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명의 사람이 전쟁을 경험했다면, 거기에는 백 개의 전쟁이 있는 것”

“만일 백 명의 사람이 전쟁을 경험했다면 그들 각자가 경험한 전쟁의 모습은 제각각일 것이기에, 거기에는 백 개의 전쟁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 」 中

 

JTBC 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민관 동문(정외·06)은 약 50일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며 25건의 기사를 썼다. 그러나 그는 기사에 담아내지 못한 수많은 장면이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명징한 대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자로 일한 지 10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기자로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하는 김 동문. 자신의 글을 세상 앞에 내놓기 위해 끊임없이 기록하고 공부하는 그를 만나봤다. 

 

▶▶ 우리신문사는 지난 13일 JTBC 기자 김 동문을 만나 그의 기자 인생과 저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우리신문사는 지난 13일 JTBC 기자 김민관 동문(정외·06)을 만나 그의 기자 인생과 저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A. 책 읽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늘 책과 신문을 끼고 살았다.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대학에 들어와 학생홍보대사 ‘인연’ 활동을 하면서 기자를 준비하는 선배들과 친해졌다. 선배들이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글을 쓰면서 먹고 살 만큼 돈을 벌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선배들이 신문사 취직을 추천해 줬다. 그래서 기자를 준비하게 됐다.

 

Q. 우리대학교에서의 어떤 경험이 기자 활동에 영향을 미쳤는지.

A. 우리대학교에는 책을 읽으며 생각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 좋았다. 특히 청송대에서 책을 많이 읽었고, 낮잠도 많이 잤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 쓰는 것처럼, 기자가 돼 글을 쓰며 살아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대학 생활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써 내려간 경험이 모두 쌓여 기자 활동에 도움이 됐다.

또한 당시 우리대학교는 사상적 논의가 풍부하게 이뤄지는 곳이었다. 학교 곳곳에 대자보가 많이 붙어있었는데, 그것들을 보며 사회와 등지고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대학생들 사이에 ‘나 혼자 먹고 사는 것 외에도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만연했고, 그것이 대학생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처음부터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기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그런 분위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Q. 지난 2015년 중앙일보에서 신문기자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2017년부터 JTBC에서 방송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신문사에서 방송국으로 이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A. 중앙일보에서 일하던 중에 JTBC로 인사 발령이 났다. 발령 전날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기사를 쓰고 있었다. 다음날 방송국으로 가게 됐다고 전달받았을 때, 농담인 줄 알았다. 글을 쓰는 기자가 되고 싶었기에, 방송국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해서 방송국으로 온 건 아니지만, 지금은 만족스럽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근본적인 이유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취재라는 본질은 그대로인데, 내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만 바뀐 것뿐이다. 또한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창구는 기사가 아니더라도 많은데, 영상을 통해서 말할 수 있는 창구는 방송국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글은 취재기를 쓰든 책을 발간하든 다양한 방식을 취할 수 있다. 방송국으로 온 덕분에 글과 영상을 모두 활용해 내 생각을 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Q. 기자 생활 중 국방대 안보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A. 기자 생활 5~6년 차부터 한계를 느꼈다. 사람을 만나 취재를 하다 보면 내 생각보다는 그 사람의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그 생각을 기사로 계속 풀어냈다. 그걸 계속하다 보니 무언가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다.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을 듣고 기사를 써 내려가는 것을 ‘기사를 턴다’라고 표현한다. 계속 털어내기만 하다 보니 스스로가 채워지지는 않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채워놓은 제 살을 깎아 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를 해보면 그런 결핍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석사 과정을 밟게 됐다.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동시에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니 배운 것들을 빨리 흡수할 수 있었다. 기자 활동을 하며 국회의원, 국방부 장관, 차관, 국장 등을 만나는 게 일상이다 보니, 그들에게 언제든 공부한 내용을 묻고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특권이었다. 또 학계와 현장 그 사이에 있는 중간자 입장에서 공부해 보니,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느꼈다. 동시에 결국 학계와 현장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는 순간마다 큰 재미를 느꼈다. 현재는 우리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인 ‘통일학협동과정’을 밟고 있다.

 

Q.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을 취재했다. 전쟁 취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취재를 나가기 전까지 고민이나 두려움은 없었는지.

A. 결심이라기보다는 본능적으로 당연히 가고 싶었다. 전쟁 현장은 기자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다. 공무원도 군인도 아닌 언론인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다. 그래서 기회가 생긴다면 무조건 가고 싶었다. 폭탄을 맞아 죽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가지 않아 평생 아쉬워하며 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못 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고민과 두려움은 많았다. 수도 키이우로 들어가기 직전, 예약해 뒀던 호텔 주변이 폭격을 맞았다. 함께 가기로 한 다른 방송국은 결국 일정을 취소했다. 그런데 나는 낙장불입이라고 생각했다.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이기도 했지만, 우크라이나로 가서 폭탄을 맞을 운명이라면 한국에 남아있어도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벌어질 일은 결국 벌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

 

Q. 전쟁 현장을 취재했으나 방송에 내보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 중 가장 내보내고 싶은 장면은.

A.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백 구의 시신을 묻은 장의사를 만났다. 그와 인터뷰하는 동안 중간중간 찾아오는 정적이 있었다.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장의사가 말을 잃어버리곤 했다. 뉴스로는 짧게 편집돼 나갔는데, 그 정적의 순간들을 좀 더 길게 내보내고 싶다.

장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현장에서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답변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 방언 터지듯 말을 시작했다. 본인의 슬픈 상황을 전하고 싶은데, 말을 하면 너무 슬퍼지니까 방어기제가 작동했던 것 같다. 나는 그들이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의 긴 정적을 느껴봤지만, 시청자들은 그 정적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정적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다. 

 

▶▶ 김 동문이 전쟁 취재 경험을 담은 저서 『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을 들고 있다.
▶▶ 김 동문이 전쟁 취재 경험을 담은 저서 『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을 들고 있다.

 

Q. 지난 11월, 『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을 발간했다. 전쟁 취재 경험을 공유한 저서를 발간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우크라이나에는 두 차례 방문했다. 지난 2022년 3월 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와 2022년 7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도시 곳곳이 초토화됐을 때였다. 처음 우크라이나에 갔을 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어차피 못 잘 거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에 기록을 시작했다. 두 번째로 우크라이나에 갔을 때는 좀 더 세세하게 기록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 기록을 정리하면서 ‘이 기록을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어줄지를 떠나서, 그 자체로 귀중한 기록이라고 생각했기에 발간을 결심했다. 내가 기록해서 귀중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로서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하는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Q. 『전쟁이 말하지 않는 전쟁들』에서 기성 언론의 시각으로는 전쟁의 진실을 모두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기성 언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선악 구도’를 중심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전쟁을 선악 구도로 바라본다는 것은 전쟁의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전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그저 가족과 친구를 잃거나, 본인의 몸을 많이 다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을 지켜내야 한다’는 대단한 민주주의 의식이 아닌, 그냥 ‘슬픔’이다. 너무나도 큰 슬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명분과 잣대를 들이대고, “민주주의에 힘써주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전쟁에는 선악 개념이 있고, 지켜야 할 가치도 있다. 그러나 선악을 재단하고 전쟁의 명분과 이념을 논하기 이전에, 사람을 먼저 봐야 한다. 책에서 배운 이론이나 가치로 전쟁을 논하는 게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Q. 기자라는 직업을 계속 영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A. 10년 차인 지금도 기자 일이 재밌다. 다른 직장에 10년째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 직장생활이 어떤지 물어보면, 다들 곡소리를 한다. 그런데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물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도 있다. 지금도 열흘째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다. 그런데도 재밌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취재하는 이 직업 자체가 재밌게 느껴진다. 기자라는 직업은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몸은 힘들지언정 정신은 힘들지 않을 수 있는 직업이다. 정신이 힘들지 않다는 것도 기자 일을 하게 되는 원동력 중 하나인 것 같다. 

 

Q. 기자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기자는 기본적으로 계속 궁금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푸는 게 공공의 선과 맞닿아 있다면 가장 좋다. 나도 그럴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내 궁금증과 공공의 선이 맞닿는 그 지점이 취재의 핵심이고, 그 핵심을 찾아 풀어가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A. 좋은 책을 한 권 쓰고 싶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을 텐데, 그것들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정리해 둔 것들을 읽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여럿이 공유해 볼 만하다고 느끼는, 그런 책 한 권을 남기는 것이 나의 목표다.

 

Q. 언론인을 꿈꾸는 우리대학교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A. 언론인은 좋은 직업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우선 기자로서 본인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기회는 거의 없다. 초반에는 그 괴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이 많다. 또 일하는 시간에 비해 돈을 적게 벌기도 한다. 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언론인이라는 직업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궁금한 걸 파헤치는 것이 아주 즐겁다. 어떤 마찰이 있더라도 진실을 추구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언론인만큼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다.

대학생 때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대부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닫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기 생각을 하나의 글로 완성해 낸 것을 보면 절로 겸허해진다. 또한 학점에만 매몰돼 있지 말고, 사람도 많이 사귀며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렸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 보면 내가 언론인에 맞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세빈 기자
bodo_sevinteen@yonsei.ac.kr

사진 송하영 기자
new_ag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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