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참여하면 어린이집이 달라진다 

[어린이집 평가제 개편, 어떻게]
① 어린이집 평가에 ‘아이’와 ‘부모’가 안 보인다
② 등급 가르는 서류 바깥에 ‘교사’의 자리는 없다
③ 보육 패러다임 바꾸려면 “현장으로 돌아가자”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이수정(41)씨는 세 살 딸을 두고 있다. 개학 시즌을 앞두고 동네 맘카페와 지인들로부터 알음알음 어린이집을 소개받았다. 이씨는 여러 조건을 하나하나 따져봤다. 담임교사가 돌봄과 행정 업무를 겸하고 있진 않은지, 식재료는 어떻게 공수하는지, 아이들 놀이 활동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어린이집 형태가 국공립인지 민간인지 등을 원장과의 상담을 통해 확인했다. 이씨는 “보육 환경과 보육 철학이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까지 많은 영유아 부모들이 신중하게 움직인다. 국내 최대 육아 정보 커뮤니티 ‘맘스홀릭베이비’에는 개학을 앞두고 ‘워킹맘들 어린이집 어떻게 고르시나요’, ‘0세반 어린이집 어디가 좋을까요’ 같은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등원 후에도 부모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네 살 딸을 둔 이한나(40)씨는 “아이가 가정과 원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르진 않을지, 원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탓에 혹여나 눈칫밥을 먹거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진 않을지 늘 걱정이다”고 밝혔다.

영유아 부모의 관심과 걱정은 ‘보육의 질’ 문제로 귀결된다. 아이에게 행복한 보육 환경이 조성돼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정부는 기존의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개편해 부모들의 불안과 근심을 덜고자 했다. 그 결과 지난 2019년 6월 어린이집 평가제가 시행됐다. 모든 어린이집의 보육 과정을 점검해 보육의 질을 개선한다는 게 골자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평가제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거나, 믿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씨는 “부모들이 어린이집 평가 등급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서류 작업과 행정 업무 처리에 능숙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높은 등급이 부여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어린이집 평가가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 이유다.

 

▶▶ 지난 2019년 6월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어린이집 평가인증제가 의무제로 바뀌었다.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은 4개 영역, 18개 지표, 59개 항목에 대한 평가를 거쳐 A‧B‧C‧D 등급으로 구분된다. 보건복지부 제공
▶▶ 지난 2019년 6월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어린이집 평가인증제가 의무제로 바뀌었다.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은 4개 영역, 18개 지표, 59개 항목에 대한 평가를 거쳐 A‧B‧C‧D 등급으로 구분된다. 보건복지부 제공

 

현장 평가, 아동 빠뜨리기 십상

 

어린이집 평가제는 정부가 어린이집을 관리하는 유일한 공적 제도다. 모든 어린이집은 주기적으로 정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지난 2019년 6월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인증제가 의무제로 바뀐 결과다. 이는 2005년 어린이집 평가인증제가 실시된 지 14년 만의 변화다.

평가는 4개 영역, 18개 지표, 59개 항목에 대해 이뤄진다. 기본사항 확인 및 자체 점검, 현장 평가, 종합 평가의 3단계를 거쳐 개별 어린이집에 A‧B‧C‧D 등급이 부여된다. A‧B 등급은 3년, C‧D 등급은 2년 주기로 재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현장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다. 반나절에 그치는 일회성 평가만으로 어린이집 일과를 자세히 살펴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현행 평가제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육진흥원이 일주일의 평가 주간을 지정해 어린이집에 미리 통보하면, 관찰자가 그중 하루 어린이집을 찾아가 평가하는 방식이다. 어느 반을 평가할지, 어느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관찰할지가 모두 무작위로 정해진다. 5년간 보육교사로 일해 온 최모(59)씨는 “어느 아이와 평가를 치르게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단 감점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의 부모에게 평가 당일 결석을 부탁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평가 항목의 허점도 보였다. ‘2022 어린이집 평가 매뉴얼’에 따르면 평정 기준으로 영유아에 대한 ‘위협, 비난, 조롱 등 부정적 언어’를 들고 있다. 미리 통보받은 주간에 맞춰 현장 평가를 대비하는 어린이집에서 사실상 발생하기 어려운 행위다.

‘만 3세 이하 영유아의 낮잠 시간’을 계획하라는 항목이 아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모(22)씨는 “해당 항목이 아이들에게 낮잠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며 “현장을 고려한다면 아이의 필요에 따라 휴식 시간을 유동적으로 운영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려다 정작 ‘아이’를 빠뜨리기 쉬운 상황이다. 부모들은 영유아의 권리와 이익을 우선시하지 못하는 평가제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여섯 살 아들을 둔 김화선(40)씨는 “평가 등급이 높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본다”며 “평가 기간 동안 어린이집은 높은 등급을 받는 게 중요할 뿐, 평가제로 보육 질이 꾸준히 관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 말했다.

 

▶▶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어린이집 부모 모니터링단은 지난 2013년 운영을 시작했다. 보육 제공자인 어린이집과 이용자인 부모 간 소통을 통해 질 좋은 보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건복지부 제공
▶▶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어린이집 부모 모니터링단은 지난 2013년 운영을 시작했다. 보육 제공자인 어린이집과 이용자인 부모 간 소통을 통해 질 좋은 보육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보건복지부 제공

 

평가 주체, 국가에서 부모로

 

평가제에 대한 불신은 ‘평가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네 살 아이를 둔 워킹맘 박은경(43)씨는 이렇게 말했다. “주변 엄마들을 보면 평가제에 큰 관심이 없어요. 누구를 위한 평가제인지 묻고 싶어요. 어린이집 이용자인 부모와의 연계성을 높인다면 훨씬 질 좋은 보육이 될 텐데 말이죠.”

그간 정부 주도 평가를 통해 최소한의 보육 수준에 대한 공감대가 만들어졌다면, 이제는 이용자 관점을 담은 구체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성서대 영유아보육학과 강정원 교수는 “영유아 부모가 주체적으로 보육 질 개선에 참여할 수 있게끔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평가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 이용자 만족도를 평가 필수 항목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린이집 이용자 만족도는 보건복지부 정책 평가의 법정 지표다. 그럼에도 현재 만족도 조사는 정부가 부모와 소통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만 활용되고 있다.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인 셈이다. 호원대 아동복지학과 서영미 교수는 “어린이집 평가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어린이집과 그 이용자여야 한다”며 “보육 서비스의 목적이 결국 이용자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는 것인 만큼 이용자 시각이 적극 반영된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모들은 어린이집과 부모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 모니터링단을 상시 운영하고,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하는 어린이집 운영위원회를 원마다 두는 등 부모‧교사‧사회가 모두 참여하는 보육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다. 어린이집 운영위원 경험이 있는 이씨는 “아무리 좋은 보육 프로그램이 설계되고 운영되더라도 제공자의 시선과 이용자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보육의 질과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평가 전후로 부모의 참여를 보다 상시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용자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열린어린이집’ 지정을 확대하자는 제안도 있다. 열린어린이집은 보육 프로그램, 공간 및 운영에 있어 부모의 참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어린이집 운영 형태를 말한다. 이용자 중심 보육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셈이다. ‘2022 열린어린이집 선정 및 운영계획’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열린어린이집은 전체 어린이집의 30.1%를 차지했다. 서 교수는 “부모가 어린이집과 협력해 지역 사회에 보육 정책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정부 주도 방식에서 벗어나 이용자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라 평가했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자료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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