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인터뷰3

<Non, Je Ne Regrette Rein(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라비앙 로즈 OST>

『시네마 천국, 어게인』 다시 영화얘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 평론가들은 늘 영화를 볼 때 그저 '보는' 행위에만 그치지 않고 분석을 하고 평을 해요. 늘 영화를 볼 때마다 분석을 하고 핵심을 꿰뚫어 보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고자 노력하는가요.
이건 생각과도 비슷해요. 생각 이라는 게 아, 지금 부터 사색에 젖고 싶다 라고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부터 영화에 대한 분석 시작, 뭐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네티즌들은 가끔씩 즐기면 그만이지 왜 자꾸 의미를 따지려 드느냐라는 말을 하는데, 평론가도 마찬가지에요. 즐기려고 하죠. 다만, 즐기는데 보다 더 잘 즐기기 위해서 때론 분석을 할 뿐이에요.

영화를 볼 때마다 분석해야 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분석, 평가)하는 것을 좋아할 뿐더러 너무나 오랜 세월 그쪽에서 일 해왔기 때문에, 안 그럴려고 해도 그게 이젠 안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치과의사라고 생각해보세요. 데이트 하면 여자 치아 밖에 보이지 않겠어요. 제 친구 중에 치과 의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데이트를 못하겠다는 거 에요. 왜냐면,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치아를 보게 되면 일반적으로 하얀 치아라도 어우 저 치석, 뭐 이런단 말이에요. 치석 보고 키스하고 싶겠어요? 하하.

영화를 보고 나오면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그 영화 어땠어? 그러면 사람들은 둘 중 하나의 대답을 하죠. 좋았어. 나빴어. 또는 재밌어, 재미없어. 이런 대답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일단 영화를 본 후 주변 사람들이 제게 그 영화 어땠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당연히 많아요. 그때 제가, 이 영화는 실존에 대한 고뇌에서 끌어올린 두레박 같은 영화야 뭐 이렇게 말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냥 똑같이 얘기해요. 재미있어. 한번 봐봐.
다만, 물어 본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답해요.
재미라는 것은 아주 복합적인 거에요. 어떤 재미는 훈련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까 오목과 바둑을 생각해 보세요. 처음엔 바둑 재미없죠. 오목은 간단하니까 처음엔 재미있을 거에요. 근데 1년간 계속 둔다고 생각해 보세요. 지겨워서 못 둬요. 바둑은 19곱하기 19만큼의 다양성이 있는 거잖아요. 평생 갖고 갈 취미로 생각할 사람은 바둑이 재밌을 거에요.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일 년에 영화를 명절 때 두 번 보는 사람과 일주일에 두 번 보는 사람이 느끼는 재미는 엄청나게 달라요. 그럴 때 두 번 보는 사람의 재미가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렵죠. 우리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나누는 경계도 굉장히 모호하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조차 재미로 봐요. 거기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는 건 아니에요. 다만 예술영화의 재미라는 건 한 번에 알 수 있는 재미는 아니에요. 고급 와인을 한 번 맛봐서 그 맛의 깊이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조폭코미디 같은 것이 단번에 먹어서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술 영화는 깊은 장맛과도 같은 거죠. 예술영화의 재미를 느끼기 위해선 훈련을 해야 해요.

즐겨 읽는 평론가의 글이 있다면.
정성일, 김혜리, 허문영씨, 뭐 이렇게 있죠.

가장 아끼는 영화가 있다면.
인터뷰 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네요. 그건 대답을 할 수가 없네요. 좋아하는 영화 100편을 대라고 해도 석달을 고민해야 되요.

『원스』가 흥행한 건 배급사와 영화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지만 평론가들의 평론도 한 몫 했잖아요. 한 평론이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평을 할 때 조심스러울 것 같아요. 하나의 광고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저는 제천 국제 음악 영화제에서 원스를 봤는데, 음악은 좋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별 다섯개짜리 호평을 받을만한 영화인가 의심을 했어요. 
제가 원스 별점을 다섯 개를 준 사람이거든요. 별점이 다섯 개라는 것은 평론가가 올인했다는 의미에요. 별점이 네 개가 넘으면 정말 그 다음 부터는 취향에 가깝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네 개 반과 다섯 개를 구분할 수 있는 건 그 영화에 대한 애정이에요. 원스를 별점 세개 반 준 사람도 많아요. 저는 그것도 응당한 평가라고 생각해요. 다만, 별점 다섯 개를 주는 것은 영화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평론가로서 나는 이 영화를 내 온몸을 실어서 추천하고 싶다는 뜻일 뿐이에요. 별점 다섯 개가 이 영화는 흠이 0.1%도 없는 위대한 100% 덩어리다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원스라는 영화는 다만 제 입장에서 견딜 수 없게 사랑스러운 영화이고, 그래서 비유를 하자면 내가 그 사랑을 지켜주고 싶은 거에요.

글에서 소녀의 감수성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것도 유전자 때문인가요?
그렇죠 뭐. 전 유전자 결정론자 인데.(웃음) 저는 영화 글을 쓰면서 제가 바라는 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직업적인 책무를 다하고 싶다는 거. 하나는 제 개인적인 만족을 채우고 싶다는 거. 우선 내 글이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 효용성이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어떤 사람이 이번 아카데미 수상작 다섯 편 중에 뭘 볼지 고민을 하는데, 이 사람을 글을 읽으니까 이 걸 보는 게 낫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가서 봤더니 괜찮았다라고 말했으면 좋겠고. 혹은 영화를 봤는데 영화에 대한 어슴푸레한 자신의 감성을 제 글을 읽고 나서 보다 뚜렷하게 이해하게 된다면 그걸로 제 직업적 책무를 하게 되는 거죠. 그거 외에 작고 은밀하지만 개인적인 소망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거에요. 저는 어차피 글이라는 것을 생산해서 살아가는 사람인데, 저는 거기에 대해서 최대한 정확하고 능숙하고 싶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어요.

99년에 발간한 책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에서 경어체를 쓴 이유는 무엇이죠?
그 칼럼을 쓰던 시기와 연관이 있는데, 제가 칼럼을 경어체로 쓴 첫 번째 사람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당시로선 아주 새로운 시도였죠. 형식이라는 것은 내용을 규제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 그런 점에서 형식의 중요성을 남들 보다 더 중요시 하는 사람이에요. 그랬을 때 문체를 경어체로 쓰다보면 일반 경어체가 아닌 문장들이 담아 내지 못한 정서들을 담아낼 수 있어요.

『라 비앙 로즈』
『라 비앙 로즈』는 거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국민 샹송가수가 되기까지, 에디트 삐아프의 치열했던 삶을 담은 최초의 영화이다. 「장미빛 인생」, 「빠담빠담(두근두근)」, 「사랑의 찬가」, 「후회하지 않아」 등 주옥같은 OST의 수록곡들의 제목은 인간의 삶의 한 순간 순간을 담은 듯 의미심장하다. 특히「후회하지 않아」는 영화 마지막을 장식한다. 영화 속에서 에디트는 한 작곡가가 이 곡을 가져 왔을 때 "이 곡이 바로 내 인생이야"라고 말하며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이 순간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나요.

영화제를 기획하거나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요?
영화제는 기획을 해보고 싶고 또, 할 계획이 있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많다 보니까 하지 못하고 있지만요. 영화를 제작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전 영상을 다루는데 재능이 없어요. 저는 감독이 되면 좋은 영화를 만들 만한 성격적인 자질이 없어요.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좋은 감독들은 대부분 독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그런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영화 평론가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 친구들은 꿈이 너무 구체적이에요. 저는 꿈은 범위가 넓고 추상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그냥 이대로 제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좋고, 만족해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카세트를 한 번 갈아 끼웠고, 한 번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두 시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했다. 생전 처음 보는 타인과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마주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인터뷰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싶다. 카세트의 녹음 정지 버튼을 누른 후 자리에서 일어서 그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DVD와 비디오로 가득 찬 그만의 공간 속에서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앞으로 평생 동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참 담백하고 깔끔한 인터뷰였다.

 

/글 이경민 기자 jan14@yonsei.ac.kr

/사진 김가람 기자 super10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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