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어린이집 평가제 개편, 어떻게]
① 어린이집 평가에 ‘아이’와 ‘부모’가 안 보인다
② 등급 가르는 서류 바깥에 ‘교사’의 자리는 없다
③ 보육 패러다임 바꾸려면 “현장으로 돌아가자”

 

최악의 아동학대가 최고의 어린이집에서 발생했다. 지난 2021년 9월 원생 11명을 상습 학대하고 방조한 인천의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 6명과 원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CCTV 조사 결과 2020년 11~12월 사이 드러난 학대 의심 정황은 250여 건. 공분이 커진 건 해당 어린이집이 어린이집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보육 사각지대 놓친 어린이집 평가제

 

‘아동학대를 방치했다’는 비판과 함께 어린이집 평가제의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아동학대로 평가 취소 처분을 받은 어린이집은 총 43곳이다. 이전 평가 결과를 보면 등급제 어린이집 21곳 중 18곳은 A등급을, 점수제 어린이집 22곳은 평균 95.67점이라는 초고득점을 받았다. 공공운수노조 함미영 보육지부장은 “아동학대와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한 어린이집 대부분이 우수 등급으로 평가를 통과한 것만 봐도 평가제의 실효성이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A‧B등급이 평가 결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은 어린이집 평가제를 둘러싼 의구심을 부채질한다. 어린이집 평가 등급은 현장 평가를 거쳐 A‧B‧C‧D로 나뉜다. 올해 3월 말 기준 평가 결과가 확정된 어린이집은 총 1만 3천815개소다. 이중 A등급은 8천788개소(64%), B등급은 3천977개소(29%)로 상위권 등급 비중이 90%를 웃돌았다. 반면 C‧D등급은 각각 707개소(5%), 343개소(2%)에 그쳤다.

평가제 실효성 부족의 원인으로 보여주기식 ‘반짝 관리’가 거론된다. 한국보육진흥원은 현장 평가 6개월‧2개월 전 평가 대상 어린이집을 미리 선정해 통보한다. 보육 환경을 차츰 개선해나가자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를 덮어둔 채 무사히 평가를 넘어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5년간 보육교사로 일해 온 최모(59)씨는 “현행 평가제는 아동학대, 부실 급식 등의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가릴 수 있는 구조”라 말했다. 일회성 현장 평가로는 보육 사각지대를 포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 상습 학대가 발생한 인천 서구 어린이집의 현장평가 보고서. 해당 어린이집은 18개 평가지표 중 17개 지표에서 우수 평가를 받아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
▶▶ 상습 학대가 발생한 인천 서구 어린이집의 현장평가 보고서. 해당 어린이집은 18개 평가지표 중 17개 지표에서 우수 평가를 받아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

 

외부 요인이 평가 등급 결정한다

 

전문가들은 획일화된 평가지표가 개별 어린이집의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어린이집 운영 형태, 시설, 재정 등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어린이집에 일률적으로 평가지표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원대 아동복지학과 서영미 교수는 “획일화된 평가지표로는 어린이집마다 다양한 보육 철학과 아이들의 연령 특성을 살펴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어린이집 평가지표가 공통용, 영아용, 걸음마기 유아용, 유아원아용, 유치원아용으로 나뉘어 아이들의 연령 특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평가 등급에 있어 평가지표 못지않게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지원 시설일수록 미지원 시설에 비해 평가 등급이 높게 나타나는 게 대표적이다. 서 교수가 어린이집 평가 등급을 결정하는 외부 요인을 프로빗 모형(probit model)으로 추정한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집 운영 형태에 따라 평가 등급과 세부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 교수는 “국공립 어린이집인지 민간 어린이집인지에 따라 평가 등급이 달라지는 현상은 평가제를 둘러싼 혼란을 키우는 주된 원인”이라 지적했다.

교사의 경력과 노하우 역시 평가 등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이다. 현장에선 교사의 근속연수가 높고 평가제 경험이 많을수록 높은 평가 등급을 받기에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육교사 최은정(41)씨는 “경력과 노하우가 쌓일수록 평가지표의 변동 사항을 수월하게 파악해 보육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가지표와 무관한 외부 요인에 따라 등급이 결정된다면 평가 결과를 있는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평가 결과를 믿지 못하지만 그에 따른 등급을 받아들여야 하는, 평가제의 딜레마가 여기서 드러난다. 서 교수는 “낮은 등급을 받은 게 개별 어린이집의 책임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한 결과라면 평가에 따른 불이익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며 “보육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 지표와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2022 어린이집 자체점검 보고서’ 일부. 어린이집 평가에서 A‧B등급을 받은 어린이집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보육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자체점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 ‘2022 어린이집 자체점검 보고서’ 일부. 어린이집 평가에서 A‧B등급을 받은 어린이집은 일정 수준 이상의 보육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자체점검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보육 현장 겉도는 ‘평가 이후의 시간’

 

세간의 관심이 평가 결과에만 집중된 사이, 사후 관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지난 2019년 6월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법 위반 등 특정 사유가 발생한 어린이집은 정부의 확인점검을 받아야 한다. 확인점검은 평가 결과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평가 이후에도 보육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11년간 보육교사로 일해 온 최모(51)씨는 ‘사후 관리가 잘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평가 일정이 연기되면서 확인점검도 함께 미뤄졌다”며 “사후지원이 부족하다 보니 평가 당시 지적된 제품 유통기한이나 안전관리 문제를 원에서 즉시 바로잡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답했다.

평가 이후 더 나은 보육을 고민하는 데 소홀했다는 점은 사후방문지원에서도 드러났다. 사후방문지원은 어린이집 평가에서 C‧D등급을 받은 어린이집과 확인점검에서 ‘개선필요’ 영역이 드러난 어린이집에 필요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방문 서비스다. 코로나19 상황으로 2020년 중단된 어린이집 사후방문지원은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태다.

어린이집 자체점검 결과에도 한계가 보였다. 자체점검은 어린이집 평가에서 A‧B등급을 받은 어린이집에 매년 자체점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사후 관리 절차다. 원장, 보육교사, 영유아 부모를 각각 한 명 이상 포함한 자체점검위원회가 어린이집 운영 전반을 점검한다. 최모(51)씨는 “교구장 배치가 미흡하거나 비상약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원장에게 의견을 전달할 순 있으나 점검 내용이 자체점검보고서에 곧이곧대로 반영되진 않는다”며 “아동학대와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안일한 자체점검 문화가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가 이후의 시간’이 보육 현장을 겉돌고 있다. 평가 결과가 현장으로 흘러야 평가 이후를 생각하는 보육의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연성대 아동보육과 유주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가 결과를 현장으로 환류(feedback)해야 합니다. 어린이집 행위자들이 책임을 갖고 보육에 임하는 동시에 평가 결과를 질 좋은 보육에 활용하려면 이제는 평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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