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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찾아온 단 한번의 사랑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
  • 윤성훈 기자
  • 승인 2005.02.25 00:00
  • 호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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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로가 다시 숨을 쉰다. 깔깔거리는 활기찬 꽃들, 캠퍼스에선 봄꽃이 피기 전에 이미 꽃이 폈다. 약동하는 3월의 첫째 주, 파블로 네루다의 심장타령이나 어울릴 법한 이 계절에 분위기 파악 못하는 작품 하나가 나를 사로잡는다. 찬물을 끼얹어도 유분수지. 시작하는 마당에 웬 아무럴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밋밋한 제목의 작품 타령인가.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점에 선 지금,『그 후』에 마음을 한 번 빼앗겨 본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오른손을 심장 위에 얹고 늑골 끝에서 정상적으로 뛰고 있는 맥박 소리를 확인하면서 잠을 청했다.


심장 소리에 경청을 하는 것은 요사이 생긴 다이스케의 습관이다. 격렬한 피의 흐름과 심장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큼 그는 삶 그 자체를 느끼면서 살아간다. ‘생(生) 그 자체’에 대한 집착어린 애정이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제법 낯설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고 생활을 하는 법을 우리는 언제부턴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오로지 욕망에 따라서(그것의 자신의 것이든 타자의 것이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 그래서일까, 심장의 리듬을 타고 삶을 느끼는 다이스케의 기이한 행동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부럽다. 다이스케는 한가하다. 심장 소리를 음미하면서 들을 만큼. 다이스케가 하는 일이란 그야말로 ‘참살이(웰빙)’.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목욕을 하고 적당히 밥을 먹고. 내키는 대로 산책을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물론 돈을 버는 일은 그가 할 일이 아니다. 서른이 다 됐지만 그는 아버지와 형에게 매번 생활비를 타서 쓴다.


나는 소위 사회생활의 경험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네. 고통스러울 뿐이지 않나?


다이스케는 철저히 반사회적이다.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 백수인 셈. 그는 사회생활의 행위 자체가 일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태한 소 한 마리가 되어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에 탐닉한다. 이런 그에게 ‘미칠 일’ 하나가 생기니, 그것이 바로 젊은 영혼들의 영원한 골칫거리 ‘사랑.’ 다이스케의 30년 인생에 애틋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때 비로소 다이스케는 더 이상 오래 미치요와 앉아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의 정분에서 나오는 서로의 말이 당장 이삼 분 안에 무의식중에 그들로 하여금 어떤 한계를 넘어서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이스케의 예민한 심장을 벌컥거리게 만든 여인은 ‘미치요’. 그녀는 다이스케의 절친한 친구 히라오카의 부인이다. 3년 전 히라오카와 그녀의 결혼을 주선한 것도 다이스케, 누구보다도 이들의 결혼을 축복해 준 것이 바로 다이스케다. 이러한 그가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참된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리석은 일이지. 허나 어떡할 것인가, 인간의 마음이 그러한 것을. 다이스케는 그동안 아버지와 형수가 배우자로 소개해준 모든 여자들을 물리쳐왔다. 그는 사랑도 결혼도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소개해준 여자만큼은 이런 이유 때문에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겐 미치요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다이스케는 아버지와 애당초 얘기가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어떠한 설득의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둘 사이는 멀어지고 다이스케는 더 이상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체면이 없다. 다이스케의 머리는 복잡하다. 이제 스스로 돈도 벌어야 하고, 어엿한 남편이 있는 여인과의 사랑문제도 있다. 이 여인 또한 다이스케를 사랑하지만 꽤나 심각한 병을 갖고 있다.


나에게는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이 꼭 필요해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당신을 부른 겁니다.


마침내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서투르지만 그만큼 진실한. 너무나 진실한 말이었기에 나의 심장은 송곳에 찔린 듯 그렇게 아파온다. 이러한 이야기에 해피엔딩은 없는 법. 사랑이 없던 사람에게 사랑이 왔는데, 그 사랑이 이렇게나 힘들고 가슴 졸여야 하는 것이라니. 다이스케는 자신의 친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서로 사랑한다고 그렇게 고백한다. 충격을 크게 받은 히라오카지만 자신의 부인을 친구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한다. 절교를 선언하면서, 그리고 지금 병 때문에 누워있는 부인이 일어날 때 까지만은 자신이 돌보기로 약속하면서.


절교를 선언한 뒤라 다이스케는 병상에 누운 미치요의 몸 상태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친구의 부인과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아챈 아버지와 형도 다이스케를 자신의 아들 혹은 동생으로 보지 않겠다며 그와 관계를 끊는다. 그는 그렇게 머리 속이 새빨개짐을 느끼며 전차를 끊임없이 타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에 있었던 유일한 사랑이라,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인가. 하지만 그 사랑을 사회는 받아주지 않았다. 다이스케의 유일한 사랑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나는 ‘그 후’가 궁금하지 않다.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작가는 그렇게 독자를 배려했다.
‘그 후’는 없다.

윤성훈 기자  saintange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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