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노동자, 학내 구성원으로서 기본권 존중받아야

우리대학교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네 달간 이어왔다. 지난 2일 구두합의가 이뤄져 최종 합의서를 체결을 앞둔 상태다. 그러나 시위를 둘러싸고 터져 나온 논란은 여전하다. 소음에 맞선 소송, 노동권과 학습권의 충돌. 모두 대학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연세춘추 사회부 기획취재팀은 우리대학교 학생으로서,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청소노동자의 동료 시민으로서 대학을 돌아보고자 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각자도생의 정글로 변하고 있는 지금,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논의하는 장이 대학에 절실하다. 세 편의 기획을 반성문 삼아 대학사회에 묻는다. 대학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나.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기자 주>

 

청소경비노동자 시위는 적법하다

 

불법 시위 고소 당사자입니다.’ 지난 5월 우리대학교 학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동수(정외·20)씨를 포함한 재학생 3명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시위를 미신고 집회로 고발했다는 내용이다. 학내 필수노동자 소송 사건은 이들의 시위를 공론화하는 불쏘시개를 제공했다. 학생과 노동자가 맞서는 구도가 조성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 본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 우리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바닥에 앉아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제공
▶▶ 우리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바닥에 앉아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제공

 

해당 게시물에서 이씨는 연세대분회 시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면서도 소음을 유발하는 행위가 고소·고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18841전례 없는 학내 집회 고발, 노조 시위에 제동될까?’> 이씨는 게시물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사는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으로 인해서 왜 학생들의 공부가 방해받아야 합니까. (중략) 청소노동자의 월급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들은 바로는 300~400만 원 정도입니다.’

이씨가 주장한 청소노동자 월급 액수는 사실이 아니다. 청소노동자가 받는 급여 실지급액은 200만 원이 채 안 된다. 학생의 학습권이 노동자의 노동권보다 앞선다는 인식은 허위 정보를 수용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300~400만 원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고, 노동자들의 실제 월급은 가려졌다.

법무법인 한별 구자룡 변호사는 시위의 본질은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며 소음의 수인한도가 법에서 정한 기준을 넘지 않는다면 필수노동자의 시위는 허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내 필수노동자들의 시위가 적법하다는 해석이 힘을 받고 있다. 노동 쟁의가 일어났을 때 노동관계 당사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정상적인 업무 운영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집회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시법으로만 문제를 해석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노동법에 따라 해당 사안을 검토한다면 쟁의행위의 성격을 가진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는 적법하다"고 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 쉽게 해결할 일을 굳이 키워서 어렵게 해결한다는 의미다. 해당 속담이 몇몇 재학생들이 제기한 소송에 적용된다는 시각이 있다. 이씨는 시위로 인해 1시간 동안 수업을 제대로 못 들었다며 불편을 토로했으나, 소송을 제기해 승패를 가려내는 과정 역시 불편하기란 마찬가지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1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01심 민사합의 사건의 경우(동일인 과다 소송 제외) 소송을 처리하는 데 평균 11.2개월이 걸렸다. 통상 1년 정도를 견뎌야 판결을 받아 볼 수 있는 셈이다. 누군가 1심 판결에 불복한다면 소송 기간은 더 늘어질 수 있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시위
지지부진한 권리 보장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매년 열악한 노동 환경을 호소해왔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60A씨는 지난 20198월 창문 없는 휴게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서울대 대학생 모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은 같은 달 14일 성명문을 발표해 고인이 숨진 휴게시설은 곰팡내가 코를 찌르고, 창문이나 에어컨도 없이 계단 아래에 마련된 간이공간이었다고 지적했다. A씨가 사망한 배경에는 환기조차 잘 되지 않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2년 뒤 비슷한 문제가 서울대에서 또 발생했다. 이번엔 청소노동자가 근무 도중 사망했다. 지난 2021711일 서울대 총학생회와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2년 전의 비극이 있었음에도 바뀐 것이 없는 서울대에서 사람이 또 죽었다학교는 학내 노동자 업무 강도와 근무 환경 문제를 파악하고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하다. 어느 대학이든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시위 구호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대학교 필수노동자들의 곁에는 휴게실 개선, 샤워실 설치, 학교가 보장하라는 현수막과 피켓이 나부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김현옥 분회장은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로 우리대학교에서도 휴게실을 마련하긴 했으나,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했다.

지난 7월 고려대에서도 학내 청소·경비·주차노동자들이 임금 및 근로 여건을 보장해달라는 농성을 진행했다. 이들은 왜 투쟁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걸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 서재순 분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말을 해야 조금이라도 (근무 환경이) 바뀌더라. 어떤 대학이든 학내 필수노동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이다. 시급을 조정하려면 결국 학교와 교섭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매번 교섭에 미온적으로 반응한다. 임금 인상을 위해 거리로 나와 요구안을 외칠 수밖에 없다.”

연세대·고려대 필수노동자들은 모두 최근 시위에서 시급 440원 인상을 내걸었다. 440원은 학내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필수노동자들이 나선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당 구호는 최저임금 시급 인상분을 임금에 반영해달라는 하청노동자들의 상식적인 요구와 닿아 있다. 지난 2021년에도 고려대 필수노동자들은 당시 인상분인 130원을 임금에 반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저의 삶에 이들의 노동이 묶여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노동자들의 요구가 세간의 우려만큼 무리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 서 분회장의 급여명세서. 7월부터 공제금이 올라 실지급액이 지난달보다 감소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 서재순 분회장 제공
▶▶ 서 분회장의 급여명세서. 7월부터 공제금이 올라 실지급액이 지난달보다 감소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 서재순 분회장 제공

 

최저임금 시급 인상분만큼 시급을 올려받지 못하면 이들은 어떤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까. 서 분회장은 월급이 안 오르면 사실상 월급이 줄어든다고 했다. 지난 5월과 6월 서 분회장은 월급으로 186210원을 받았다. 그런데 7월 급여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1854898. 오히려 월급이 줄었다. 지급액은 같지만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공제액이 전보다 조금 높아진 탓이다. 서 분회장은 건강보험료가 곧 인상된다는 소식도 들린다공제금이 오르는 상황에서 시급이라도 오르지 않으면 생계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와 저항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수노동자가 대학에서 사라지면
학교 전체가 엉망진창이 된다

 

대학이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학내 필수노동자 권리 보장에 대한 책임을 용역업체에 미루는 사이, 몇몇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를 고소했다. 이씨는 게시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고소에 이르게 된 계기는 시위 소음이 제가 수업을 듣던 백양관까지 들려서입니다. (중략) 교수님 말씀을 제대로 못 들은 채이들에게 강의실 안 교수의 강의는 말씀이었고, 강의실 밖 노동자들의 시위는 소음이었다. 학교와 일부 학생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들은 모두 필수노동자를 학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시위라는 방식을 문제 삼았다. 과격한 투쟁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학내 필수노동자들은 시위를 하지 않으면 대화의 장을 열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를 쓴 채효정 작가는 "어떤 노동자가 대화를 마다하고 힘든 투쟁을 선택하겠는가"라며 "시위라도 해야 사측과 협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수노동자들은 투쟁하지 않고도 권리를 보장받을 날을 꿈꾼다. 서 분회장은 매년 임금 협상을 해야 해서 피켓을 들지만, 장년의 노동자들이 땡볕에서 투쟁하기란 여간 벅찬 게 아니다좋아서 투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매년 오르는 최저임금 시급 인상분만이라도 학교 측이 수용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내 필수노동자들의 시위는 자신들을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해달라는 절박한 외침이다.

그럼에도 대학은 학내 필수노동자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학교가 아닌 하청업체와 계약한 근로자라서다. 이에 대해 구 변호사는 근로계약 관계가 맺어지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학내 필수노동자의 근로로 학교가 누린 이익이 있다면, 법에 정해진 쟁의행위 안에서 이들의 주장을 학교가 외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애당초 실질적인 사용자인 학교 본부가 필수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들을 구성원으로 끌어안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실 하청업체 소속으로 고용됐더라도 필수노동자들을 학내 구성원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채 작가는 필수노동자가 없는 대학을 상상해보자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일주일 동안 파업하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요. 강의실부터 화장실까지 학교 구석구석이 엉망이 될 겁니다. ‘필수노동자라는 이름에서 알아차릴 수 있잖아요. 이들은 학교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응당 학교의 구성원이죠.”

누군가에게 학교는 직장이다. 학내 필수노동자들은 학교를 일터로 삼고 있는 학내 구성원이다. 구 변호사는 어느 직장을 막론하고 직원의 기본권을 부정할 수 없다학내 필수노동자는 기본권을 향유하는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내 필수노동자들이 시위에서 주장하는 권리는 학생들의 권리와 맞닿아 있다. 이들을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때 나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다. 구 변호사는 말했다. “학내 노동자의 목소리가 억압된다면 나중에 그 학생들이 어떤 사안에 관해 목소리를 낼 때 그간 자신이 억압한 만큼의 제약을 받게 된다. 내가 누릴 기본권은 내가 허용한 만큼 보장된다.”

 

학생사회에서 시위가 갖는 의미는 타인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치환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우리대학교 청소노동자 소송 사건이 남긴 건 나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학생사회의 관심이 이제는 대학 구성원 전체를 향할 때다. <다음 편에 계속>

 
 

사회부 기획취재팀
chunchusocio@naver.com
글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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