중점을 두는 요소들이 다르므로 각각의 항목별로 나눠서 시행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윤 교수는 논문에서 ‘순위평가가 공정하려면 같은 범주끼리 비교해야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축구팀과 농구팀을 경기당 평균 득점수로 비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윤 교수는 미국 「US뉴스」의 대학평가 방식을 들었다. US뉴스의 대학평가는 전국 종합대학과 전국 교양교육대학, 지역 종합대학, 지역 단과대학의 4개 범주로 구분해 대학순위를 따로 평가하고 있다.
평가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중앙대 이두호(기계공학·14)씨는 “정확한 평가 기준이 제시되면 순위가 나오더라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근거도 모르는 평가에 대해 대학과 학생들은 당황하고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대해 고 교수는 “중앙일보는 평가지표를 공개하지만 특정 대학이 특정 부문에서 원점수가 몇 점이고 환산점수가 몇 점인지 공개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정보를 제한하고 있는 평가방식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에서는 순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평가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평가지표 중 하나인 ‘평판도’의 측정 방법도 응답자 표본 구성에 대표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평판도 조사의 표본이 기업체와 정부부처 인사 담당자 750명과 교육계와 예술계 350명으로 구성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논문에서 ‘대학 평판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재학생과 학부모, 교수·직원, 졸업동문, 언론인 등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된다’며 ‘이 많은 구성원 가운데 유독 기업체 인사담당자만 대학에서 교육이 잘되는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응답하게 한 근거를 모르겠다’고 기술했다.
마지막으로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는 성균관대 밀어주기라는 의심을 받는다. 성균관대의 대학순위는 1996년 10위에 진입해,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단독 6위, 2013년 단독 3위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공계 대학인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제외하고는 종합대학 중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많은 논란을 빚었는데, 성균관대는 중앙일보와 같은 계열사인 삼성이 운영하는 대학이기에 의심의 눈총은 피할 수 없었다. 한신대 사회학과 김종엽 교수는 지난 2014년 10월 1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모든 대학은 상하 한 두 계단 사이를 오가는데, 성대만이 꾸준히 상승했다”며 ’이 결과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중앙일보의 오류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허명에 사로잡혀서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방식이 필요해


대학 운영의 경쟁력을 높이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평가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언론사의 대학평가방식은 대학 본연의 정체성과 본질을 잃게 하고 있다. 대학 구성원과 대학들은 더 높은 순위를 부여받기 위한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의 삶이 숫자만으로 설명될 수 없듯이 대학의 평가도 수치만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대학평가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평가 방식이 절실하다. 그리고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 활성화를 재촉하는 대학평가로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논문 피인용지수 : 한 편의 논문이 어느 특정기간 동안 인용된 빈도수의 척도로서 그 논문이 실린 잡지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된다.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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