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피로하다. 독일의 주요 언론 매체가 주목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책 『피로사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현대사회는 ‘성과사회’며 그 이면은 ‘피로사회’다. 사람들은 성공과 부를 향해 끊임없이 자신을 착취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피로와 탈진 상태를 가져온다. 자본주의 사회가 우울한 까닭은 이렇듯 피로가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피로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나 피로한 상태여서 불안하다.
말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들의 심리를 표현한다. 이 때문에 유행어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 월요병, 불금, 불토, ‘개그콘서트가 끝나면 무서워…’ 등은 현대인들이 쉽게 하는 말이다. 이렇게 바쁜 경쟁사회에서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을 위협하는 각종 증후군이 주목받고 있다.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 각종 증후군을 알아보자.

오늘도 내일도 피로한 우리, 번 아웃

번 아웃(Burn out) 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인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지난 6월 30일 『MBC 다큐스페셜』의 ‘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 아웃’은 피로사회가 된 대한민국 이야기를 다루며 번 아웃 증후군을 소개했다. 방송 이후 번 아웃 증후군은 실시간 검색 순위에 등장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무한 경쟁의 현대사회에서 번 아웃 증후군은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느낀다고 한다. 조선대 구진경(건축학과·12)씨는 “밤을 새워 작업하는 학과 특성상 일에 과도한 힘을 쏟는 경우가 많다”며 “극도로 피로감을 느껴 하루 종일 잠만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무기력함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직결된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번 아웃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계속된 입시 경쟁의 압박과도 연결된다”며 “이를 치유할 새도 없이 또 다른 경쟁에 시달리는 악순환적인 반복의 결과”라고 말했다. 게다가 번 아웃 증후군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닌 수면장애, 우울증과 같은 질병까지 유발한다. 서울신경정신과의원 여혜빈 부원장은 “적절한 휴식이나 충전의 시간 없이 지나치게 일에만 몰두하면 어느 시점에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 부원장은 “특히 한국사회는 청년들에게 취업 등 과도한 경쟁을 통한 생존을 요구한다”며 “생존에 대한 불안이 급증해 심한 무기력감,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가 되고 싶어… 대학생 절반 ‘피터팬 증후군’

“나는 젊음이고, 즐거움이야. 그리고 알을 깨고 나온 작은 새야”
-제임스 매슈 배리 『피터팬』 中-

『피터팬』은 평범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 피터팬을 따라 상상 속 동심의 세계 네버랜드로 날아가 펼치는 갖가지 모험 이야기다. 작가 제임스 매튜 배리는 어린 시절 형이 스케이트를 타다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죽은 형이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아이로 머물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형에 대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피터팬』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댄 카일리는 몸은 어른이지만 어른의 세계에 끼지 못하는 ‘어른아이’가 늘어나는 사회 현상에 ‘피터팬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캥커루족’은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이라는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면 피터팬 증후군은 이들의 심리적인 취약성에 의한 것이다. 경제적인 상황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독립이 늦어지거나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 어른아이에 머물려는 이들을 피터팬 증후군이라 명명한 것이다. 리우 슈치(정경경제‧12)씨는 “성인이 됐지만 아직도 마음은 어린아이 같다”며 “특히나 미래가 불안한 요즘은 아이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말했다. 이에 신 교수는 “과거에 비해 부모가 자식을 관리하는 정도가 너무 커졌다”며 “대학생들이 성장과정에서 스스로 자아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 부원장 역시 “현 세대는 좌절과 고통을 풀어나갈 내면적 힘을 기르지 못했다”며 “부모와의 부적절한 상호작용과 환경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현실을 부정하고  퇴행됨으로써 어른아이가 돼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각종 증후군은 세상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기술이 발전하고 몸이 편해지는 대신, 우리는 정신적인 압박감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각종 증후군 역시 일종의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현명하게 잘 대처해야 한다. 여 부원장은 스트레스 대처를‘마음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을 관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한 생존경쟁을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힘겹게만 느껴지던 세상에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쉬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재독: 독일에 거주함.


 김은샘 기자 
 giantbaby112@yonsei.ac.kr
그림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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