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첫날 부터 개표일 까지 20여일간의 기록


개표 21일 전

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이미 대학사회에 만연해 있다. 11월 7일, 추천인 서명을 시작으로 제43대 총학생회 및 18대 총여학생회 선거(아래 총학선거)가 시작됐다. 공식 선거일정 첫날부터, 6백명 이상의 추천인 서명을 후보등록요건으로 하는 ‘43대 총학생회 및 18대 총여학생회 선거 시행세칙’(아래 시행세칙)에 따라 각 선거본부(아래 선본)의 운동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운동원들에게 흔쾌히 서명을 해주는 학생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귀찮다는 핑계로, 혹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상당수의 학생들은 서명하길 거부했다. 학생들의 ‘귀차니즘’이 심해질수록, 그에 비례해 운동원들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이런 광경을 10년쯤 학교를 일찍 다닌 선배들이 본다면 격세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추천인서명은 지금 같은 ‘난관’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13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1992년 제30대 총학선거에서 기호 1번 선본은 3천6백42명의 추천인 서명을 받아 후보등록을 마쳤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993년 제31대 총학선거에서는 출마한 4개 선본 중 3개 선본이 2천명 이상의 추천을 받기도 했다. 10년 동안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지만, 한 명의 서명이 아쉬워 발로 뛰어야하는 운동원들에겐 그 발전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듯하다. 개표 20일 전 추천인서명이 끝난 11월 8일, 후보등록 역시 마감됐다. 등록 결과 <Re랑>선본의 정후보 박원철군(법학·01)과 부후보 조성철군(정외·02), <행복 Plus+>선본의 정후보 이성호군(사회·02)과 부후보 윤태영양(경영·02), <W>선본의 정후보 손영현군(화학·02)과 부후보 이창호군(경제·00) 그리고 <민주연세>선본의 정후보 정대원군(컴퓨터과학·97)과 부후보 강영준군(정외·04)까지 총 4개의 선본이 2006년의 연세를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총여학생회(아래 총여)는 예년처럼 <여기 열다>선본이 단독선본으로 입후보함으로써 10여일 동안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그 막을 올렸다. 42대 총학생회는 8.15 축전 행사 거부를 통해 무색을 지향하는 정치적 색깔을 보여주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선관위)가 후보를 공고하면서, 우리대학교 최대의 커뮤니티인 연세대정보공유(아래 연정공)에서도 총학선거에 관한 다양한 논쟁들이 오고갔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 각 선본들의 정치적 성향에 관한 논쟁이었다. 42대 총학이 ‘탈정치'의 기조 아래 8.15 민족대축전 장소제공 반대 등 많은 화제를 낳았기에, 차기 총학의 정치적 성향은 유력 일간지에서도 관심을 갖는 이슈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부각되고 있는 ‘대학사회의 보수화’ 논란과도 맞물려 연정공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이른 바 ‘운동권’인 2개의 선본과, ‘비권’으로 분류되는 2개의 선본에 대해 네티즌들은 연정공 익명게시판에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정치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특정 후보가 특정 외부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식의 억측과 비난만이 남은 논쟁은 익명성에 기초한 연정공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하나의 주요한 화제는 후보 개인들에 관한 것이었다. 한 후보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과, 유일한 여성 후보자의 달라진 외모에 네티즌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여성후보자의 달라진 외모에 대한 의견들은 ‘관심’을 넘어 ‘인신공격’에 가까웠다. 실제로 선거홍보용 인쇄물에 실린 사진이 아닌 예전의 사진까지 올려가면서 차이를 비교하는 사진이 게시됐다 네티즌들의 요구로 삭제되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와 외모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가십거리이긴 하다. 그러나 선거의 핵심인 정책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가십거리만 남은 연정공의 모습은 조금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개표 13일 전

11월 15일에는 중앙도서관(아래 중도)앞 민주광장에서는 1차 합동유세가 열렸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중도 앞 행사 금지’라는 총학의 원칙까지 깨면서 열렸던 이날 유세에는 정작 유권자인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세는 계속 진행됐지만 민주광장에는 운동원들의 박수와 함성소리만 울렸을 뿐, 일반 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중도 앞을 지나가며 한번쯤 눈길을 줄 뿐이었다.


개표 11일 전

지난 17일 학생회관 앞에서 열렸던 정책토론회

학생들의 무관심은 11월 17일 학생회관(아래 학관)앞에서 「연세출판협의회」주최로 열린 2차 정책토론회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 선본들 사이에는 연정공에서 이슈가 됐던 후보들의 정치적 성향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도 뜨거운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관심을 갖고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본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학내 언론사 몇몇 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오히려 학관 앞에서 토론회를 갖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학생도 있었다. 학관 앞을 지나던 박 아무개군(공학계열․05)은 “어차피 학생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는데 길을 막고 왜 굳이 학관 앞에서 토론회를 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사회의 탈정치화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기성정치도 아닌 학내 선거까지 냉소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캄라는 것이 불신의 대상이 된 우리 대학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개표 6일 전

지난 22일 선본은 경고 3회 누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 탈락 통보를 받았고 24일과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선본이 각각 기자회견을 가졌다. 11월 22일 새벽 4시경 비상중앙운영위원회(아래 중운위)에서는 <W>선본의 후보자격박탈을 최종 의결했다. 이유는 경고 및 주의 누적이었다. 중선관위는 입간판 사진 크기 조항 위반 주의 1회, 웹자보 크기 규정 위반 주의 1회, 중선관위의 인증을 받지 않은 선전물 유포 경고 1회 등 총 경고 3회(주의 3회는 경고 1회로 간주)로 <W>선본의 후보자격을 박탈했다. 하지만 <W>선본이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W>선본에서 제기하는 불만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입간판 사진 크기’ 문제. 시행세칙에 따르면 정문 앞에 세워진 입간판의 크기는 일정 크기 이하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W>선본의 입간판의 사진은 다른 선본들에 비해 지나치게 컸고, 이에 다른 선본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제제가 결정됐다. 그러나 문제는 중선관위가 <W>선본의 입간판을 사전에 인준했었다는 것이다. <W>선본은 “사전 인준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본들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주의조치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불만은 ‘무일푼’의 자보사진을 무단 도용한 것에 대한 사과 문건배포를 불법선거물 유포로 규정해 경고 조치한 것이다. <W>선본은 “사과의 내용이 담긴 문건이 선거운동에 도움이 되는 선전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중선관위 측은 입간판 문제에 대해 “사전 인준을 했다고 할지라도 시행세칙에 맞는다면 게재하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던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불법선거물 유포문제에 대해선 “문제가 된 문건이 사전 인준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선거물에 선본 이름이 명기돼 있어 간접적 홍보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타당성을 설명했다. 개표 4일 전 투표용지에는 <W>선본에 X표가 그어져있다.

<W>선본은 11월 25일 기자회견을 가지는 등 중선관위의 자격박탈결정에 계속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미 학내 곳곳에 비치된 투표용지 위, 그들의 이름에는 X표시가 커다랗게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25일 저녁 총여선거 개표현장. 다른 총학 선본들은 참관인의 자격으로 개표현장의 일선을 지키고 있었다. <W>선본의 정후보 손영현군 역시 개표현장을 늦게나마 방문했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얼마간 서성이던 손군은 이내 개표현장을 빠져나갔다. <W>선본과 관련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계속 진행되었다.
선거 초기의 혼란으로 인해 투표기간을 25일까지 연장했으나 투표율 50%가 되지 않자 중선관위는 시행세칙에 따라 28일(월)까지 연장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개표 당일

11월 28일, 하루 동안의 연장투표를 거쳐 투표율 50.17%를 기록한 총학선거는 우여곡절 끝에 20여일간의 대장정을 마감하고 28일 밤 10시, 드디어 첫 투표함의 봉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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