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 인터뷰

“희망도 너무 크지 않게, 절망도 너무 길지 않게.” 김도현(49)은 희망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글을 쓰고 시위에 나서는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다. 평소 장애 의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 활동가는 96학번으로 특수교육학과에 진학했다. 국내에서 장애를 다루는 몇 안 되는 전공 중 하나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전공에서 공부한 학문에 회의를 느꼈다. 이 학문이 장애인의 삶을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이 의문을 담아 그는 진정성 있게 장애인의 삶을 바라보자는 마음으로 ‘장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졸업반 당시 그는 학업보다 장애 투쟁을 우선시했다. 장애 투쟁에서 생긴 연으로 현재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일하고 있다. 주류 언론이 기록하지 않는 장애 의제에 주목하고자 2010년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시작했다. 지난 10일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그를 2시간가량 만나 장애학과 장애 의제의 중요성에 대해 들었다.

 

장애학, 장애인의 삶을 중심에 두다

 

▶▶ 김도현 활동가는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활동하며 주류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는 장애 문제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세웠다.
▶▶ 김도현 활동가는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활동하며 주류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는 장애 문제를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세웠다.

 

Q. 장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 오신 걸로 안다. 장애학은 어떤 학문인가.

A. 장애학은 장애인이 차별받아 온 역사와 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장애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Q. 장애학에서는 장애 문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나. 

A. 장애가 ‘소수자의 문제’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 사회의 권력은 비장애인에게 집중돼 있다. 비장애인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은 소수자로서 소외되기 마련이다. 평등한 관계성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장애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Q. 우리 사회는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A. 여전히 장애 문제를 보건·복지라는 틀 안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장애 문제 해결을 개인의 ‘신체적 손상’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보는 시각이다. 결함이 있는 장애인의 문제를 비장애인이 해결해준다는 시혜적인 관점이다. 이러한 인식 틀 안에 장애 문제를 가두면 장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Q. 비장애중심 사회가 작동하는 기저에는 무엇이 있나.

A. 능력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 운동이 넘어서야 할 근본적인 지점이 바로 여기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권리는 존재한다. 그런데 ‘능력이 있어야 권리가 보장된다’는 능력주의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볼 때 장애인 권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비장애중심 사회의 작동 기저에는 능력주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Q. “장애인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을 받으니까 장애인이 된다”고 말했다. 비장애중심 사회에서 차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A. 장애에 따르는 차별은 필연적이지 않다. 차별은 비장애중심주의에 따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예컨대 흑인은 피부가 까맣다는 생물학적 특징을 타고났지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피부색이 문제가 되는 건 노예제처럼 인종차별 사회가 만들어 낸 차별의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장애라는 생물학적 특징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능력에 가려진 권리를 세우다

 

Q. 지난 4월 13일 JTBC 시사 프로그램 『썰전라이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만났다. 장애 인권이 다뤄지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A. 사실 2001년부터 장애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TV 토론회 같은 큰 규모의 프로그램에서는 20여 년간 장애 이슈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다. 이는 한국 사회가 장애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그런 점에서 장애 이슈를 토론장에서 다룬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장애 의제가 토론 주제로 선정되는 과정을 보면 굉장히 씁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정말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가져서가 아니라 토론 배틀이 갖는 화제성에 의한 것이라면 말이다. 우리가 의제 자체에 주목하고 있는지 한 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Q. 장애 문제가 공론장에서 다뤄지기까지 지하철 이동권 시위가 큰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도 중요할 텐데.

A. 나는 지하철 이동권 시위를 ‘지하철 탑승 직접행동’이라 부른다. 이건 기본권 침해에 대항하기 위해 의도적·공개적으로 정책을 위반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서인지 사람들은 시위의 목적을 장애인 이동권 보장으로만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직접행동은 이동권 보장 너머 장애인 권리 예산, 탈시설, 교육권 등 전반적인 장애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Q. ‘왜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느냐’는 등 시위를 둘러싼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A. ‘죄 없는 선량한 시민들을 왜 볼모로 잡느냐’는 문장에서 ‘시민’이라는 단어를 ‘장애인’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우리 사회에 맞춰 살 수 없을뿐더러 살지 않겠다고도 그동안 말해 왔다. 지금까지 비장애중심 사회에서 비장애인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장애인의 기본권을 볼모로 잡아 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

 

Q. 장애인은 기본적인 정보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A. 정보화 사회에서는 인간의 삶에 정보가 갖는 중요성이 크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는 비장애인중심 시각 위에 서있다. 일례로 점자와 수어 같은 정보 접근성 보장이 굉장히 미흡하다. 문서를 점자나 음성 파일로 변환할 때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예산의 문제이자 권력의 문제다. 장애인은 정보 접근 기회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엄연한 폭력이다.

 

Q. 장애인권을 이야기할 때 탈시설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장애인 차별에 맞서는 강력한 운동으로 알고 있는데, 탈시설이 다른 장애인 권리 운동과 어떤 연관이 있나.

A. 탈시설 운동은 다른 장애인 권리 운동에 비해 비교적 뒤늦게 사회 의제로 등장했다. 탈시설은 다른 권리들이 유기적으로 잘 보장됐을 때 실현 가능하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탈시설은 불가능하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으면 교육받을 기회도, 일할 기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Q. ‘중증장애인들은 자립하지 못한다’, ‘개별 가정의 부담을 가중한다’는 탈시설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A. ‘자립하지 못한다’는 주장엔 오류가 있다. 탈시설을 하려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게 먼저다. 활동지원서비스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립은 당연히 어렵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능력만 놓고 자립을 논하는 건 부당하다.

‘개별 가정의 부담을 가중한다’는 주장도 바람직하지 않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책임은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 그러려면 시설-가족이라는 이분법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왔을 때 개별 가정에 돌봄의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탈시설 운동의 핵심은 지역사회가 장애인을 책임지는 데 있다.

 

연립의 세계를 앞당기기 위해

 

Q. 저서 『장애학의 도전』에서 ‘연립’이란 용어가 나온다.

A. ‘자립’을 이해하는 방식이 왜곡됐다는 점에 착안해 ‘연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흔히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자립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장애인이 자립하려면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잘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상호 의존을 통해 공생하는 삶. 이게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자 연립이다. 우리 사회에 연립이라는 가치가 흘러야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고, 그래야 타인과 상호 의존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 모두 공생할 수 있다.

 

Q. 장애를 둘러싼 인식 개선이 중요해 보인다.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설립한 것도 같은 이유인지 궁금하다.

A. 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에서 장애인권을 알리고자 「비마이너」를 설립했다. 기성 언론은 대개 시혜와 동정, 미담 사례 정도로 장애 의제를 보도해 왔다. 「비마이너」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장애 문제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기록을 담론으로 체계화하고자 굵직한 기획 기사 여러 편을 준비 중이다. 서로가 입체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감각,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 이것들이 우리 모두가 존엄하게 살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환기하고자 했다.

 

Q. 장애인과 함께하는 세상을 꿈꾸는 도전, 어떻게 나아갈까.

A. 우리 사회를 어떤 식으로 재구조화할 것인지 함께 고민한다면 장애인과 공생하기 위한 도전은 희망의 궤적을 그릴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하고 아무런 손상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구든 신체적 결함을 가질 수 있다. 모두가 인간답고 존엄한 삶을 꾸려가기 위한 성찰의 태도가 필요하다.

 

Q. 장애학의 도전이 펼쳐질 때 대학생 독자들에게는 어떤 시선이 필요할까.

A. 대학사회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집중돼 있다. 능력주의와 각자도생이 사회 문제를 성찰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학생들을 내모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학생사회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 역량과 가능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대학사회의 공헌은 늘 존재했다. 대학생들이 장애인 권리 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시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그렇게 확장될 수 있다.

 

 

글 이현성 기자
leehs9800@yonsei.ac.kr
최준성 기자
jschoi0609@yonsei.ac.kr

사진 김대한 기자
3.18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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