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에 쏠리는 청년 구직자

아침 7시, 나는 노량진 역전에서 파는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맞이한다. 수업은 9시이지만 이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파는 학원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다. 늦은 나이에 다시 맞이하게 된 수험생활. 식사 시간에도 정리 노트를 손에 쥐고 밥을 먹는 모습은 여느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 책임감이 얹어진 그 정리 노트가 매우 무겁지만, 그 누구에게도 응석 부릴 곳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고독하게 만든다. 

- 공무원 준비생 A씨의 일과 인터뷰 中


공무원 공개경쟁 채용시험은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경쟁시험을 실시해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제도이다. 이는 균등한 기회보장과 우수한 인력을 위해 시행되는 제도로써 크게 5급, 7급, 9급 공채가 있다. 하지만 5급과 7급 공채 공무원의 경우 뽑는 인원이 9급 공무원에 비하면 훨씬 적다. 지난 2015년에는 5급 공채 288명 선발에 1천877명이, 7급의 경우 730명 선발에 5만 9천779명이 응시했다. 같은 해 9급 공채의 경우 3천700명 선발에 19만 987명 응시해 5급, 7급 공채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시험과목 자체도 9급 공채공무원의 경우 필수로 국어, 영어, 한국사와 선택과목으로는 세법개론, 회계학, 사회, 과학, 수학, 행정학개론 중 두 과목만 추가로 선택하면 돼 시험 준비 자체도 수월하기에 수험생이 몰리고 있다.

실제로 오는 4월 9일 실시되는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는 22만 명이 몰렸고, 일반 행정직의 경우 89명 모집에 3만 6천186명이 몰려 406.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일컫는 ‘공시족’, 수능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지칭하는 ‘공딩’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많은 취업준비생이 공무원이라는 길을 택하고 있다.


늘어난 선발 인원, 다양한 응시자들

인사혁신처가 밝힌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국가 9급 공채 선발예정인원은 지난 2015년 3천700명에서 2016년 4천120명으로 11.4% 증가하였다. 또 행정자치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지방공무원의 수는 지난 2011년 7천748명에서 2016년 2만 186명까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공무원 선발 인원이 크게 늘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행정자치부 김성렬 차관은 보도 자료를 통해 ‘지방공무원 채용정책을 총괄하는 행정자치부는 대 주민서비스 향상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역대 최고 규모인 2만 명대 채용을 결정하였다’고 전했다. 즉,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선발 인원을 크게 늘린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선발 인원에도 경쟁률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공무원 9급 일반행정 공무원의 경우 2012년도에는 26명 모집에 2만 8천569명이 지원한 반면 2015년도의 경우 140명 모집에 3만 6천169명이 지원했다. 기존 인원의 5배나 선발 인원을 늘렸음에도 1만 명 이상 늘어난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한편 선발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지원자의 스펙트럼 역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치는 사람,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시험에 도전하는 수험생, 심지어 4~50대 중장년층까지 공무원 시험 준비는 더 이상 20대 구직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무원이 됐다는 정윤찬(20)씨는 “스무 살에 취업해서 친구들처럼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더 컸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며 20살에 공무원이 된 이유에 대해 말했다.


공무원 쏠림현상, 전문가의 시선


공무원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우리대학교 양재진 교수(사과대‧복지국가이론)는 “공무원은 하는 일에 비해 고임금을 받고 고도의 직업 안정성을 갖기 때문에 선발 인원을 늘린다고 해도 계속해서 지원자가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의 1인당 GDP 대비 공무원의 임금비율은 호봉이 올라갈수록 OECD 평균치에 비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의 정규직들은 대부분 연공급체계*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데 공직은 가장 대표적인 연공급체계”라고 전했다. 즉 사람들은 안정성과 일의 강도에 비해 높은 임금 때문에 공무원시험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양 교수는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청년들의 현실에 대해 “공무원 시험에 청년들이 몰린다면 결국 필요 이상의 세금이 계속 투여되는 결과를 낳고 사회 전체의 자원배분에도 비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우리대학교 조윤직 교수(사과대‧공공관리)는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은 편이기 때문에 인력충원이 필요할 수 있다”며 “국민이 느끼는 행정 효율성의 체감도는 국가 9급 공무원이나 지방공무원들의 행정서비스에 의해 이루어진다”며 공무원 선발 인원증가에 대한 필요성을 전했다. 덧붙여 “이러한 측면에서 일선관료인 9급 공무원과 지방공무원 확충은 중간관리자 위주의 조직구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고용불안에 안정 찾는 청년들 


인사혁신처에서 2016년에 발표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내 고장 우수인재의 공직 등용문으로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선발시험」, 특성화, 마이스터고 등 우수 인재 등용문으로 「국가직 지역인재 9급 공무원 선발」, 경력단절여성의 고용 활성화를 위한 「시간 선택제 국가공무원」 등 새로운 공무원 충원 제도가 추가됐다. 하지만 이는 고용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며 청년들은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 때문에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이들이 마주해야 하는 시험은 단순히 특정 과목의 공부만을 요구하고 있어 청년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인재 상과 멀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두산 인프라코어에서 일었던 ‘신입사원 희망퇴직’ 논란은 희망퇴직을 철회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지만 우리나라의 어려운 취업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던 사건이었다. 사기업에 들어갈 경우 강도 높은 업무, 지속적인 자기계발과 경쟁에 대한 압박, 퇴직에 대한 불안감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사람들은 애초에 안정적인 직장을 택하는 쪽을 선호하고 있다. 1년가량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공무원이 된 청년 B씨는 “대기업의 경우 업무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원하는 만큼의 금전적인 보상을 받거나 성장을 느끼지 못했다”며 “하지만 공무원의 경우 사기업보다는 적은 돈을 받지만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1년차 공무원 준비생인 C씨(28)는 “공대생이라 처음엔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준비를 했었지만 스펙을 쌓는 일에 염증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주위 동기 중에서도 대기업에 입사하여도 1년도 안 돼서 퇴사하거나 이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차라리 처음부터 미래가 보장되는 길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에 청년들은 안정된 직장을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공직에 있는 공무원들은 국민에 대한 봉사와 헌신을 갖고 임해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단순히 안정적인 삶만을 위해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국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저하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공직의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무원의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연공급체계 : 종업원의 근속연수·학력·연령 등의 기준으로 임금을 차별하는 제도.

함예솔 기자
yesol5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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