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부 도유경 기자(언홍영/경영·21)
보도부 도유경 기자(언홍영/경영·21)

 

『연세춘추』 보도1부 기자가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매일 아침 백양로 가판대에 있는 『연세춘추』 신문의 개수를 살펴본다. 기사가 발행되는 월요일이 지나 수요일, 목요일이 돼도 여전히 신문은 한가득 쌓여있다. 비어있는 두 손이 아쉬워 신문을 몇 부 집어 들고 주변 사람에게 묻는다. 

 

“연세춘추 신문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

 

“누구에게나 세상을 바꿀 한 줄이 있다.” 132기 수습기자 모집 공고에 적혀 있던 글이다. 독자의 시선에서 본 『연세춘추』는 ‘국내 최초 대학신문’의 위상을 유지하는 학보사였다. 학내 사안에 열정을 갖고 취재하며 세상을 바꿀 기사를 작성하는 학생기자 집단이었다. 

그러나 기자로서 바라본 『연세춘추』는 ‘읽히지 못한 채’ 90년 전통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독자는 『연세춘추』의 신문을 읽을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전에 따라 종이신문은 매체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했다. 대학사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학보사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언론의 존재 이유는 학내 사안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지만, 『연세춘추』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혹자는 대학언론은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학보사가 대학의 역사를 기록하고 학생과 대학 사회 간의 연대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중이 없는 언론은 불완전하다. 기자는 사기가 꺾이고 신문사도 언젠가 예산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기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들을 수 없다. 독자가 없는 『연세춘추』의 존립을 진정한 존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학언론의 위기를 가속하는 것은 기자의 육체를 갉아 먹는 학보사의 제작 방식이다. 보도부를 기준으로, 월요일부터 취재를 시작하면 일요일 새벽이 돼서야 신문 제작이 완료된다. 배정된 지면을 채우는 데 급급한 기자. 혼자서 수 십편의 기사를 읽어야 하는 편집국장. 새벽까지 신문 제작을 함께하는 편집 교수. 끝없는 대기와 퇴근 시간을 알 수 없는 구조까지. 지금까지 『연세춘추』가 매주 발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자 개인의 회복탄력성과 적응력 덕분일 것이다. 학생기자는 기자이기 이전에 학생이다. 취재와 기사 발행을 전업으로 하는 기자와는 다르다. 포부를 갖고 입사한 기자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직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것은 『연세춘추』의 위기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24명의 기자가 『연세춘추』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기자로서의 사명감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세춘추』가 존속할 수 있던 이유를 기자의 사명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사명감은 애정을 이기지 못한다. 구성원에 대한 애정이든,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든, 기자라는 직종에 대한 애정이든, 혹은 애증의 감정이든. 우리는 애정이 있기에 매주 기사를 발행한다. 애정에는 전파력이 있다. 내가 쏟은 애정은 곧 너의 애정이 되고, 우리의 애정이 된다. 기자들이 나눠 가진 애정 때문에 『연세춘추』는 90년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월 첫째 주, 『연세춘추』 학생기자들이 백양로를 거닐면서 개강호를 배부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신문을 건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텅 빈 가판대를 바라보는 것은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니어서, 월요일 아침마다 나는 『연세춘추』 신문을 집어 들고 묻는다. “신문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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