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거리로 내몰린 애니메이션,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다

 

 

혹자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애국가와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시청자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약 10년 전만해도 국산 애니메이션 『머털도사』의 시청률이 50%를 넘는 등 국산 애니메이션이 해외 애니메이션에 뒤지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간 국내 애니메이션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내 애니메이션, 아무도 모른다

공영방송의 경우, 5~6년 전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낮 5시에서 저녁 6시대에 편성됐다. 주 시청 층인 어린이들이 방과 후 방송을 볼 수 있는 시간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보통 저녁 6시 이후 귀가하는데다 편성시간대까지 앞당겨져 애니메이션은 있는데 볼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예술인협회 민경조 이사는 “방송사 측에서는 시청률 안 나오는데 좋은 시간대에 갈 수 없다고 하고, 애니메이션 측은 볼 사람이 있어야 시청률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식의 논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케이블과 위성방송에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이 등장한 후, 공영방송이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민 이사는 “공영방송에서는 케이블과 차별화된, 아이들의 마음에 우리 문화를 심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등 궁색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시청자는 ‘유아’ 뿐?

물론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둔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도 있다. 유아를 위한 교육 콘텐츠는 거의 국내 자체제작 프로그램들로만 구성되고 있는데, 문제는 유아용 프로그램 시장이 과열돼 국내 애니메이션이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민 이사는 “『뽀롱뽀롱 뽀로로』의 성공사례를 보고 너도 나도 유아물을 제작하려고 한다”며 “시류에 편승하기 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신선해 보일 색다른 콘텐츠를 내놓아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아용을 제외한 타 장르, 즉 극장용 장편물, 청소년물, OVA(Original Video Animation)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유아용을 제외한 국내 애니메이션의 경우 수익에 대한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투자자를 구하기 어렵다. 극장판은 특히 작품을 만든다 해도 배급사를 구하기 어려워 개봉하는 데에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민 이사의 한일 합작 극장용 애니메이션 『오디션』의 경우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개봉예정이었으나 투자자가 없어 2010년까지 시간을 끌었다. 잃어버린 10년간,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더 이상 ‘회생 불가능’이라는 낙인을 얻은 것이다.

쫓는 중국, 뒤처지는 국내 애니메이션 

그 불황을 틈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또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낮 5시부터 밤 9시, 즉 황금 시간대에 중국산 애니메이션만을 틀도록 돼있다. 또 애니메이션의 보급이 지역단위로 이뤄져 내수시장이 크다는 것도 이점이다. 결국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의 애니메이션은 국내보다 쉽게 투자자와 시청자층을 유치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곧 애니메이션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

이처럼 해외 시장과 비교했을 때 국내의 현실은 ‘열악하다’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을 개봉 예정 중에 있는 ‘연필로 명상하기’의 안재훈 감독은 “가장 두려운 건 내 작품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특히 장편 애니메이션은 투자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극장에서 개봉하기가 쉽지 않아, 『소중한 날의 꿈』도 현재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국내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아직 밝다고 생각해 하루에 20통씩 지인들에게 엽서를 쓴다. 지인들에게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 봐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쓰는 것이다. 안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은 업계에서 국내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지만 이것도 관객이 작품을 봐줬을 때의 이야기다. 예술가로서의 품위를 지키려 마냥 뒷짐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 안 감독의 생각이다.
“개봉날짜가 정해지면 낮에는 거리에 나가서 애니메이션을 봐달라고 부탁을 드릴 예정이다”고 말하는 안 감독의 행동은 어찌 보면 안타까운 국내 애니메이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이 직접 홍보를 해야 할 만큼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어렵고, 위험부담이 큰 투자 사업이라고 해서 그 예술적 가치까지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 이번 여름, 국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한 예술가의 ‘소중한 날의 꿈’을 보기위해 극장으로 가 보는 건 어떨까.

 

 


남혜윤 기자 elly@yonsei.ac.kr
일러스트레이션 박수연
사진 이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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