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델리스파이스'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기사를 마치고 지친 육체를 버스 구석자리에 옮겨 놓는다. 차는 신촌 로터리를 지나고 피곤함에 머리를 기댈 때 라디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말아 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델리 스파이스(아래 델리)의 음악이 나오는구나. 오늘따라 간주의 기타 소리는 왠지 자기들을 만나러 오라고 하는 것 같다. 만물이 고요한 야심한 밤, 기자는 그들을 만나러 홍대 어느 카페로 가고 있다….
 

그들의 음악은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자료사진 문라이즈 저기 앞장서 계단을 올라오는 모자 쓴 최재혁(드럼)이 보인다. 동안인 그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인사를 나눈 기자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그 많은 질문 보따리의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홍대근처 ‘드럭’이라는 곳에서 시작했어요. 아마추어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네요.”라고 말하는 윤준호(베이스). 그와 최재혁은 한국외대 같은 과, 같은 밴드 선후배 사이였고 김민규(기타)도 처음에는 홀로 방구석에서 시작했다고. 대학의 마지막 4학년, 내 생애 밴드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결성했다는 델리. 첫 앨범을 낸지 1년이나 지난 뒤에야 입소문을 타고 「차우차우」가 ‘뜨기’ 시작했단다. “그래도 그 때 고생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저 앨범 낸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첫방송의 떨렸던 기억을 간직한 채 그동안 콘서트도 많이 하고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건 멋진 일이에요. 허나 제가 ‘상상플러스’같은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면 잘 못하겠죠(다들 웃었다). 당분간은 델리에 집중하고 싶어요.” 1집 앨범 하나만으로도 당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델리. 「노인구국 결사대」,「누가 울새를 죽였나」 등 6집을 발매한 지금까지 그들의 가사와 제목은 독특하기로 유명한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발상을 얻을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보통 때 메모해 두었던 게 자연스레 가사로 현실화된 게 많죠. 그렇지만 남들과 다르게 쓰는 게 좋아요. 영화가 멜로 하나만 있다면 지겹잖아요.” 그중 몇 곡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볼까. 대표곡인 ‘차우차우’는? 애초에는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델리. “90년대 중반 그 시절 락밴드 담론이기도 하고 다른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게 듣기 싫은데도 자꾸 들리고 떠오른다는 것. “대중들이 다들 사랑노래로 알고 있으니까 저도 이제는 연가로 느껴져요” ‘노래가 처음에는 만든 사람의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향유하는 사람의 것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 음악을 사랑하는 뮤지션임을 확인시켜 줬다. 또한 그들은 만화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고백’이 바로 그 예. 1,2절과 후렴구가 말하는 화자의 성이 달라 처음에는 동성애 노래냐는 오해도 받았다고 웃었다. 지금은 쟁쟁한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는 그들. 왠지 대학생 시절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예상과 달리 밴드 활동을 제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고. “그렇지만 당시 제일 걱정은 ‘꿈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냥 어떤 의식도 없이 시험이 닥치면 공부하고 평소에는 동아리방에 있고 그랬죠. 술도 엄청 마셨어요. 연애 못해본 건 매우 아쉽네요(웃음).” 그래서 대학생 때에 꿈을 소중히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델리. “현실을 생각했으면 저도 그냥 취업하고 살았겠죠. 델리도 태어나지 않았고요.” 홍대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다는데 홍대와 신촌 일대의 활기찬 분위기를 맘껏 느꼈겠다. “대학교가 많고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도 많아서 좋았어요” 하지만 홍대가 요즘에는 소비향락적으로 바뀐 것 같아 아쉽단다. “문화와 소비가 주객전도된 것 같습니다” 이에 덧붙여 최재혁은 “요즘은 방송에서 뜨면 대학에서도 원하는 것 같아요.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와 별 차이가 없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것은 기자도 항상 고민하던 주제가 아니던가. 문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델리는 우리대학교에서도 공연을 꽤 해봤다고 한다. “college rock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대학이 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 건 매우 바람직해요. 학생들에게 술보다는 문화생활에 돈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을까. “세사람이 함께 만들어 내는 음악이 델리의 음악이에요” 공연에서 청중과 생생히 소통할 때가 제일 좋다는 델리. U2처럼 계속 꾸준히 활동하는 그룹이 되고 싶단다. “다만 이전 앨범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시간 날 때는 도시락 싸가지고 공원 산책하기를 좋아한다는 델리. 같이 시켜 마신 생맥주에 취하고 그들의 매력에 또한번 취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델리의 모습은 흔적도 없어지고 기자는 다시 차 속에 앉아 있다. 그런데 기타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칙칙한 자정 뉴스 멘트만이 어두운 소식들을 전한다. 일상에 찌든 기자에게 잠시 들러 준 델리 스파이스. 그들의 깜짝 방문에 신문사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 외롭지만은 않다. 이번 4월 8일 공연에는 답방 차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자도 ‘항상 엔진을 켜둔 채’로 살아야겠다는 힘을 얻는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