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2부 박슬기 기자

   
취재2부 박슬기 기자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즘이다. 길게만 느껴졌던 부기자로서의 생활도 세 번의 제작만이 남아, 취재원들과의 익숙해져버린 관계로 취재활동조차 항상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이 자리에서 돌아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짧게만 보이지만 1526호 제작 때 들었던 끝없는 번민과 아찔함은 그 길을 결코 짧게 느낄 수만은 없게 만든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기사로 내보내는 사안이라면 정확한 취재활동을 거쳐 ‘확인된 사실’을 쓰는 것이 바람직한 기자의 태도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학과 생활과 학생기자 생활을 병행하다보면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학기는 21학점의 빡빡한 시간표와 20개에 육박하는 취재처가 내게 주어져 일주일 내내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다 보면,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내 기사가 몇 개인지 등도 모르는, 나 스스로 꼬이는 상황이 발생해 지쳐버리곤 한다.

지난 9월 29일,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수업을 위해 이동 중에 학생회관 뒤쪽 게시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과 큰 소리가 오가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학내 활동을 금지한 IYF라는 단체와 교목실 관계자들과의 마찰이었다. 사건은 이러했다. 지난 27일 대자보를 통해 활동금지 통보를 내렸던 학교 측의 일방성에 반박하는 내용으로 29일 낮 IYF측이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인 것이다. 이를 발견한 교목실 관계자가 대자보 철수를 요구했고 IYF측은 그럴 수 없다며 팽팽하게 맞서게 되었다. 수업 시간이 가까웠던 터라, 나는 양쪽 관계자들에게 연락처를 얻은 뒤 강의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수업이 끝난 후 다시 그 장소에 가보니, 여전히 옥신각신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분, 결국 IYF측에서 붙였던 대자보는 교목실 관계자의 손에 처리됐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뭔가 큰 일이 일어났음을 느끼면서 취재를 위해 나는 바로 교목실로 향했다. 교목실 관계자들을 취재한 후 IYF 관계자가 일러준 연락처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IYF 관계자가 현장에서 밝혔던 입장으로 기사를 써야했다.

기사가 나간 그 주의 수요일이었다. 그 동안 연락이 안 됐던 IYF 관계자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유가 어찌됐건 우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 안 된 기사였다”라는 그쪽의 입장은 예상보다 강경했다. IYF 관계자와 나와는 평소 알고 지내던 터라 그쪽에서 나에게 느끼는 불신감은 훨씬 컸고 그런 이유로 나는 선뜻 기사 방향에 대한 나의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없었다. 충분히 그쪽의 입장을 듣고 근거를 들어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미 무너져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얼마 전 한 취재원과의 술자리에서 “기자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이 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땐 미처 대답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나 인간관계인 것 같다. 설사 나와 절친한 관계가 아닐지라도 취재 하려는 기자의 이해와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하려는 취재원 사이의 이해가 엇갈렸을 때 이러한 인간관계를 추스르는 과정은 외줄타기를 하듯 아찔하며 지독히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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