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선관위)가 후보를 공고하면서, 우리대학교 최대의 커뮤니티인 연세대정보공유(아래 연정공)에서도 총학선거에 관한 다양한
논쟁들이 오고갔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 각 선본들의 정치적 성향에 관한 논쟁이었다. 42대 총학이 ‘탈정치'의 기조 아래 8.15
민족대축전 장소제공 반대 등 많은 화제를 낳았기에, 차기 총학의 정치적 성향은 유력 일간지에서도 관심을 갖는 이슈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부각되고 있는 ‘대학사회의 보수화’ 논란과도 맞물려 연정공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이른 바 ‘운동권’인 2개의 선본과, ‘비권’으로
분류되는 2개의 선본에 대해 네티즌들은 연정공 익명게시판에서 난상토론을 벌였다.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정치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특정 후보가 특정 외부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식의 억측과 비난만이 남은 논쟁은 익명성에 기초한 연정공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 하나의 주요한 화제는 후보 개인들에 관한 것이었다. 한 후보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과, 유일한 여성 후보자의 달라진 외모에
네티즌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여성후보자의 달라진 외모에 대한 의견들은 ‘관심’을 넘어 ‘인신공격’에 가까웠다. 실제로 선거홍보용
인쇄물에 실린 사진이 아닌 예전의 사진까지 올려가면서 차이를 비교하는 사진이 게시됐다 네티즌들의 요구로 삭제되기도 했다. 사회적 지위와 외모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가십거리이긴 하다. 그러나 선거의 핵심인 정책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가십거리만 남은 연정공의 모습은 조금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개표 13일 전
11월 15일에는 중앙도서관(아래 중도)앞 민주광장에서는 1차 합동유세가 열렸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중도 앞 행사
금지’라는 총학의 원칙까지 깨면서 열렸던 이날 유세에는 정작 유권자인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세는 계속 진행됐지만 민주광장에는
운동원들의 박수와 함성소리만 울렸을 뿐, 일반 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중도 앞을 지나가며 한번쯤 눈길을 줄 뿐이었다.
개표 11일 전
학생들의 무관심은 11월 17일 학생회관(아래 학관)앞에서 「연세출판협의회」주최로 열린 2차 정책토론회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각 선본들 사이에는 연정공에서 이슈가 됐던 후보들의 정치적 성향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해서도 뜨거운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관심을 갖고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본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학내 언론사 몇몇 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오히려 학관 앞에서 토론회를 갖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학생도 있었다. 학관 앞을 지나던 박 아무개군(공학계열․05)은 “어차피 학생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는데 길을 막고 왜 굳이
학관 앞에서 토론회를 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사회의 탈정치화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기성정치도 아닌 학내
선거까지 냉소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정캄라는 것이 불신의 대상이 된 우리 대학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개표 6일 전
<W>선본은 11월 25일 기자회견을 가지는 등 중선관위의 자격박탈결정에 계속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이미 학내 곳곳에 비치된 투표용지 위, 그들의 이름에는 X표시가 커다랗게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25일 저녁 총여선거
개표현장. 다른 총학 선본들은 참관인의 자격으로 개표현장의 일선을 지키고 있었다. <W>선본의 정후보 손영현군 역시 개표현장을
늦게나마 방문했다. 하지만 그의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 얼마간 서성이던 손군은 이내 개표현장을 빠져나갔다. <W>선본과 관련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계속 진행되었다. 선거 초기의 혼란으로 인해 투표기간을 25일까지 연장했으나 투표율 50%가
되지 않자 중선관위는 시행세칙에 따라 28일(월)까지 연장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개표 당일
11월 28일, 하루 동안의 연장투표를 거쳐 투표율 50.17%를 기록한 총학선거는 우여곡절 끝에 20여일간의 대장정을 마감하고 28일 밤
10시, 드디어 첫 투표함의 봉인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