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훈 동문 인터뷰

 

 

“그냥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국내 애니메이션에 대해 묻자 거두절미하고 우리대학교 조경훈 동문(경영·94)은 이렇게 대답했다. 조 동문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 OVA시장에서 『고스트 메신저』를 8천장 이상 판매하며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구세주’라 불리고 있는 (주)스튜디오 애니멀의 대표다. 국내 시장에서 나름의 성과를 얻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꿈이 있고, 팬이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그에게 결코 열악하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회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
고등학교 때 월트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미쳐버렸’어요.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우리대학교 동아리 ‘만화사랑’에 들어가게 됐죠. 비록 ‘발로 그린’ 그림이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에 강한 자극을 받았어요. 
그 이후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국산 애니메이션 한편을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봤는데 욕이 나오더라구요. 그 정도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엉망이었던 거죠. 그 후 과연 내가 존경할만한 작품을 만든 회사가 있는지 직접 찾아봤어요. ‘아, 이건 답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때 ‘내가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직접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애니메이션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태인데, 힘들 때는 없었는지.
저는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혼자서 만들었어요. 그림 하나 제대로 못 그렸지만  만들고 싶다는 의지는 있었어요. 첫 작품 『변비』를 만들 때, 혼자서 몇 천 장 그렸죠. 계속 그리고, 그리고…. 형편없었어요. 그거 만들던 중에 봤던 작품이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이에요. 보고나서 죽고 싶었어요. (실력의 차이가)우주 끝에 있는 거예요. 나는 발끝도 안 되는 존재인거죠.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나이가 많은데도 떨리는 손에 침을 맞아가면서 그림을 그려요. 그처럼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통해 모든 걸 통제해야 해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건데.
그렇게 매 순간 힘들었지만 ‘선택’에 있어서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내가 좋아하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행동을 했고 그 결과들에 대한 피드백을 독자로부터 확실히 받았으니까요. 끝까지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창작물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아야 앞으로의 방향성이 나와요.

-『고스트 메신저』 반응이 좋았는데.
일본처럼 퀄리티와 작품성까지 갖춘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했던 회사들이 처참하게 망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도전했을 때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어요. 만날 투자사, 방송국, 정부기관 다니면서 기획서 산더미만큼 작업해서 갖다줘봤자 너무 어둡고, 폭력적이고, 일본적이고…. ‘우리나라에선 이런 게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맞는 얘기긴 한데,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거든요. 하지만 계속 위에서 미끄러지니까 나중엔 우리가 잘못된 건가?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해야 하나? 그래도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해서 작품을 기획한 거죠.

-『고스트 메신저』 초기 파일럿을 내놓은 후 반응은?
초기 파일럿을 만들고 나서 바이어들은 “또 이런 거 만들었냐, 참 징하다.”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반쯤 포기하고 있던 찰나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어느 날 팬들이 회사에 찾아왔어요. 팬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설정까지도 물어보고, 고민해오는 거예요. ‘만화사랑’할 때 화이트보드에 ‘재밌어요’ 이 한마디 보고도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정작 이 업계에 와서는 그런 걸 못 겪어봤었죠. 그러다가 아주 소소하지만 팬들과 소통을 하고 나니까 다른 게 눈에 안보였어요.
그래서 방송국이나 투자자의 지원 없이 직접 만들어 OVA로 출시하게 된 거에요. 시장에 대한 검증? 사업 분석해보면 당연히 만들어서는 안 되죠. 근데 중요한 건 소수이긴 하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고스트 메신저』가 완결까지 나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팬이 생길 거고, 그 팬은 원래 ‘오타쿠*’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DVD를 처음 사는 사람일거라 생각 했어요. 일반 팬들이 구입한 첫 애니메이션 DVD가 『고스트 메신저』가 되는 날, 우리가 꿈꾸는 최소한의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오타쿠: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남혜윤 기자  elly@yonsei.ac.kr
사진 박동규 기자 ddonggu777@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