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사랑하는 잘못된 방식

 ‘영원한 오빠’ 조용필의 등장 이래로, ‘팬’이라는 집단과 스타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우상화된 존재인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팬의 행보는 아이돌의 음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오늘날 좀 잘 나간다는 아이돌의 팬카페 가입자 수는 십만 명을 훌쩍 넘긴다. 이쯤 되면, 웬만한 국가의 군대에 필적하는 규모다. 거대한 집단으로부터 열광적인 애정을 받는다는 것은 스타로서 분명 기쁜 일이겠으나, 맹목적인 감정은 엇나가기도 쉬운 법이다. 팬들은 때로 지나친 집착으로 스타에게 피해를 주고 물의를 일으키는 등 미성숙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팬들의 바람직한 모습과 잘못된 모습을 아이돌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자.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팬들, 이제 그만해 줘!

흔히 ‘사생팬’이라 불리는 추종자들은 미성숙한 팬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대형 기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의 사옥 앞은 여성 팬들로 바글바글하다. 오후가 되면 기획사 건물이 내다보이는 카페의 테라스 자리는 아이돌 팬들로 꽉 찬다. 기획사 건물 앞에서 만난 유학생 리요요(Li Hoi Yiu, 21)씨는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남성 아이돌 그룹 GOT7의 팬이다. 이씨는 “매일 수업이 끝나면 기획사 앞에 와서 스타들을 기다린다”며 “볼 수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지만 어쨌든 매일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 JYP 엔터테인먼트 사옥 벽에 극성 팬들이 찾아와 쓴 낙서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처럼 회사나 숙소 밖에서 밤새 스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생팬들은 귀여운 지경이 돼버린 지 오래다. 계속 문제가 되던 전화번호 유포 등을 넘어서 이제는 SNS나 카카오톡 상에서의 피해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남성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는 최근 한 외국 팬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단체 채팅방에 초대 당하는 일을 겪어 인스타그램에 ‘최근 미친 듯이 메신저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번 일은 정말 모욕적이고 참을 수가 없다’며 심정을 토로했다. 또한, 여성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의 멤버 소희와 남성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멤버 이기광을 비롯한 여러 스타들도 트위터 계정 해킹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샤이니의 팬인 이화여대 황유정(의류·15)씨는 “아끼는 가수가 힘들어하는 것을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사생팬들은 진정한 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밝혔다.
팬들로 인한 스타들의 사생활 피해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생팬들은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스타들을 포착하기 위해 지능적인 수단까지 동원한다. ‘홈마’라 불리는 ‘홈페이지 마스터’들은 스타들의 사진을 찍어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이때 이들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아이돌이 무심코 노출한 여권을 찍어 정보를 파악해 그들의 항공권을 조회하고, 심지어는 투숙하는 호텔까지 예측해 같은 숙소를 잡기도 한다. 이렇듯 정보력 싸움까지 벌여 가며 홈마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홈마인 ㄱ씨는 “처음에는 스타에 대한 애정으로 홈마를 시작하지만, 홈페이지의 방문자가 많아질수록 금전적인 명목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홈페이지 게시물 방문자가 몇 만 단위다 보니 정기적으로 포토북을 발행하면 500만 원 이상의 수익이 남는다는 것이다. ㄱ씨는 “스타들은 물론 이를 싫어하지만, 팬들의 시선은 여타 사생팬에 대한 시선처럼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홈마 ㄴ씨는 “직장이 있기 때문에 홈마를 업으로 삼지는 않고 아이돌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생팬과 홈마의 활동은 아이돌의 자유로운 생활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지난 2015년 아카라카의 VIP석은 초대가수인 엑소의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온 팬들로 혼란스러웠다. 초대가수 공개가 당일 오후에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소식을 들은 팬들이 표를 구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팬들 사이의 암시장에서 아카라카 표의 거래 가격은 25만 원까지 뛰었다. 우리대학교 재학생 변모씨는 “뒤늦게 들어온 엑소 팬들이 사진을 찍겠다고 무작정 앞으로 밀고 나갔으며, 심지어는 의자에 올라서서 시야를 가리고 자리까지 빼앗았다”며 “아카라카에서 당한 피해 때문에 엑소 팬들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졌다”고 밝혔다. 이처럼 사생팬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일반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며, 이는 해당 가수 팬클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이처럼 사생팬들의 엇나간 관심은 사실상 팬의 행동이라고 보기 힘든 지경이다. 이들의 행동은 스타에게 고통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 그들에 대한 호감마저도 반감시키고 있다.

엇나가는 조공 문화, 그러나 나눌수록 커지는 마음

팬과 아이돌의 관계에서 사생팬 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조공’ 문화다. 팬은 아이돌의 생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선물과 도시락 등을 준비해 ‘바친다’. 그 품목은 의류부터 수천만 원 대의 명품시계, 외제차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런 고가의 선물을 조공하는 팬들이 대부분 경제력이 없는 10대, 20대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조공 문화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심지어 선물 금액이나 품목으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한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은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모아놓은 돈에 과외비를 보태 TV를 선물하고 인증샷을 올리겠다’며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또한,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의 팬 이모씨는 경쟁하는 팬 카페에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공’을 위한 사채를 쓰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는 스타가 아예 팬들에게 요구사항이 적힌 리스트를 전달하는 등, ‘조공’은 팬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고 스타들이 미리 선물을 사양하겠다고 일축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팬들 사이에서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남성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태양은 “이미 가진 것이 많기에 더 필요한 곳에 (선물이) 쓰였으면 좋겠다”며 마음만 받겠다는 뜻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엑소의 멤버 레이 또한 지난 2015년 생일, “팬들의 선물을 일절 받지 않겠다”며 “선물보다는 선행을 통해 기념해 달라”고 소속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점점 단순한 스타 개인에 대한 조공보다는 사회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고가의 선물로 마음을 표현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많은 팬들은 스타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고자 한다. 한 유명 아이돌의 홈페이지 관계자는 “스타 개인의 바람이 있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유명인으로 지내온 가수에게 명품 등을 선물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며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한 기부로 팬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기부활동의 동기를 밝혔다.
실제로 블로그 ‘승리 생일 콩 저금통’에서는 빅뱅의 멤버 승리의 생일마다 팬들이 해피빈* 콩을 모아 기부활동을 벌인다. 블로그 관리자는 “즐거움을 준 스타에게 보답하는 기분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며 “좋은 일에 동참해서 보람을 느낄 때마다 스타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콘서트나 공연에서 쌀을 화환으로 사용한 뒤 저소득층 아동과 독거노인 등 사회에 기부하는 ‘나눔쌀화환’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엑소의 멤버 백현의 중국 팬들은 백현의 생일을 기념해 1230kg 어치의 쌀화환을 기부한 바 있다. 이러한 나눔쌀화환 문화는 1세대 아이돌 시기에는 없던 것이었다. 좋아하는 스타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팬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기부 문화의 확산은 분명 반길 만한 일이다.
이처럼 팬들의 기부 문화가 대중화된 덕분에 팬클럽 참여를 전제한 사회적 활동들도 생겨났다. 사회적 기업인 ‘트리플래닛’에서는 팬클럽이 모금하면 각 자치구와 협력해 스타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해주는 ‘스타숲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숲은 서울 시내에만 82곳이다.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신화숲’은 이렇게 조성된 숲 중 하나다. 트리플래닛 관계자는 “스타숲은 일회성 선물로 끝날게 아니라 계속해서 가꿔 나가야 한다”며 “조성된 후에도 스타와 팬들이 지속적으로 찾아가 숲을 가꾸며 소중한 추억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외의 많은 팬이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팬들이 스타를 좋아하는 마음을 잘못 표현할 경우 이는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팬이 스타를 응원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스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은 늘 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스타들도 사랑받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거대한 팬덤이 그들에게 떠안고 가야 할 ‘짐’이 아닌 든든한 ‘내 편’이 돼줄 수 있을 것이다.

*해피빈 : 네이버에서 만든 기부 포탈로, 이를 통해 1개에 100원의 화폐가치를가지는 콩을 여러 곳에 기부할 수 있다.

글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사진 한동연 기자
hhan5813@yonsei.ac.kr
그림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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