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강조하는 사회, 쉽게 길들여진 우리

연순이는 얼마 전 생일이라 부모님으로부터 100만 원을 웃도는 명품 지갑을 선물 받았다. 한편, 집안 사정이 어려운 세순이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벅차 변변한 지갑 한 번 써본 적이 없다. 명품 지갑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 앞에서 낡아빠진 싸구려 지갑을 꺼내느니 차라리 필요한 카드만 들고 다닌다는 세순이의 눈빛은 서글펐다.

▲ 연순이의 소지품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고가의 물건이다
▲ 세순이의 소지품은 연순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건이다

위는 우리대학교 학생 두 명의 가방 속을 들여다본 사진이다. 한 명의 가방 속에는 명품 지갑은 물론이고 각종 고가의 재화들이 가득했지만 다른 한 명의 가방에서는 그녀의 고달픈 생활이 묻어났다. 너무나 다른 두 가방 속에서 비슷한 것이라곤 주민등록증과 연세대 학생증뿐이었다. 이런 그들에게 자신의 경제 수준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물었다. 놀랍게도 두 가방의 주인 모두 자신의 경제적 수준에 대해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수준에 상관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언제나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 자크 라캉(Jacques Lacan) -

우리가 경험하는 상대적 박탈감은 라캉의 말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욕망’하는 꿈과 가치를 우리도 똑같이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단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은 우리 사회가 규정해 놓은 ‘좋은 가치’들을 좇는다. 하지만 그 ‘좋은 가치’라는 것은 한정돼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 속에서 ‘탈락자’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숭실대 고대홍(철학·11)씨는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자신이 처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쫓기듯 따라가게 되고 거기서 뒤처지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고씨는 “우리 젊은 세대가 박탈당한 것은 좋은 직장, 차, 돈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가치관인 것 같다”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스펙 경쟁

 우리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나름의 ‘좋은 가치’들을 추구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좋은 가치’를 경제적 풍요와 그것과 직결되는 ‘괜찮은 직장’으로 생각한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청춘을 바치지만 이 또한 다닐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돼 있기에 불합격자들이 양산된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 결과(2013년)에 따르면, 취업을 앞둔 대학생 또는 졸업생의 37.8%가 ‘취업 준비 또는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을 했거나 졸업을 연기했다’고 답했고 21.6%는 ‘앞으로 그럴 계획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대학생들이 취업을 선호하는 기업으로는 대기업(23.6%), 공기업 또는 공무원(20.1%), 중견기업(14.7%), 중소기업(10.1%) 등의 순이었다. 취업을 준비 중인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을 연기하면서까지 대기업과 공공기관 취업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많은 대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고 있다. 박동우(사회·10)씨는 전공에 따라 취업에서 차별을 받는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박씨는 “취업 시장에서 상경대와 비상경대의 취업 관문이 다르다”고 전했다. 중앙대 이찬호(토목·11)씨도 비슷한 이유에서 무기력감을 느낀다. 이씨는 “취업시 회사에서 요구하는 전공이 너무 특정과에 몰려 있다”며 “취직이 잘되는 과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노력이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취업시장에서 불리하다는 것에 좌절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에 압도돼 인간관계도 악화됐다. 이씨는 “끝없이 펼쳐지는 경쟁과 각박해져가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다보니 외톨이가 돼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포항공대 이상민(물리·09)씨도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진로준비를 해도 흔히 말하는 먹고 살만한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하고 애 낳고 돈 모아서 집사는 것과 같은 소소한 꿈마저도 이루기 힘들다”고 밝혔다.

외모도 스펙이라는데…

박탈감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소는 외모다. 최근 ‘외모가 스펙’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만큼 외적인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조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대학생들은 외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한다. 우리신문사에서 지난 6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관련기사 매거진 11호 2,3면 ‘연세인들이 생각하는 가꿈의 의미를 zip다’>에 따르면 우리대학교 학생 852명 중 431명(50.6%)이 자신의 외모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만족의 가장 큰 이유로는 83.6%의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꼽았다. 이는 뛰어난 외모가 사회생활을 보다 유리하게 하기 때문이다. 편미정(신방·11)씨는 "외모가 빼어난 사람들이 그들의 실력이나 노력에 비해 혜택을 받는 것이 많은 것 같아 박탈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중앙대 김아무개(경영·12)씨도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며 “반면 나같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해야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외모가 취업 시장의 합격 여부를 암묵적으로 결정한다는 점도 대학생들의 박탈감을 가중시킨다. 실제로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 결과(2011년)에 따르면, 국내 기업 인사담당자 90.2%는 면접시 ‘지원자의 외모가 채용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43.8%는 ‘외모는 채용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김다희(사회·10)씨는 “취업시에 외모의 중요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는 친구들을 여럿 봤다"고 전했다.

대학 사회에도 빈부격차는 예외가 아냐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나날이 더 심해지고 있다. 대학 사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지난 5월 27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남녀 대학생 638명 중 89.7%가 돈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순간으로는(복수응답) ‘해외 배낭여행 또는 어학 연수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떠나는 친구를 볼 때’가 64%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서 ‘평소 용돈을 풍족하게 쓰는 친구를 볼 때’ (47.0%),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친구를 볼 때’(31.6%), ‘등록금을 학자금 대출 없이 내는 친구를 볼 때’(30.6%)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이규승(노문·10)씨는 “우리 집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집이 훨씬 잘 살아서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런 친구들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할 수 있고 사고 싶은 것도 쉽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민 씨도 “나보다 많이 가진 친구들이 즐겁게 누리고 사는 것을 보면 부럽다”며 “다른 것들은 노력을 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만 부모가 잘 나가거나 돈이 많은 아이들은 따라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싼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로 인한 부담도 대학생들의 박탈감을 가중시킨다. 유아무개(경영·12)씨의 경우 집안사정이 어려워 학자금을 대출해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시간의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없어 학점을 잘 받지 못한다. 유씨는 “아무런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는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상황을 악화시켜

지난 2013년 8월 15일 미국 미시간대 신경과학 연구팀은 페이스북이 우리의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페이스북 상에서는 아주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직장에서의 성공담이나 멋진 여행 등 행복한 순간 위주로 페이스북에 올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페이스북 이용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며 대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외대 고동완(경영·10)씨는 “여자 동기들이 취직하기 시작한 시기라 SNS를 통해 직장인이 돼 사회에서 뭔가를 이뤄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 박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금찬영(신방·11)씨도 “지금까지 상대적 박탈감은 가까운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느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SNS가 상대적 박탈감을 악화시키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근원은?

대학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각자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와 관련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학생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사회적 병폐에 대해 명지대 기록대학원 강규형 교수(역사학)는 “높은 대학 진학률과 어려서부터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무려 80%가 넘는데 그로 인해 대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기대수준이 폭발적으로 높아져 있다”며 “하지만 이러한 기대수준을 충족시킬 만큼 우리 사회가 고도성장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그 기대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한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한국사회는 엄청난 경쟁사회라 어려서부터 경쟁을 강요한다”며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모든 면에서 승자와 패자를 확연히 갈라놓았다”고 말했다. 이어서 “한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덤비는 공부만 하더라도 소위 ‘승자’는 극소수만이 할 수 있다”며 “이것이 대학생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패배의식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지난 여름, 이른바 ‘학내 카스트’ 문제를 다룬 교내의 한 자치언론의 기사로 인해 우리대학교의 이름이 끊임없이 주요 포털사이트에 오르내리곤 했다. 해당 기사는 “정시생들은 이들(원주캠퍼스 학생, 수시입학생, 편입생)을 벌레 보듯 한다”고 표현함으로써 마치 우리대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소속캠퍼스와 입학전형에 따라 ‘골품’을 나눌 정도로 철저한 서열의식에 빠져 있는 듯 그려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매일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서열과 박탈감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른바 ‘성골’이라 칭하는 정시출신 상경대 학생들조차도 승리의 달콤함을 만끽하며 우월함 속에 살아가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타과 출신 이중전공생에게 밀려나 재수강을 하게 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대학생들이 느끼는 진짜 박탈감이라는 것은 단순히 줄지어진 서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다 해도 어느 한 구석으로부터 느껴지는 공허함. 아울러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완벽함을 강요하는 사회와 그것에 너무나 쉽게 길들여진 우리들의 뒷모습이라 할 수 있다.
 

 

글 강달해 기자
dalhae7070@yonsei.ac.kr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사진 이준호 기자
bonojuno@yonsei.ac.kr
<자료사진 joynsad, blog.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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