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문 사학의 축제, 연고제는 왜 비판받는 것일까?

‘클린 연고제’ 바로 올해 정기 연고제의 모토이다. 질서 있고 깨끗한 축제를 만들어 나가자는 올해의 모토에 반대할 연세인, 또는 고대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클린 연고제’라는 기조를 보고 혹시 ‘깨끗한 축제를 만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될지 모른다. 결국 올해의 모토는 그동안의 연고제가 ‘클린’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연고전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되는 ‘학벌주의’

우리 사회는 소위 혈연, 지연, 학연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연(緣) 기반의 사회가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최근「중앙일보」의 ‘한국사회의 파워엘리트 대해부’라는 기획기사는 그 좋은 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 80년대 이후 사회적 변화로 인해 학벌체제가 느슨해지면서 '최상위 엘리트의 다양화'가 일어났다. 학연과 학벌이라는 기존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엘리트의 다양화는 하나의 학벌을 약화시키는 결과일진 모른다. 그러나 학벌의 다양화는 학연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기존의 학연 사회를 공고히 할 뿐이다. 김진욱 사회학과 강사는 “학연은 범주의 문제다”라며 “공고한 기존의 범주 내에서의 경쟁은 대안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학연은 아직도 우리사회 내에 분명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 /조진옥 기자 gyojujinox@yonsei.ac.kr
연고제, 그 중에서도 특히 ‘연고전’은 이러한 학벌주의를 공고히 하는 대표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학벌은 학교 당국과 사회 각계에 진출해 있는 동문들, 학벌을 통해 맞춤형 인재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거대 자본들의 집합이다. 이 학벌을 구성하는 주체들이 연고전에 모두 ‘출동’한다. 연고전에 참석하는 것이 각자의 이해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학벌없는사회’ 학생모임 연세대지부 엄수홍군(기계공학·04)은 “학교는 학벌에 편입해야 상류층이 될 수 있는 사회구조를 이용해 수입을 얻고 있다”며 “연고전이라는 것은 수험생들이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은 명문대라는 것을 각인시켜주며, 재학생과 졸업생에겐 자신이 명문대 생이라는 것을 재확인시킨다.”고 말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 피라미드의 최상부를 구성하고 있는 두 사립 대학교 연세대와 고려대. 양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회적 위치라는 역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장, 그곳이 바로 연고전이다.


독수리와 호랑이, 자본의 애완동물이 되다.

현재의 대학축제는 이미 단순한 대학 축제의 수준을 넘어 대규모화 되고 자본화 되었다. 지난 5월 열린 대동제의 진행비용 중 약 3천만원이 기업들의 후원으로 충당된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사회에 대한 저항정신과 대학문화가 퇴색돼 버린 연고전 역시 마찬가지다. 축제는 사라지고, 학벌이라는 왜곡된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주체들의 자기 홍보 기능만 빛을 발한다.

연고전 때 뿌려지는 팜플렛 등에는 어김없이 대기업의 광고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인 수많은 스폰서들의 후원은 연고전의 진행에 절대적이다. 엄군은 “기업이 원하는 것은 연고전이라는 엘리트들의 특권의식에 가득 찬 행사 속에서 나오는 승리의 이미지를 기업 이미지에 흡수시키는 것이다”라며 “연고전은 양교의 엘리트적 지위를 이용해 기업들의 사회적 지위를 이미지화시키는 도구이다”라고 연고전의 상업화를 비판했다.

학교 역시 연고전을 홍보의 수단으로 철저히 활용한다. “경기장에서 보여준 우리 고대인들의 단결과 화합력은 경기장을 직접 찾아 왔거나 중계방송을 통해 정기전을 지켜본 많은 내외국인들에게 다시 한 번 뚜렷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는 고려대 어윤대 총장의 말은 이러한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홈페이지를 연고전 승리 소식으로 장식한 우리대학교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한편 연고전을 위해 학교 측에서 지출하는 액수 또한 상당한 수준이다. 연고제 행사를 위해서만 학교 지원금 약 1억원(고려대 기준), 총학생회(아래 총학) 지원비 8천2백5십만원, 동문회의 지원 등 이틀간의 축제를 위해 지출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또한 연고전을 준비하는 1년 간 각 운동부의 훈련 등을 위해 학교에서 배정한 예산은 지난 2004년 기준으로 약 13억4천8백만원에 이른다. 지어진 지 45년 된 체육관 재건축이 기금 부족을 이유로 수년째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연세 체육의 발전을 위한 참된 투자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의 하나됨. 그건 진실일까?

연고전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연대생’, 혹은 ‘고대생’이라는 공동체의식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대학사회의 개인주의화로 인해 학생들이 공동체 활동을 경험할 기회가 적어진 상황에서 연고전이 그나마 학생통합 기능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응원을 통해 느낀 하나 됨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는 송치원군(사회계열·05)의 말은 이러한 학생들의 감정을 잘 대변한다. 하지만 일체감은 과연 진정한 것일까?

연고전 속에서 연대생과 고대생은 ‘위로부터 동원된 군중’이다. 구령에 맞춰 하나의 몸짓을 따라하는 그들을 김 강사는 “전체주의적, 혹은 파시즘적인 성격이 다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서 “그들이 착각하는 공동체란 바로 ‘일사분란’함이다”이라며 “일사불란함과 공동체는 소속감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나, 일사불란함엔 공동체의 필수요소인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지 거대한 군중 속에서 자아를 잊은 채 획일화된 문화를 학습하는 모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고전에 대해 “나는 단지 개인적으로 즐기러 왔을 뿐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러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떼거리문화에 참여함으로써 전체주의적 문화는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라는 엄군의 말처럼 치열했던 연고전이 끝난 지금, 자신의 행동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작은 고민을 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축제로의 연고제를 꿈꾸며

언제부턴가 연고제는 사라지고 ‘연고전’만이 남은 왜곡된 구조는 그동안 제기된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다양한 행사를 통해 사회현안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던 상아탑의 고민은 사라지고 단순한 놀이와 경쟁구조만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지난 2004년 개막 콘서트와 영화『화씨 9/11』상영 등이 있었던 문화행사가 올해도 댄스·가요제, 그리고 이슈시사토론회 등으로 이어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지난해 ‘국가보안법 철폐 강연회’와 ‘사립학교법 개정 토론회’가 무산된 바 있고, 올해에도 홍보부족으로 총학 측에서 준비했던 행사들이 제대로 열리지 못했듯 아직 갈 길은 멀다. ‘안티 고연전’등 대안적 연고제를 고민하는 모임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 한 채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기 힘들다.

지나치게 비대화된 연고제의 규모를 줄이고, 개인주의화의 반대급부인 다양성이 표출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학교나 총학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 없다. 해결의 열쇠는 축제의 당사자인 학생들이 쥐고 있다. 동원되는 군중에서 스스로 참여하는 주체로 거듭날 때, 연고제는 대학축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호 기자 coffeeholic@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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