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수남 동인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장인의 근엄한 모습으로 필름을 살펴보고 있는 김수남 동인 사진에 대해 조금 잘 알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혹은 굿을 포함한 무속신앙에 관해 레포트를 쓰게 되었다면, 반드시 한 사람에 대한 업적부터 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 및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수남, 연세춘추 16기 동인인 그에게 60년대 연세춘추에 관해, 또한 사진에 관해 몇가지 질문들을 던져 보았다. 카메라 끝이 보여주는 날카로운 바라보기
Q  여러 소재들 중 굿과 무속신앙에 대해 사진을 찍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내가 대학다니던 시절은 우리 문화를 알자라는 운동이 매우 강하게 일어났던 시기였어.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전통 문화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진작가들이 당시의 풍광들을 담으려고 했었지. 그런데 난 예전부터 인물을 찍는 것을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굿과 무속신앙에 관심이 가게 되더라구. 나중에 굿에 관해 공부를 더 하다보니 우리나라의 신화, 춤사위, 전통음악등이 모두 어우러져 있는걸 알게 된거야. 공부를 하면서 그 매력에 점점 더 빠져 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그가 찍어온 역사의 흔적들 Q 춘추에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시게 되었는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연세춘추 주최 고교생 백일장 대회에 참가했었어. 그 당시 춘추 선배이자 고등학교 선배인 소설가 윤후명씨가 진행을 맡고 계시더라구. 사실 고등학교 때에도 신문을 만들었고 또 그 선배의 영향을 받아서 연세춘추에 들어가게 되었지. Q 당시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당시 연세춘추 기자는 연세대 안에서 선택받은 사람이었어. 보통 경쟁률이 20~30대 1을 넘었었고, 발행인인 총장을 사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기세등등 했었지. 편집국 내부 분위기는 몽둥이를 맞아가면서 신문을 만들 정도로 엄격했지만, 항상 함께 했기에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어. 이제 한 개인의 예술 작품의 영역을 넘어서 사료적 가치를 가진 그의 필름들이 작업실 안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Q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일년에 두번씩 고대신문과 체육대회를 하는데, 춘추가 주최할때마다 스트리킹 비슷한 것을 했었어. 여기자들 집에 다 보내고, 백양로에서 고대 기자들 옷을 다 벗긴후 편집국까지 뛰게 했지. 당시에는 밤에 통행금지가 있을 시기니까 안심했는데, 한번은 옷을 벗고 뛰고 있는데 당시 언더우드 선교사의 며느리 분이 짚차를 타고 교문으로 들어오신거야. 다음날 우리를 잡으려고 학교에서 난리가 났지만, 결국엔 못찾았지.

   
푸근한 그의 미소는 상처받은 영혼들이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
Q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핸드폰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전국민이 카메라를 휴대하고 사진을 찍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시대가 되었어. 자기 표현을 전국민이 날마다 하는 시대가 온거야. 나는 이런 시대에 새로운 예술장르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많이 돼.

05년 한해동안 세번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내년에는 파리에서 초대전을 할 예정이라는 영원한 춘추인 사진작가 김수남 선배가 항상 건강하고, 멋진 창작 작품으로 그 이름 빛나길 기원하며 작업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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