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영화 『홀리데이』 中-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  참 씁쓸하고 불편한 말이다. 영화 『홀리데이』에서 돈 없는 것이 죄가 된 시대적 배경은 1988년의 한국이지만 오늘날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현재 2030세대를 가리켜 일명 ‘삼포세대’라고 부른다. 시장조사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39세 성인 남녀 천 명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30세대의 65.7%는 자신들을 일컫는 ‘삼포세대’라는 표현에 동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그만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이 세 가지를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인하대 조희선(국제통상학과·13)씨는 “‘삼포세대’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용어”라며 “내 경우는 재수를 해서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높은 등록금, 학자금 대출상환, 기약없는 취업준비, 불안정한 일자리, 치솟는 집값 등 청년들의 미래는 한숨이 나오는 말로 가득하다. 특히 만성화된 청년실업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졸업은 했는데 갈 곳이 없고 취업을 해도 불안정하다. 높은 등록금과 주거비를 해결하려면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다. 결국 대학생들은 빚을 지고 공부를 한다. 사치하느라 돈을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니고 공부만 했을 뿐인데 빚이 늘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을 지고 가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다.

무엇이 청년세대를 힘들게 하는가 <1. 사회구조>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 여러 집단 중 ‘청년세대’라는 집단이 있다. 당시 ‘청년세대’는 경제위기 이후의 실업 및 불안정한 고용이 장기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사회적 약자 집단으로 전락한 이들은 학문적으로는 ‘생애과정 관점’*, 즉 현재의 ‘청년세대’가 처한 역사적 시간 및 사회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70~8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이었던 산업역군**의 생애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고실업 시대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의 생애는 다른 과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애과정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사람은 교육을 받아 사회화 과정을 겪고, 성인이 돼 사회로 진출한다. 이후 사회에서 취업을 하고 가정을 꾸려 살아가다가 퇴직을 하고 노년을 맞이하는 보편적인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 속에서 청년기에 어떤 구조적인 환경에 놓여있는가에 따라 그 세대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이전 세대의 경우에는 청년기에 정치적인 권위주의 환경이 강하게 작용해 대학생들과 사회운동이 밀접하게 관련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비정규직, 높은 청년실업률 등이 만연한 환경에 놓여있어 구직난이라는 고통을 겪고 있다. 현재 우리사회 ‘삼포세대’들의 문제는 이런 사회구조적인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은 2013년 기준 2.9%로 OECD국가에서 실업률이 굉장히 낮은 수준이다. 반면 고용률 역시 65%로 낮다. 특히 청년고용률은 OECD국가 중 유일하게 40%대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불완전한 고용 특성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고용이 완전하게 된 것도, 그렇다고 고용이 아예 되지 않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즉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불완전한 고용상태가 두드러지는 것이 한국의 특수성”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실업률이 50%가 넘지만 고용과 실업의 상태가 명확하게 구분돼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년층은 학생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시 노동자이기도 하는 등 실업과 취업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짓기가 너무 어렵다. 정부는 이런 특수한 상황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실업률이 낮다고 발표한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안정적인 고용상태에 있는 청년층이 너무 적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신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며 “하지만 높은 교육수준에 걸맞은 좋은 일자리가 너무 적다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설령 눈높이와 맞는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어느 쪽이든 안정된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신 교수는 “이러한 끊임없는 구조적 불안정성이 ‘삼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청년세대를 힘들게 하는가 <2. 고용없는 경제성장>

현재 2030세대는 대학 진학과 취업 준비로, 지금의 5060세대가 청년이었던 시대보다 노동시장 진입이 늦다. 일명 ‘취업 재수·삼수’를 거치고 취업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취업이 될 때까지 휴학과 졸업유예를 하는 일도 허다하다. 이에 자연스레 이전 세대보다 시장으로의 진입이 늦어지게 된 것이다. 박천일 교수(정경대‧경제학)는 “현재 청년세대는 풍요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 아무 곳에나 취직하던 부모세대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고용없는 경제성장이 문제”라며 ”수출의존도가 심해진 반면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소비‧투자 비중이 줄어 경제성장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상황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신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독식구조 때문에 총량적인 경제지표가 개선됐을 때 이득을 보는 집단은 대기업”이라며 “청년층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용없는 경제성장 문제의 대표적 사례로 IT산업을 살펴볼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계속해서 유망한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IT산업은 구조적으로 고용유발 효과***가 큰 산업 분야는 아니다. 박 교수는 “IT산업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에서 인력을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는 고용 자체가 별로 없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런 시기에도 기업은 좋은 인재를 뽑으려 하고 학생들은 선택 받기 위해 계속해서 스펙 경쟁에 시달린다. 박 교수는 “기본적으로 일자리의 파이 자체를 늘려야 한다”며 “계속되는 취업 경쟁으로 스펙을 쌓기 위한 경제적 부담이 과중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경기가 회복세를 맞이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저금리·저성장 탓에 투자로 자산을 늘리기도 어려운 시기다. 박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대학생들은 개인 신용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개인 신용관리는 대학의 높은 등록금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높은 등록금에 못이겨 대출을 받는 학생이 늘어나는데 이들은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개인 신용관리에는 사채 문제도 포함된다”며 “이는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라며 “정부의 지원제도인 국가장학금 등으로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부담을 덜려면 기본적으로 대학생 수가 줄어야 한다”고 말했다.


힘내라 청년세대!

기성세대는 현재 청년세대의 문제와 그들이 겪는 고통을 마음이 약해서 생긴 문제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신 교수는 “이는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시선”이라며 “많은 청년들은 힘든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세대가 처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사회의 경제구조부터 시작해서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신 교수는 “사회가 만들어낸 문제이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청년세대”라고 말했다. 사회가 만들어낸 문제라고 해서 기성세대에게 이를 맡기고 번 아웃(Burn out)된 상태로 있다면 계속해서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문제 해결에 대한 절실함과 역량을 가진 청년들이 책임을 지고 악순환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전에 이미 지칠대로 지친 심신을 달래는 일도 필요하다. 신 교수는 “힘들고 아픈 일은 참지 말고 이야기해야한다”며 “또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객관화하고 대상화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 비록 우리가 갈 길은 멀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다독일 때 우리는 ‘삼포세대’라는 우울한 이름을 벗고 건강한 청년세대로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또한 기성세대와 사회 역시 청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어 함께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생애과정 관점 : 생애과정을 제도와 역사에 내재된 단계화된 연령구조로 인식하고, 맥락적 관점에서 개인과 집단의 생애를 이해하려는 이론적 방향이다.
**산업역군 : 60~70년대 우리나라 산업의 밑거름이 됐던 석탄산업의 광산근로자 및 70년대 중화학단지 근로자를 지칭한다.
***고용유발 효과 : 고용을 일어나게 하는 효과


 김은샘 기자 
 giantbaby112@yonsei.ac.kr

그림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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