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

견딜 수 없네.

역시나 ‘말’은 참으로 재미있고 오묘하며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갖게 한다. ‘견딜 수 없다’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절박한 상황을 표현한다. 헌데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 어미 ‘~네’가 붙었다. ‘~네’로 끝나는 문장은 현실에 직접 끼어들지 않고 바깥에 서서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견딜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 이러한 ‘메시지’와 ‘말투’의 불협화음은 (비록 이 둘 사이의 아이러니를 눈치 챌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읽는 이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삶의 고단함에서 충동적으로 내뱉은 투덜거림이 아니라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성찰의 결과라는 사실을 읽는 이들은 무의식중에 눈치 채고, 슬그머니 그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오늘은 정현종 시인이 그립다. 그의 언어에 사로잡힌 오늘과 같은 날엔, 천진난만한 악마처럼 웃고 있는 백발의 노교수가 그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넓은 창 / 바깥 / 먹구름떼 / 쏟아지는 비 / 저녁빛에 젖어 / 큰 바람과 함께 움직인다. / 그렇게 싱싱한 바깥 / 그 풍경 속으로 나방 한 마리가 휙 지나간다 / ―­   / 나방이 풍경을 완성한다!                                                                   「나방이 풍경을 완성한다」, 15쪽

명사가 쏟아지며 시선이 옮겨진다. 시선이 옮겨지며 산뜻한 심상이 그려진다. 촉촉하고 시원하며 싱싱한 심상이라, 이것만으로도 제법 마음이 좋다. 그런데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싱싱한 심상을 ‘진실로’ 살아 움직이게 한다. 모든 것은 정지한 상태이며, 움직이는 것은 무색의 공기와 물 뿐인데, 이러한 깨끗하고 촉촉한 풍경에, 생명을 지니고 어떠한 정해진 규칙도 없이 제 멋대로 움직이는 나방 한 마리가 느낌표를 옆으로 찍은 채 등장한다. 정중동의 매력이랄까. 싱싱한 풍경은 살아 움직이는 나방의 등장으로 심장을 달았다. 그야말로 시각적 심상의 완벽한 구현. 마음속에서 행복함이 밀려온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만으로 한 개체가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쁜 여자가 스쳐 지나가면 / 내 다리는 갑자기 감속되다가 / 급기야는 /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야! / (이상할 게 없어요 / 뒷걸음질이 건강에 좋다는 설도 있으니)                                                                    「이쁜 여자가 스쳐 지나가면」, 57쪽

이 시에 뭐라고 말을 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냥 웃으면 된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보라. 예쁜 여자를 본 남자, 그녀를 보다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남자,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 비록 아무도 보진 않았지만 괜스레 혼자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뒷걸음질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 이 상황만 생각하면 그 남자가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사실 이 시집을 읽다보면 견딜 수 없을 때가 많다.) 시를 읽는다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닌가.

이런 투명 속에서는 / 나는 / (정말이지) / 말을 못한다. / 사람과 마주치지 않겠다. / (여치나 / 방아깨비 근처는 괜찮을까) / 투명에 합류하여 보이지 않겠다.                                                        「이런 투명 속에서는 : 두 번째 변주」, 87쪽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선 당신, 차마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하리라. 그 완벽한 풍경에 혹시나 누가 될까. 허나 시인의 언어는 ‘누’는커녕 투명한 날씨를 더욱 아름답게 격상시킨다. 투명한 날씨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때문에 화자도 사람과 마주치기를 꺼리며, 초록 빛의 곤충인 여치나 방아깨비 근처는 괜찮을지 생각해 본다. ‘투명에 합류하여 보이지 않겠다’는 화자의 다짐은 아마 온 인류를 설레게 하리라. 투명 속에서 고민할 머리도, 가슴 아파야 할 마음도, 병들 몸도 없이 투명 그 자체에 합류하여 보이지 않겠다는 인간의 욕망. 누구나 꿈꾸지만 말로써 표현하지 못했던 갈망. 그 어느 날, 맑은 하늘이 온 세상을 품을 때면 언제나 그의 언어가 또 생각나겠지. 이 이상한 마비를 박제하고 싶겠지.(이런 투명 속에서는 : 변주)

내가 기운 없어 보일 때는 /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 기운을 내지 않는 거라고 / 나는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말했다. / (아닌게 아니라 그는 / 낼 필요가 있을 때는 / 무슨 기운이든 기운을 냈다) / 듣는 사람은 의아해했으나 /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 호랑이들도 만족스러워했다.                                                                   「기운」,127쪽

우선 ‘기운’을 바라보는 시인의 통찰력이 실로 놀랍다. 다들 이러한 경험이 있으리라. (아닌가? 하긴 듣는 사람들이 의아해 한다고 했으니) 사실이 어찌됐건 화자는 기운이 없어서 기운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기운을 내지 않는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낼 필요가 있을 때는 무슨 기운이든 기운을 낸다고.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싶다. 누구든 기운이 없어 보일 때도 필요한 순간이 오면 기운을 낸다. 이 시의 재미는 ‘기운’에 대한 시인의 통찰력에 있기도 하지만, 백미는 마지막 세 행이다. 어쩌면 뚱딴지같아 보이는 화자의 주장에 듣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지도 모르나, 그가 생각하기에 주위의 보이지 않는 정령이나 호랑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자신의 얘기를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것으로 간주하며 무시할 때, 우리는 곧잘 이런 생각이 든다. 뭔지 모를 주위의 공기들은 내 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정현종 시인은 미당의 ‘언어’를 찬미했다. 그래서 그를 추모하며 그의 시를 기리는 작품을 이 시집 속에 남기고 있다. 시인은 미당의 「푸르른 날」을 인용하고 있는데, 나도 여기에서 이를 인용해야겠다. 단 대상은 바뀌어 미당이 아닌 정현종 시인이다. 길었던 겨울이 가고 나의 스물두 번째 봄이 오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지금의 그 푸르름 속에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마지막으로 내 마음의 소중한 별이 된 수많은 시들을 제치고 이 시집의 제목을 따낸, 어쩌면 조금 얄밉지만 얄미운 만큼 위대한 시, 「견딜 수 없네」(50~51쪽)를 남겨본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 나 마음 더 여리어져 /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 견딜 수 없네. / 흘러가는 것들을 /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 변화와 아픔들을 / 견딜 수 없네. / 있다가 없는 것 / 보이다 안 보이는 것 / 견딜 수 없네. / 시간을 견딜 수 없네. / 시간의 모든 흔적들 / 그림자들 / 견딜 수 없네. /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