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재 대학생들, ‘스펙 쌓기’ 불리해


‘스펙 5종 세트’부터 ‘스펙 9종 세트’까지 취업을 위한 조건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많은 학생들은 각종 공모전, 서포터즈, 기자단, 홍보대사 등의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취업을 위한 초석, ‘스펙’을 쌓고자 한다. 그러나 취업 준비의 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대외활동마저 서울 및 수도권에 활동이 편중돼 많은 지방대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청년 취업 잔혹사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너무나 식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는 젊은 세대 눈앞에 닥친 가장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15~29세 청년 실업자 수는 56만 명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1천만 원을 웃도는 비싼 등록금을 납부하고 대학 문을 나서면 ‘인구론(인문계의 90%는 논다)’, ‘이태백(20대의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에 많은 학생들이 취업에 있어 조금이라도 높은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각종 대외활동에 뛰어들게 된다. 대학생들이 가장 신뢰하는 취업커뮤니티로 꼽히는 네이버 카페 ‘스펙업(SPEC UP)’의 회원 수는 지난 17일 기준 153만 1천948명이다. 해당 카페에서 올린 2016년 주간 대외활동 리스트의 평균 조회 수는 약 2만 3천 회에 달한다. 그중에 기업체에서 하는 대외활동의 경우는 기업 채용에 가산점을 부과하거나 서류 전형을 면제해주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대외활동 경쟁률이 기업 공채 경쟁률과 맞먹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수도권 대학생만 받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외활동 지원율은 언제나 고공행진이다. 많은 학생들이 대외활동의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원조차 해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모집요강에 명시된 ‘지원요건’ 때문이다.

지난 2015년 12월 동원그룹은 ‘동원 The Well 홍보대사’ 모집공고를 페이스북에 게재했다가 사람들의 뭇매를 맞았다. 지원요건을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블로그, 카페, SNS 등 온라인 활동에 적극적인 20~50대 블로거’로 제한한 탓이다. 해당 글의 댓글에는 ‘지방사람 무시하는 거냐’, ‘지방 차별하는 동원 불매운동 할 것이다’ 등의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이에 동원그룹은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및 수도권 거주자로 언급한 부분은 서울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사(발대식, 해단식, 그 외 쿠킹클래스 등)에 참여해야 하기에 언급한 부분일 뿐’ 이라며 ‘하지만 모두 참석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대외활동에서 지방대 학생이 배제되는 것은 비단 위 사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양하고 알찬 활동을 통해 지난 2014년에 한국PR대상 마케팅PR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15년 역시 대한민국SNS대상 IT/서비스부문 대상을 수상한 ‘SK플래닛 대학생 서포터즈 플리터’ 역시 모집대상을 수도권 4년제 대학생으로 한정 짓고 있다. 뿐만 아니라, KB희망멘토, MG새마을금고 블로그 기자단 등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기업에서 선발하는 유수의 대외활동들 대부분이 지원요건을 수도권소재 대학생 혹은 수도권 거주자로 제한해 지방대 학생들은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부산소재의 대학에 재학 중인 ㅅ씨는 “지방에서 할 수 있는 대외활동이 잘 없어 서울에서라도 활동하려 해도 지원요건 때문에 지원서조차 낼 수 없다는 게 아쉽다”며 “결국은 지방대 학생과 수도권소재 대학생의 차이가 계속해서 벌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수도권으로 지원요건을 한정 짓는 데는 기업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오프라인 활동이 많은 경우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할 때가 많고, 이는 결국 대외활동을 운영하는 측에서는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D그룹 대외활동 담당자 ㅂ씨는 “지원요건에 수도권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실제 활동 가능성을 고려하면 수도권 학생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대외활동


수도권이라는 지원요건에 이미 한 번 절망했던 지방대 학생들이 어렵사리 대외활동을 찾아 합격하게 되더라도 어려움은 여전하다. 지방이라는 지리적 요건상 대부분의 활동이 수도권에 편중된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많은 무리가 따른다. 지방대 학생들은 대외활동 참여 시 ▲왕복 교통비 ▲숙박 ▲수업 시간표 조정 등의 문제를 겪게 된다. 대구에 위치한 영남대 예소라(분자생명·13)씨는 “한 달에 한 번이나 일주일에 한 번 활동을 하는 데 매번 서울로 올라가야 해 교통비와 시간문제에 있어서 무척 부담이 됐다”며 “매번 서울을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라 수료 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포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서울 내의 대외활동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동대구터미널에서 서울 고속터미널까지 왕복 7시간이 소요되고 3만 4천 원(일반 편도 1만 7천 원/우등 편도 2만 5천200원)의 비용이 든다. 대외활동에서 많게는 일주일에 1번, 적게는 한 달에 1번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지역별로 배려를 해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활동인원 자체가 적은 지방에서는 같은 지방끼리 묶이더라도 거리상 상당히 멀기 때문이다. 우리대학교 김덕희(정경경영·13)씨는 “학기 중에 진행된 지역별 활동에서 강원도 지역은 서로 거리가 멀어 제대로 된 만남은커녕 얼굴 한 번 본 게 다였다”며 “뿐만 아니라 강의나 단체 행사도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많아 도중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대외활동 담당자는 “활동에 있어서 지역적 한계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실력’과 ‘아이디어’로 당락이 결정되는 공모전과 예체능 계열에서도 지방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강릉원주대 최예나(패션디자인·13)씨는 “공모전에 나갔을 때 작품 수령이 서울 소재 학교라 힘들게 들고 갔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씨는 “현장실습업체는 서울에 제일 많은데, 서울에서 한 달 동안 숙식하는 비용이 현장실습으로 받는 돈보다 더 비싸다”고 말했다.


결국 모든 경험을 쌓기 위한 일들이 지방대 학생들에게는 고난의 연속이다. 지방대 학생이라 지원하지 못하는 대외활동이 수두룩하고, 그 높은 장벽을 뚫고 대외활동에 합격하더라도 그 이후의 활동은 시간과 돈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대외활동 경쟁에서 언제까지 지방대 학생들은 고배를 마셔야 하는지,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설계된 이 지형에서 모두가 똑같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우리 모두 지역을 가리지 않는 기회의 평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글 박은미 기자
eunmiya@yonsei.ac.kr
그림 안제성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