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인터뷰1

<The road to Mandalay - Robbie Williams>

이.동.진. 영화관련 잡지를 한 번쯤 읽어 본 사람들에겐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스스로가 말하길 그는 유전자의 작용으로 인해 영화와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어 문화부 기자가 됐다. 지금은 신문사 일을 그만 두고 이동진닷컴(www.이동진.com)이라는 개인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며 영화 평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다섯 권의 책을 썼으며 최근에 『필름 속을 걷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그의 블로그를 다녀가며 그의 글을 즐겨 읽는다. 대중이 선택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을 만났다.

 지하철 충무로역 5번 출구. 멀리 하늘을 바라보니 남산타워가 보인다. 이렇게 남산타워를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늘 스쳐지나가며 다음엔 꼭 한 번 가보겠다고 다짐했었지.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에서 두 남녀 주인공이 동반자살을 실패한 후 남산타워를 올려다보며 다음을 약속했던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를 건다. 빰빰빰빠라라빠빠 빰빰빰빠라라빰빠. 로비 윌리엄스의 「The road to Mandalay」가 이렇게 흥겨운 노래였었나 하는 찰나 그가 전화를 받는다. 이동진 닷컴, 그의 사무실은 충무로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동진 닷컴이라는 작은 간판을 보고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똑똑. 안녕하세요,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아 정말,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빨간 안경테를 썼다. 평소에 다양한 색상의 안경테를 의상에 맞춰 코디한다는 그는 대뜸 커피 하실래요 차 드실래요하고 물어본다. 아, 저는 차!
 그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아기자기하고 안락했다.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사온 매그네틱들과 작은 기념품들이 그의 사무실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한쪽 벽은 DVD와 음반들로 가득 찼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최신 레코더 대신 고등학교 때 쓰던 어학용 카세트를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레코드를 눌렀다. 요즘도 이거 쓰는 사람이 있었네 하며 그가 웃는다. 레디, 액션!


『인터뷰』
영화 『인터뷰』에서 이정재와 심은하는 인터뷰를 하며 사랑에 빠져든다. 인터뷰는 사람이 사람을 들여다보는 행위라는 점에서 어쩌면 타인과 타인이 나눌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서적 교류일 것이다. 이동진 기자는 문화부 기자로, 영화평론가로 10년이 넘게 일해 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 했다.

인터뷰 기자를 '인터뷰'하려니 긴장되네요. 인터뷰만 하다가 인터뷰 당하는 기분이 어떠하신지. 이번 인터뷰가 처음은 아닌 것 같은데. 처음인가요?
작년에 인터뷰를 18번 했어요. 올해는 3번째 구요. 작년에는 1인 미디어라고, 직장을 나와서 소위 남들이 보기에는 새로워 보이는 것으로 착각할 만한 그런 일을 제가 지금 시작했기 때문에 인터뷰 요청을 많이 받았구요. 그리고 작년 10월 말쯤에 책을 출간한 이후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많은 배우와 감독들을 인터뷰했을 텐데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사실 모두가 인상적이었죠.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다 내가 만나고 싶어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아요. 주로 감독들을 많이 인터뷰 했는데, 가장 짧게 한 인터뷰는 6시간 반 동안의 박찬욱 감독과의 인터뷰였고, 가장 길었던 인터뷰는 이명세 감독과의 10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였어요.

배우와 감독들과 굉장히 편안하게 인터뷰를 하는 것 같아요.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말이죠.
내가 인터뷰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인터뷰이가 좋기 때문에 저의 인터뷰를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어의 문제이기도 해요. 내가 오랜 세월 동안 이 분야 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신뢰를 갖는 편이죠. 두번째는 말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에요. 말의 뉘앙스를 최대한 살려서 본의에 가깝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포장해줄 필요가 있어요. 또한 말을 어떻게 인용하는가에 따라서 그 인터뷰글 자체가 느낌이 다를 수 있어요.

기자 활동을 하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한지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한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보면 사점이 보여요. 옛날에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 같고. 그럴 때 그것을 내가 이겨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죠.  영화평론은 상업적인 글쓰기에요. 기본적으로 제가 쓰는 영화평론이,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독자들을 겨냥해 글을 쓰는 저조차 그런 창작력에 한계를 느끼는데, 주기적으로 작품을 내놓는 감독 또는 작가들은 얼마나 고뇌를 할까.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면 고수한다고. 예를 들어 홍상수 감독, 늘 똑같은 작품 내놓는다. 또는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들은 작가의식이 없다는 소리를 듣잖아요.


『시네마 천국』

영화를 좋아하는 한 소년 토토와 늙은 영상기사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시네마 천국』.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말하는 이동진 기자의 어린 시절도 토토와 왠지 닮았을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좋은 영화를 보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영화와 영화 평론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영화 평론가는 아마 이동진씨를 따라다닐 그림자 같은 수식어에요. 어쩌다 보니 기자를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영화 평론가를 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 평론가를 하게 되었나요?
저야 뭐, 다 어쩌다 보니.

그럼 영화 평론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까 처음에 저를 뭐라고 불러야 될지 고민하셨잖아요. 저는 지금도 절반은 이동진 평론가로 불리고 절반은 이동진 기자라고 불려요. 뭐 어떤 거든 상관없어요. 다만 2년 전까지 신문사에 매여 있을 때보다 훨씬, 저로선 참 다행이죠. 내가 못하는 거 안 해도 되고, 내가 상대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부분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훨씬 더 나아진 상황이죠.

왜 영화나,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거죠? 언제부터?
왜가 아니고. 이건 유전자의 문제이죠. 전 유전자 결정론자에요.(웃음) 예를 들어. 영화가 종합예술이어서 뭐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떤 영화들을 보다 보니까 아, 영화라는 매체가 이렇게 대단한 표현능력을 갖고 있구나 해서 영화가 좋아진 거고. 음악도 그냥 집에서 음악 많이 듣다 보니까 좋아진 거죠. 그래서 조선일보 있을 때 문화부 기자로 활동을 했구요. 저는 입사 면접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기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문화부 기자가 되고 싶다고. 그래서 그 당시 면접관님께 혼났어요. 그래서 면접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죠.

/이경민 기자 jan1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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