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로에서 울려 퍼진 5개월간의 외침을 좇다

우리대학교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네 달간 이어왔다. 지난 2일 구두합의가 이뤄져 최종 합의서를 체결을 앞둔 상태다. 그러나 시위를 둘러싸고 터져 나온 논란은 여전하다. 소음에 맞선 소송, 노동권과 학습권의 충돌. 모두 대학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연세춘추 사회부 기획취재팀은 우리대학교 학생으로서, 대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청소노동자의 동료 시민으로서 대학을 돌아보고자 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각자도생의 정글로 변하고 있는 지금,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논의하는 장이 대학에 절실하다. 세 편의 기획을 반성문 삼아 대학사회에 묻는다. 대학은 어떤 공간이어야 하나.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기자 주>


휴게실 개선, 샤워실 설치. 학교가 보장하라!”
인간답게 살고 싶다. 생활임금 보장하라!”

 

지난 20198월 서울대에서 60대 청소노동자가 창문도 없는 한 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사망했다. 노동자들의 휴게공간 확보와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계기였다.

그 뒤 지난 4, 임금 인상과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우리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그들은 뜨거워진 백양로에서 목소리를 냈다. 여전히 처우는 차갑고 열악했기 때문이다. 2021817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됨에 따라 최소 6이상의 휴게 시설 설치가 의무화됐음에도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법안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대학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백양로에 나설 수밖에 없었나.

 

▶▶ 투쟁 내용이 담겨있는 벽보를 붙이고 있는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제공
▶▶ 투쟁 내용이 담겨있는 벽보를 붙이고 있는 청소노동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 제공

 

그들은 왜 백양로에 나섰나

 

노동조합은 매년 11월 이듬해의 임금과 근무조건을 결정하는 교섭을 하청업체와 진행한다. 지난 202111월에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아래 연세대분회)임금 인상 인력 확충 시설 보완 등을 요구하며 하청업체와 교섭했으나, 협상은 올해 7월까지 타결되지 않았다. 하청업체와 노조 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 202111월 열린 최초 협상에서 시급 1800원을 제시했다. 기존의 임금인 9390원에서 1410원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업체 측이 임금 인상을 거부하면서 사안은 지방노동위원회(아래 지노위)로 넘어갔다.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행정기관인 지노위에서 노조는 미화직 400원 인상, 경비직 440원 인상을 최종 요구안으로 확정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분인 440원 수준의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200원 인상안을 고수했다. 우리대학교 총무처 서기환 총무팀장은 작년에만 40억 이상의 적자가 날 정도로 재정 부담이 심하다시급을 400원 인상하면 인건비로 10억 원 이상이 추가로 지출되기에 임금인상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력 측면에서 노조는 정년퇴직 인원을 충원해달라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원이 줄어 사실상 구조조정이 이뤄진다는 이유에서다. 올해만 3명의 노동자가 퇴직했다. 연세대분회 손승환 조직부장은 정년퇴직 인원에 대한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이 과중해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서 팀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에도 직접적인 구조조정을 하지는 않았다우리대학교는 꾸준히 노력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시설 보완 차원에서 노조 측은 샤워실 설치를 위한 공동 협의기구 설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지금껏 충분히 시설 보완에 힘써왔다고 주장했다. 서 팀장은 논의가 제기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존에 노조 측은 시설에 거의 불만이 없었으나, 시위 사안이 언론에 보도되자 요구사항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서 팀장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손 조직부장은 꾸준히 시설 개선을 위한 협의기구를 설치해달라 요구했다학교 측과 지속해서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김 분회장 역시 노동자들의 요구가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분회장은 학교 동쪽에서 일하는 조합원을 위한 샤워실은 없다거리가 먼 샤워실에서 샤워하면 근무지로 복귀하며 또 땀이 나 무용지물이다고 설명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학교는 대화에 나섰다. 지난 718일 안 의원을 비롯한 5명의 국회의원이 서승환 총장과 면담을 진행한 후 학교, 노조, 국회의원 간 3자 간담회가 열렸다. 협상이 결렬된 뒤 학교가 보인 첫 공식 행보였다. 이후 82, 노조 측과 용역업체가 구두로 요구사항을 합의했다. 학교 측은 임금 인상, 인력 충원, 시설 개선을 약속했다. 실무를 담당한 손 조직부장은 노조 측 요구안의 최소치가 받아들여졌다고 했다.

 

▶▶우리대학교 백양로. 청소노동자들이 투쟁한 공간이지만, 더없이 평화롭다.
▶▶우리대학교 백양로. 청소노동자들이 투쟁한 공간이지만, 더없이 평화롭다.

 

변하지 않는 구조, 반복되는 갈등

 

학교와 노조의 갈등은 갈무리되지 않았다.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구조 탓이다. 서 팀장과 손 조직부장 모두 합법적인 하청구조가 존재하는 한 매년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합법적인하청구조를 만드는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파견법) 6조의2에서는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고용 의무를 명시한다. 하지만 우리대학교 필수노동자의 미화·경비 업무의 경우 간접고용이 가능하다. 파견법에서 미화·경비 업무 포함 32가지 업무를 직접고용 의무의 예외로 두기 때문이다. 직장갑질 119 박점규 운영위원은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학교는 하청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고용한다. 입찰방식으로 가장 낮은 용역비를 제시한 업체를 선정하는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용역비를 절감한다. 그런데 이 입찰방식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처우가 악화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 운영위원은 용역업체가 경쟁적으로 낮은 임금을 제시할수록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렇게 줄어든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한다. <관련기사 189512필수노동자 시위가 대학사회에 남긴 것’>에서는 하청구조로 인해 청소노동자의 생계가 어려워짐에 주목했다. 학내 다른 노동자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우리대학교 운수노동자가 소속된 날개협동조합 안상범 이사장은 현재 시급이 1만 원을 조금 웃돈다청소·경비 노동자에 비해서는 상황이 낫지만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도 우리대학교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계속해서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하청구조가 임금만 삭감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언제까지 학교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날개협동조합 박병구 전임이사장은 계약이 연장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했다. 운수노동자는 본래 학교와 수의계약*을 맺으며 장기간 근무해왔다. 박 전임이사장은 학교가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받았다고 지난 2021년 갑자기 계약방식을 경쟁입찰의 형태로 바꿨다이로 인해 임금이 많이 깎인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계약은 오는 2023년에 종료된다.

 

대학, 모두의 터전이 되기 위해

 

원청인 학교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결국 인건비의 크기를 결정하는 건 학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교가 이들을 직접 고용할 수는 없을까. 실제로 동국대는 지난 2018년 학내 청소노동자를 직고용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최성수 교수(사회과학대학·사회학과)모든 학내 노동자를 우리대학교의 정규직 교직원으로 전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우리대학교는 이를 추진할 재정적, 윤리적 역량이 모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접고용 구조가 불가피하다면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보장할 방법은 없을까. 박 운영위원은 해결 방안으로 공동 사용자 책임 제도를 제시했다. 원청인 대학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도 노동자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원청이 나서야 한다는 원하청 상생 연대제도를 제시했다. 학교와의 간담회에 참여한 안 의원 역시 원청인 대학 당국이 이 문제를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문제가 더 꼬일 수밖에 없다대학이 교섭 상대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으며,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고용승계 의무화와 대학 비정규직에 대한 실태조사 및 정보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운영위원은 노동은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가 아니라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내 노동자들을 필수노동자로 인식하는 시선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 당장 직접 고용체제로의 전환은 어렵더라도 청소노동자 역시 우리대학교 구성원의 일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처우, 현장의 문제에 불만을 수렴할 수 있는 소통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숙련 노동 자체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최 교수는 필수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비숙련 직군이라는 이유로 열악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안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여실히 드러났다필수 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함께 이들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포용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필수노동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노동은 결국 생존의 문제다. 최 교수는 필수노동은 취약계층에게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생계 자원이다라며 “2020년대 현재, 기술적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직종이다고 말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들의 일자리가 가장 먼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불안한 필수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담보하기 위해 필수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우리대학교가 논의를 이끄는 등 공동체의 변화를 주도할 때, 비로소 대학의 브랜드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생존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백양로로 나섰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소음으로 여겨졌다. 박 운영위원은 노동에 경중은 없다고 말했다. 교수의 강의처럼, 학생의 학습처럼, 그들의 노동도 대학 사회에 필수적이다. 올해는 구두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내년에도 그들은 백양로로 나서게 될 것인가. <다음 편에 계속>

 

 

사회부 기획취재팀
chunchusocio@naver.com
글 김병훈 기자
kk2im@yonsei.ac.kr
김혜진 기자
hjkim01091@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 수의계약: 경쟁계약에 반대되는 개념. 입찰 등의 방식을 거치지 않고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정하는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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