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양각색 아이돌 팬을 만나다!

 당신에게 ‘아이돌’은 어떤 존재인가. TV를 틀면 질리도록 나오는 존재? 인기 있는 신인 걸그룹의 멤버를 구분 못 하는 순간 늙었음을 알 수 있는 나이의 척도? 가히 ‘아이돌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깊이 뿌리내린 아이돌은 이제는 더는 신선한 문화가 아니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들의 팬 역시 마찬가지. 아이돌 팬,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허무하고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들은 저마다의 신념을 지니고 누구보다 진지하고 소중한 사랑을 하고 있다. 비록 ‘덕질’이라는 단어로 격하됐지만, 이들의 러브스토리에 한 번쯤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유형도 각양각색, 여섯 명의 아이돌 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학생 되면 탈덕 한다고? 아니, 덕질의 규모가 점점 커질 뿐!

만두사랑(22, 아래 만두) - 아이돌 팬 3년 차, 지난해 엑소의 시우민에 반해 현재는 엑소에 깊게 빠져있다.

▲ 인기 최정상 아이돌 엑소.

 Q. 아이돌에 최고로 투자한 금액과 시간은 각각 얼마였나?
만두 : 가장 많이 투자한 금액은 콘서트다. 이틀에 20만 원가량을 썼다. 가장 오래 투자한 시간은 지난 2월 MBC 『아이돌스타 육상 씨름 풋살 양궁 선수권대회』에서. 방청 시간과 대기시간을 포함해 약 20시간이다.

Q. 요즘은 ‘굿즈(goods)’가 많이 제작돼서 아이돌 팬들의 지갑을 힘들게 만든다던데.
만두 : 사진집, 수건, 인형 등 그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머 이건 사야 돼!’ 싶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굿즈. 그만큼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일일이 세보지 않았으나 백여 개 정도 있는 것 같다.

Q. 아이돌을 주로 모니터로 소비하는 ‘안방수니’와 직접 아이돌을 찾아가 만나는 ‘공방수니’ 둘 다 경험했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무엇인가?
만두 : 안방수니는 오빠들을 모니터로 보기 때문에 몸은 편하지만 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 슬프다. 반면 공방수니는 고단하지만, 오빠들 얼굴을 보는 순간 피로가 마법처럼 싹 풀린다!

Q. 20대가 돼서 아이돌 팬이라고 밝히면 주변 시선이 따갑진 않은가?
만두 : 10대 때는 공부 안 한다고 눈총 받고, 20대 때는 스무 살 넘어서 무슨 덕질이냐고 하면 대체 덕질은 언제 하라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아이돌 팬임을 굳이 숨기지 않고 내 본분인 학업도 놓지 않아서 학점도 올랐다.

 

군인에게 아이돌이란?

박근환(23, 아래 근환) - 가볍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어느덧 6년 차 아이유 팬. 지난 4월 말 전역했다.

▲ kbs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군인들이 걸그룹 위문공연에 환호하는 모습.

 Q. 아이돌을 소비하는 데 있어 군인과 일반 아이돌 팬의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근환 : 일반적인 팬과 달리 군인 팬은 대부분 ‘관심’만으로 소비를 한다. 위문공연에 오는 비인기 아이돌을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상당한 인지도를 끌어낸다는 점 등에서, 깊이 있는 ‘덕심’까지는 아니더라도 60만 장병의 ‘팬심’은 무시할 수 없다.

Q. 군인의 일과에서 아이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근환 : 하루 중 저녁 6시부터 8시 30분까지 군인에게 허락된 자유 시간 동안 TV를 시청하거나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웹서핑을 하며 덕질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요즘 군 막사 내 TV에서는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무제한으로 틀 수 있었다.

Q. 군인에게 아이돌이란?
근환 : k2 소총. 군대에서는 훈련소 시절부터 자신의 총기가 제2의 ‘여자친구’라고 가르친다. 그 정도로 소중하고 필수적이다. 다들 관물대에 기본 한 장씩은 아이돌 사진이고 심지어 달력조차 아예 아이돌 사진 달력을 팔더라. 진짜 k2 소총은 총기함이 아니라 각자의 관물대에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걸크러쉬라고 아시는지?

김예린(26, 아래 예린) - 지오디를 시작으로 많은 아이돌 덕질을 거쳤으나, 현재는 걸그룹 마마무에 정착해 페이스북 팬 페이지도 운영 중이다.

▲ 떠오르는 '걸크러쉬' 아이돌 마마무.

Q. 여자 아이돌이 남자 아이돌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린 : 여자 아이돌들은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다이어트는 또 어떻게 하는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것이 요즘 소위 말하는 ‘걸크러쉬’라고 생각한다.

Q. ‘걸크러쉬’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예린 : 여자도 반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자에게 ‘걸크러쉬’를 당한다고 말하지만, 동경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 걸크러쉬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제가 그 남팬입니다!

김재명(17, 아래 재명)- 3개월 차 마마무 팬, 예린과 함께 페이스북 팬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극(22) - 이제는 아이유가 삶의 일부가 돼버린 8년 차 팬

▲ '국민 여동생' 아이유.

 Q. 여자 아이돌의 팬이라고 밝히면 주변 반응이 어떤가?
재명 : 확실히 ‘팬’이라고 하면 의아하게 보는 사람이 많더라. 그래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니 그다지 신경 쓰진 않는다.
극 : 나는 주변에서 별 신경을 쓰지 않더라.

Q. ‘남팬’은 흔히 ‘삼촌 팬’ 이라고 일반화당하거나, 여성 팬덤에 비해 팬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재명 : 공개적인 활동은 적을지 모르나, 팬심 만큼은 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극 : 여성 팬덤에 비하면 물론 ‘화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남팬은 강한 결속력과 뒷심을 보여주는 편이다.

Q. ‘남팬’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재명 : 남성 팬도 똑같은 팬심을 가지고 있는 팬이다. 이상한 생각, 행동을 하는 남팬은 거의 없으니 오해 말길 바란다.
극 :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좋아해 보지 않은 사람들인가?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흑심을 품고 좋아한다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덕질은 때론 창작욕을 고취하지

외쳐! 갓이니(20, 아래 외갓) - 6년 차 샤이니 팬. 팬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른다. 전부 샤이니에 영감을 받아서.

▲ 독특한 스타일로 '영감'을 주는 아이돌 샤이니.

Q. 언제 가장 창작욕이 드는가?
외갓 : 그때그때 다르다. 뜬금없이 소재나 장면이 떠오를 때도 있고, 아이돌 사진이나 영상, 가사에서 대사나 장면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때로는 감이 온다. ‘아, 이건 그려야해!’ 혹은 ‘아, 이 곡은 커버해야만해!’ 하는.

Q. 2차 창작 중에서도 팬픽(fan fiction)은 방송계에서 ‘동성애 코드’로 패러디가 많이 됐다. 그러나 성 소수자를 연애 판타지 요소로 삼아도 되는가 하는 논란이나, 사실과 달리 동성애자로 묘사된 실존인물의 명예훼손 여지도 있어 ‘음지문화’라고 불린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갓 : 나는 2차 창작과 평소 덕질을 구분해놓고 하는 편이다. 2차는 2차일 뿐, 내 망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팬들이 스스로 음지라 칭하며 숨기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팬픽을 볼 때 실제 아이돌과 동일시한다기보다는 소설 속 별개의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편이다.

Q. 그렇다고 모든 2차 창작이 동성애 코드를 가진 것은 아니다. 요즘은 어떤 2차 창작물이 대세인가?
외갓 : 확실히 전보다 ‘동성애 코드 없는’ 2차 창작물들이 늘어나는 것 같긴 하다. 아트웍(Artwork) 느낌의 팬아트라든지, 팬 제작 인형이라든지. 그리고 요즘은 소설 형식의 글뿐 아니라 ‘썰 북’이라고 일명 ‘썰’ 형식의 글도 책으로 나오는 추세다.

Q. 사람들이 2차 창작을 하고, 그를 소비하는 것은 단순히 아이돌의 음악을 듣고 방송이나 콘서트를 보는 것과 다른 매력이 있어서인 것 같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그 매력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외갓 : 내가 생각하는 팬픽의 최대 장점은 팬픽 속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실존하는 인물이고,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아는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 굉장히 근접하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가령 주인공의 아파트 비밀번호 혹은 동호수가 멤버의 생일이거나 팀의 데뷔 일 같은 기념일 날짜에서 따온 경우가 있다. 글 속에서는 아무 설명 없어도 그를 읽는 독자들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 당신은 '덕질'을 어느정도 해봤나 체크 해보자!

저마다 아이돌에 빠져있던 시간도, 사랑을 표현하는 형태도 다르지만 이들에게 아이돌은 일상을 파고들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됐다. 극 씨는 “공부하다 지쳤을 때도, 놀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도, 학창시절 모든 기억 속에는 아이유가 있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쏟아 부은 애정에 비해 허무할 때가 오지는 않을까. 외갓 씨는 아이돌로부터 팬으로서 사랑받는 순간을 느낄 때 그 순간을 극복한다고 한다. 샤이니의 데뷔 7주년 행사 때 ‘우리끼리의, 우리들이 쓰는 산소가 생겼어’라는 한 멤버의 말에 감동을 느꼈다고. 예린 씨는 “아이돌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며 “그게 내 인생의 낙”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덕질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부탁하자, 이들 모두 입을 모아 ‘취향 존중’을 외쳤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선이 아니라면 손가락질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무차별한 오해와 편견 속에 덕후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사회가 돼버리진 않았는지. 이제는 색안경을 벗어보자.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애정을 쏟는 이들만큼 ‘순정’도 없으리라.

 

글·그림 이주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자료사진 SM 엔터테인먼트, kbs드라마『태양의 후예』, RBW, 로엔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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