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와 사진으로 되짚어보는 '반의 1년'

기나긴 입시경쟁을 뚫고 설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찾은 새내기들, 그들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 다름 아닌 반방이다.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밥 한 끼 사달라며 살갑게 인사하고 선배 역시 그런 후배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봄 햇살이 따사로이 비치는 3월의 어느 날, 반방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하지만 한두 달이나 흘렀을까? 내년이면 우리 곁의 동기들도 모두 선배가 될텐데... 그 많던 선배들은 다들 어디 갔을까? 같이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마주칠 기회도 흔치않다. 대학생활 4년 동안 든든한 후원자가 돼줄 것 같던 선배들은 어느새 가끔 만나면 인사하는 존재로 변했다. 대동제도 연고제도 끝나버린 지금, 실체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공동체가 바로 ‘반’이라는 집단이다. 1년간의 모습을 담은 짧은 몇 가지 에피소드와 사진들을 통해, 반활동의 실태를 짚어보자.
#1. 설레는 마음으로 맞은 입학식. 3월에 신입생이 밥 먹는데 돈 쓰면 '바보'소리 듣는단다. 새터때 만났던 몇몇 친구들과 이미 밥 사줄 선배님은 물색해뒀으니, 입학식 끝나면 바로 반방으로 가야지. 근데...부모님이 같이 점심 먹자고 하셨는데...두 끼를 먹을까? 행복한 고민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후 뒤풀이에 간 세순이. 대학에 같이 온 친구도 없어 얼른 반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뿐인데... 뒤풀이 장소는 더X더X. 선배 한명당 05학번 다섯명이 한자리에 앉아 자기소개를 하고 휴대폰을 돌린다. 우선 술을 한잔씩 마시고 난 후, 이름과 학번, 졸업한 고등학교를 말하고 나니 할말이 없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려원이는 선배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선생님부터 맛있는 떡볶이집, 학교 얼짱에 대해 신나게 말하고 있다. 저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는 효리는 수시생이다. 얼마 후 있을 수강신청에 대비해 선배, 동기들과 시간표를 짜고 있다. 부러운 눈으로 려원이와 효리를 쳐다보는 세순이, 선배의 주도로 게임을 시작한다. ‘베스킨라빈스 써리~원!’ 게임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술을 많이 마셨다. 그래도 뻘쭘하게 앉아있는 것보다 게임이라도 하는 게 낫긴 하다. 차가 끊길까봐 자리를 빠져나온다. 신촌역으로 향하는 길,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보니 낯선 이름이 많다. 누굴까? 이 사람들은 날 기억할까?

3월은 선배가 밥사주는 달이라고 시트콤 X스톱에 나왔다. 선배들이 조를 짜서 밥을 사준다고 했다. 학관에서 밥을 먹고 난 후 선배가 물었다. “너희 궁금한 거 없어?” (다행이다. 어디서 주워듣긴 했는데 물어볼 사람이 꼭 필요했다) “우리 반에 XX학회 들어가고 싶어요” “응? 그게 뭔데?” 알아보니 XX학회는 3년 전에 없어졌단다. #2.4월의 합동응원전. 고려대학교 학생들도 모두 노천극장으로 모였다. 푸르고 붉은 깃발 아래서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몸을 흔들기를 몇 시간. 반 친구들과 함께해서 더 재밌는 것 같다. 끝나면 고려대 학생들과 교류도 한다던데, 이래저래 반이라는 곳이 참 마음에 든다. 5월, 드디어 대동제다. 반 친구들과 '아카라카를 온누리에'에서 무리한 듯 좀 피곤하기는 하지만, 일일주점 등 또 즐거운 일들이 쭉 남아있다. 우리반은 물풍선 맞추기를 한다는데....설마 나보고 서있으라고 그러지는 않겠지? 살짝 걱정은 되지만 역시 재밌는건 어쩔 수 없다. 반활동 열심히 안하는 친구들은 어디서 뭐 하는지 안 보인다. 역시 반활동 열심히 하길 잘했어! 기말고사가 끝났다. 농민학생연대활동(아래 농활)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근데 사실 가기가 귀찮다. 날씨도 덥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안 간다는 문자를 보냈다. 사실은 반친구들과도 예전같지 않다. 매일 만나도 주로 술 마시고 놀기만 하고, 남들은 영어다 자격증이다 공부한다는데 별 목적도 없어 보이는 반 모임에 나가려니 왠지 찜찜하다. 알고보니, 친구들 역시 농활에 절반도 안 갔다고 한다.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대학축제의 백미라는 연고전이 내일이다. 그동안 뜸하게 만나던 반친구들이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하지만 안보이는 얼굴들이 몇몇 있는 것 같다. 물어보니 그새 동아리나 다른 모임에 들어가 연고전도 그 곳 사람들과 같이 즐긴단다. 나도 동아리에나 들어볼까? 공연이다 연구다 열심히들 준비하는 모습이 괜시리 부러워보였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르게 허무하다. 연고전 그 후, 반방에 발걸음이 점점 뜸해진다.

 

 #3. 현빈이는 01학번이다. 군대에 갔다오니 갈 데가 없다. 반후배들은 반방에 좀 오라고 권하지만 뻘쭘하다. 누가 아는가! 속으로는 ‘나이 많은 선배가 나댄다’고 욕할지. 그냥 속편하게 공부나 하자.

가인이는 03학번 경제학과에 재학중이다. 1학년 때는 반방에도 자주 가고 술자리에도 꼬박꼬박 나갔다. 뭐 2학년 1학기까진 개강총회다 MT다 해서 반활동이란걸 했지만 그 때도 나 말고는 여자동기가 없었다. 같이 나가자고 동기한테 말했더니 나이 많은 여자 선배는 반에 나가는 게 아니란다. 내 나이가 벌써 많은 건가? 3학년이 되고나니 그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된다. 어차피 동기들도 없고 할 일도 많은데 가끔 반방에서 밥이나 먹지 뭐.

 

#4. 공학계열 1학년으로 입학했던 내가 이제는 2학년이 됐다. 전공공부를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다. 스터디 모임을 만들려고 해도 이제 막 만난 과 사람들이라 아직 친하지도 않다. 이러다 덜컥 3학년 되면 수업이랑 상관없는깊이 있는 공부는 하기 힘들텐데... 예전에 있던 과 학회들은 몇몇 과에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라고 고학번 선배가 한숨쉬던 게 생각난다. 아! 1학년 때부터 선배들과 공부할 수 있는 학회가 있었다면 지금 내 학점은 훨씬 더 좋았을 것을!

/이승호, 한정원 기자 bravo_my_life@yonsei.ac.kr

/연세춘추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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