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씨

“제덕씨, 기자 분들 오셨어요” 동행했던 기획사 직원의 부름에 담배를 피우던 한 사나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기자가 어디에 있는지 직원에게 묻는 듯 살짝 귓속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시각장애인이구나....’ 그러나 어색한 첫인사가 끝난 후 그가 던진 한마디에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햇살도 따뜻하고 하늘도 푸르고요.” 한여름의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어느 날,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씨(31)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위정호 기자 maksannom@yonsei.ac.kr

마음의 눈을 가진 남자

지난 2004년 1집 앨범을 발표하고 공익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제덕씨.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일반의 상식과는 달리 그는 세상을 ‘볼’ 수 있다. 1시간여에 걸친 만남에서 그는 ‘본다’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악보를 보고 콘서트를 찾아준 관중들을 보며 푸른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전제덕씨. 비록 신체적인 시력은 잃어버렸지만 심안(心眼)은 누구보다 밝은, 그는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리얼리스트 전제덕, 하모니카로 세상을 호흡하다

그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비치는 감동적인 장애인의 성공담은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가하게 앉아서 내 장애나 탓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어요. 사람이 뭔가 탓을 하게 되면 계속 탓만 하게 되죠. 그렇지만 난 음악을 하면서 앞을 향해 살아나가기 바빴어요, 또 체념이라는 것도 빨랐구요.”

또한 그는 자신의 장애를 감동적인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언론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우리나라 언론은 사람을 소개할 때 뭔가 특징을 찾으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저 역시도 언론에서 장애인이라는 것을 크게 부각시켰죠. 물론 그로 인해서 얻는 프리미엄도 많았지만 그건 크게 잘못된 겁니다. 처음에는 좋지만 나중에는 대중의 인식이 자신을 규정해버리니까요. 그래도 저는 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러한 인식을 많이 바꿨지만...” 

흥분한 듯 그의 말소리는 조금 떨렸다. 하지만 그 떨림 속에서 감상에 젖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전제덕의 면모는 어느 때보다도 확연히 드러났다.

이러한 전제덕을 살아있게 하는 힘은 바로 하모니카다. 사물놀이패에서 활동하던 지난 1996년 벨기에의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스’의 음악을 우연히 접하면서 시작된 하모니카와의 인연은 이제 10년을 헤아린다. 그는 하모니카의 매력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불면 소리가 나잖아요. 색소폰이나 트럼펫 같은 악기는 아무리 불어도 입만 아프고 소리가 안 나는데 하모니카는 조그만 게 불기만 하면 소리가 나니까. 그 작은데서 50개 이상의 음을 낼 수 있다는 것,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입니다.”

‘하모니카 마스터’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연주 실력은 신기에 가깝다. 이러한 그의 연주 실력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머리’만이 아닌 ‘몸’이 음악을 이해한 결과다. “내가 이해를 한다는 얘기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이해한다는 얘기에요. 얼마 연습하다 보면 머리는 이미 음악에 기본적으로 적응하고 있어요. 하지만 몸이 안 따라주면 소용없죠.”  연습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몸’을 이해시키기 위해 부족한 부분은 절대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는 전제덕씨. 하모니카와 음악은 그를 숨 쉬게 하는 또 하나의 ‘공기’다.

뉴욕에서 울릴 그만의 음악. Made in 전제덕을 꿈꾸다

/위정호 기자 maksannom@yonsei.ac.kr

연주 음악이 설자리가 좁은 현실, 그리고 하모니카라는 악기의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그는 성공했다는 평을 듣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성공에 안주할 법도 한데 그는 벌써 새로운 도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저는 천상 재즈맨 입니다. 그러니까 재즈를 해야죠. 그 중에서도 가장 음악성이 필요한 비밥이라는 장르에 천착(穿鑿)하고 싶습니다. 하모니카로 기틀을 다지면 제가 10년 넘게 몸담은 국악과의 접목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국악을 하면서 생긴 ‘뭔가'가 제겐 있거든요.”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그건 제 미래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단지 겉모습이 비슷하니까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겠죠. 그러나 나중에는 진짜 스티비 원더같이 됐으면 좋겠네요” 라며 겸손히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면 현대 재즈의 메카인 뉴욕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뮤지션 전제덕. 그는 또다시 일행의 손을 잡고 차를 타기 위해 자리를 일어섰다. 느리지만 자신의 지향점으로 걸어가는 그를 보면서 ‘Made in 전제덕표 음악’으로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을 그의 모습을 꿈꿔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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