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애와 보편적 디자인, 장애 인권의 미래를 그리다

장애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장애인의 이동과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 앞에서 장애 인권은 정체된다. 우리신문사는 지난 4~8일 우리대학교 학부생 545명을 대상으로 ‘연세인과 ‘연세 접근성’’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장애 인권을 바라보는 학생 사회의 시선을 들여다봤다.

 

이동에서 접근까지
연세인이 보는 장애 인권

 

지난 2021년 12월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지하철 시위를 시작했다. 전장연은 ‘예산 없이는 권리도 없다’며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촉구했다.

장애인 이동권의 실상은 열악하다. 지난 2021년 5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0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시내 저상버스 보급률은 27.8%에 그쳤다. 지자체별 보급률 격차도 심각했는데, 2020년 기준 보급률이 가장 높은 서울특별시(57.8%)와 가장 낮은 충청남도(10.0%)의 격차는 다섯 배 이상을 기록했다.

장애인콜택시도 이동권 보장에 한계를 보였다. 장애인콜택시를 지자체 단위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탓에 지역 간 이동권 보장이 일관되지 못한 것이다. 전장연은 “현재 장애인이 이용하는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시‧도간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며 “저상 시외버스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데다 지방으로 갈수록 기본적인 교통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동권은 법률상 물리적인 접근권, 그중에서도 교통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의미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에 따르면 이동권은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이때 장애인 이동권은 포괄적 의미의 접근권에 포함된다. 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박창석 교수는 「기본권으로서의 장애인의 이동권」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접근권을 ‘물리적인 접근권’과 ‘정보와 통신에 대한 접근권’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 설명했다.

‘정보와 통신에 대한 접근권’에 해당하는 개념이 바로 ‘정보 접근성’이다. 이일호 연구교수(법학연구원·지적재산권법)는 “정보 접근성은 정보 분야에서 발현되는 보편적 접근권의 한 종류”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취약계층을 제외한 국민 대비 81.3% 수준에 불과했다. 이 연구교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정보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데도 장애인 정보 접근성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접근권을 바라보는 연세인의 시선은 어떠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애 인권 문제가 학생 사회에서 세심하게 논의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인과 ‘연세 접근성’’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대체로 학내외 장애인 접근권이 잘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답변을 보였다. ‘학내 장애인 이동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혹은 ‘전혀 아니다’라고 대답한 학생은 37.06%로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14.86%)을 크게 앞섰다. 반면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대한 찬반 비율은 각각 37.43%, 36.33%로 비슷했다. ‘잘 모르거나 관심 없다’고 답한 비율은 26.24%에 달했다. 장애인 탈시설에 대해서는 51.19%의 학생이 ‘잘 모르거나 관심 없다’고 대답해 ‘지지한다(35.96%)’ 혹은 ‘반대한다(11.56%)’고 답한 수치를 크게 앞질렀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이주희 주임은 “학내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이수율은 굉장히 낮은 편”이라며 “장애 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학내에서 학외까지
‘장벽’을 파헤치다

 

장애인 접근권을 폭넓게 보장하기 위한 ‘무장애(barrier-free)’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무장애는 장애인, 고령자 등의 사회적 약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동, 접근, 이용에 있어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장벽을 허무는 것을 뜻한다.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이성일 교수는 “처음 무장애가 나왔을 때 ‘장벽’은 문턱, 계단처럼 눈에 보이는 건축물과 시설물을 의미했다”면서 “점차 제도와 법률, 문화와 예술 분야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려는 시도로 확장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들이 장애인권위원회와 함께 교내 무장애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일부 장소에서 미흡한 부분이 발견됐다. 미래캠의 경우 정경대 인근 보행로가 손상되거나 킥보드가 경사로에 무단 주차되는 등의 문제가 포착됐다. <관련기사 1891호 7면 ‘우리 모두의 이동권과 접근성을 위해서’> 신촌캠은 스포츠과학관 1층 여자 장애인화장실에 세탁기가 설치된 탓에 이용에 제한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관련기사 1892호 3면 ‘‘장벽’ 없는 캠퍼스에 ‘완벽’이란 없기에’>

 

▶▶ 미래캠 정경대의 경사로 초입에는 무단 주차된 킥보드와 턱이 존재해 휠체어를 타는 장애학생들의 진입에 방해가 된다.
▶▶ 미래캠 정경대의 경사로 초입에는 무단 주차된 킥보드와 턱이 존재해 휠체어를 타는 장애학생들의 진입에 방해가 된다.

 

▶▶ 일부 신촌캠 장애인화장실에는 세탁기와 빨래 도구가 놓여있어 이용이 제한된다.
▶▶ 일부 신촌캠 장애인화장실에는 세탁기와 빨래 도구가 놓여있어 이용이 제한된다.

 

무장애 환경으로 설계된 국제캠의 경우 건물 출입 시 대체로 단차가 없었다. 모든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지만 ▲보행로 ▲점자블록 ▲주차장 ▲건물 출입구 ▲장애인화장실 ▲키오스크 등에서 미흡한 부분이 일부 발견됐다. 자유관A 근처 보행로에는 배수구가 녹슬어 손상된 부분이 발견됐다. 진리관A·B 근처 보행로에는 배수구 혹은 무단으로 주차된 킥보드로 인해 점자블록이 끊긴 구간이 관찰됐다. 주차장의 경우 배수구 덮개가 개방돼 보행자가 다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진리관A, 자유관A 등의 출입구는 고정문 탓에 휠체어가 지나가기엔 폭이 좁은 편이었다. 국제캠 시설지원팀 조용환 주임은 “노후하고 개방된 배수구 덮개를 확인 후 조치하겠다”며 “고정문 개방에 대해서는 장애학생지원센터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 국제캠 진리관A 출입구 근처 점자블록에 킥보드가 놓여있어 시각 장애 학생들의 통행이 어렵다.
▶▶ 국제캠 진리관A 출입구 근처 점자블록에 킥보드가 놓여있어 시각 장애 학생들의 통행이 어렵다.

 

▶▶ 국제캠 진리관B 근처 보행로. 배수구에 가로막혀 점자블록이 끊어져있다.
▶▶ 국제캠 진리관B 근처 보행로. 배수구에 가로막혀 점자블록이 끊어져있다.

 

종합관 1층 여자 장애인화장실에는 ‘고장’ 표지와 함께 각종 청소도구가 비치돼 있었다. 자유관A 3층 여자 장애인화장실에는 조끼와 의자 등 청소노동자 개인물품이 있었다. 불이 켜지지 않아 실질적으로 사용이 힘든 장애인화장실도 있었다. 정보 접근성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키오스크에도 문제가 발견됐다. 언더우드기념도서관 1층에 위치한 일부 키오스크는 휠체어 사용자가 쓰기에 화면이 높고 꺾어져 있었다. 조 주임은 “불이 켜지지 않거나 본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장애인화장실에 대한 개선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키오스크 관련 애로사항은 생활협동조합 및 도서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도학사에는 27개의 일반장애인실과 3개의 중증장애인실이 마련돼 있다. 학생과 도우미가 함께 거주하는 중증장애인실은 전동 침대와 도우미용 침대를 함께 갖추고 있다. 일반장애인실 역시 도우미가 필요한 경우 함께 머물 수 있다. 장애인화장실은 대체로 사용하기 편하게 돼 있었으나 수도꼭지에 냉·온수를 알려주는 점자 표시가 없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전등 스위치에도 별도의 점자는 보이지 않았다. 중증장애인실 출입구는 자동문이었으나 문이 열리고 닫힐 때 음성안내가 없었다. 송도학사 관계자는 “전등 스위치 및 수도꼭지 점자는 바로 개선이 가능하며, 중증장애인실 출입구 음성안내의 경우 담당 업체가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무장애는 제도적 차원에서 논의돼왔다. 하지만 아직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아래 BF인증)는 사회적 약자가 편의시설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계획 단계에서부터 무장애 환경이 잘 조성돼 있는지 검증하고 등급을 부여하는 절차다. 지난 2015년 공공건물과 공중이용시설이 BF인증 의무화 대상이 됐지만 대부분의 민간 건물은 아직 의무 적용 대상이 아니다. 

‘신촌/홍대권역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아래 신배공)은 신촌·홍대 일대 무장애 현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근 상권에서 한 차례 예비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부분의 진입로에 턱이 존재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았다. 경사로가 있더라도 경사가 너무 높아 휠체어 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무장애가 개인의 자율과 편의에만 맡겨져 사회 전반에 안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설계 단계에서만 인증이 이뤄지는 탓에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성일 교수는 “운영 인증이 아니라 설계 인증이기 때문에 처음 인증만 받은 후 관리 감독과 운영이 미흡한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장애 중심 환경에서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를 실현하려면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확충이 절실하다. 보편적 디자인은 나이, 성별, 인종, 장애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 건물, 서비스 등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성일 교수는 “무장애가 기존에 있던 장벽을 없애는 것이라면 보편적 디자인은 처음 설계할 때부터 다양한 이용자를 고려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보편적 디자인과 무장애는 비장애 중심 환경을 평등한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닿아 있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겸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조한진 교수는 “여전히 이동과 접근 등 사회의 많은 부분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며 “무장애와 보편적 디자인은 이러한 비장애인 중심 구조를 깨뜨리려는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이성일 교수는 “장애인들의 이동과 접근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법이 체계화돼야 한다”며 보편적 디자인의 제도화를 강조했다. 조 교수는 “보편적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 조성에 앞서 인식의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교수는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타려면 적어도 1~2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저상버스를 도입하더라도 그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는 비장애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차별과 편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비장애 중심적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장애를 둘러싼 인식의 변화를 견인하려면 제도화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관련 시민단체들은 말한다. 전장연은 “사회기반시설이 마련돼도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면 장애인이 이를 이용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며 “기초 의무교육에서부터 교육을 통한 인식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전했다.

장애 인권을 장애인의 문제로 한정해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일호 연구교수는 “장애 인권 보장은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정보에 접근하고 이동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성일 교수는 “누구든지 나이가 들거나 부상을 당하는 등 권리 보장에 취약해질 수 있다”며 “보편적 디자인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애와 보편적 디자인. 모두가 편리하게 이동하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그 움직임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성별, 장애,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사진 안영채 기자
2021240262@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한승아 기자
seungah_h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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