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미디어부 한정원 기자

내가 연세춘추 기자가 됐다는 걸 알게된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잘나가는 유명인을 만날 수 있어서 좋겠다” 아마도 이 말의 속뜻은 ‘유명인과의 커피한잔, 부럽군. 혹시 타블로와?’정도일 것이다. 내 생각도 다를 바 없었다. 2005년 3월 어느날 아침, 감격적인 합격문자를 받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원없이 만나겠구나’였으니 말이다. 한학기 동안 기자 생활을 안했다면 만나기 힘들었을(정확히 말하자면 개인 연락처를 알기 힘든)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기자생활의 단백질이 돼준 사람들은 유명인들이 아니었다.

-장애우를 소외시키는 연고전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동행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난 겉모습의 장애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러웠다. 내가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기사를 쓰는게 기만적이지 않은가. 취재 내내 행여 말실수나 하지 않을까 말을 더듬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경기장에 같이 갔던 취재원이 한마디 던졌다.
“어려워말고 말씀하세요. 다 각자 역할이 있는건데...만약 실수를 하면 지적받고 사과하면 되는거지요. 정말 싫은 건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딴 소리 하는 사람들이에요”
입장조차 어려운 잠실 주경기장에서 내내 웃으며 응원했던, 자잘한 내 실수에 오히려 격려해줬던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김을환군의 말이었다.

-반문화에 대해 취재하던 얼마 전이었다. 반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과대 11반이 꽤 잘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취재원이었던 문과대 11반 학생회장과 반에 대한 이야기를 3시간 가까이 한 후 내게 남은 생각은 단 한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속한 공간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구나. 연고전이 끝나면 반을 떠나는 사람들이 태반인 게 대세다. 그 씁쓸한 상황에서도 반이 싫다는 얘기는커녕 앞으로의 계획을 쏟아내던 취재원의 한마디가 내 기자수첩에 사금파리로 박혔다. “몇번이나 울었지만 그래도 난 싸이코 11반을 떠날 수 없어요. 반사람이 좋으니까요”

이 글을 읽는 연두 독자들은 위의 두 사람을 모를 것이다. 유명인이 아니기에. 백양로에서 몇 번 마주쳐도 그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다만 특별한 게 있다면 일말의 자기연민도 없이 뭔가에 빠져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이 두사람은 유명인을 인터뷰하고 싶어 연락처를 알아내는 데 혈안이 됐었던 내게 ‘작은 우리의 꿈’이라는 말을 곱씹게 했다. 꿈을 이뤄가는 우리의 존재가 작은 것일뿐 꿈이 작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유명인’을 독자 대신 열심히 컨택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10년 후에 독자들이 만나고 싶어할 잠재적인 ‘유명인’도 만날 것이다. 나도, 그들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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