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가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이유

[어린이집 평가제 개편, 어떻게]
① 어린이집 평가에 ‘아이’와 ‘부모’가 안 보인다
② 등급 가르는 서류 바깥에 ‘교사’의 자리는 없다
③ 보육 패러다임 바꾸려면 “현장으로 돌아가자”

 

▶▶ 서울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교구를 가지고 놀고 있다. 배선영 제공
▶▶ 서울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교구를 가지고 놀고 있다. 배선영 제공

 

배선영(23)씨는 서울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2년째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비교적 짧은 경력에도 보육교사의 전문성이 중요함을 일찍이 깨달았다. 부모보다 더 오래, 더 가까이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배씨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영유아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육교사는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는 동시에 머리로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배씨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아동학대 예방 연수를 다녀오고, 현장 실무를 익히는 등 경험 쌓기를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보육교사는 ‘내 아이의 첫 선생님’이자 보육의 핵심축을 담당한다. 한마디로 ‘돌봄 전문가’다. 아이의 문제 행동을 세심하게 체크해 부모와 긴밀히 소통해야 하며, 월령별로 발달 행동이 달라지는 아이들을 위한 개인별‧맞춤형 보육을 제공해야 한다. 대구의 한 가정 어린이집에서 10년간 보육교사로 일해 온 윤근영(41)씨는 “보육교사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는 만큼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하기 힘든 직업”이라 말했다.

그런 보육교사들이 ‘어린이집에서 손을 떼고 싶다’고 입을 모을 때가 있다. 바로 어린이집 평가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지난 2019년 6월 어린이집 평가가 인증제에서 의무제로 전환된 이후 전국의 모든 어린이집은 한국보육진흥원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아동 학대와 부실 급식 문제가 반복되자 정부가 내놓은 고육책이다.

평가 취지만 놓고 보면 보육교사와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지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어린이집 평가가 정작 ‘보육’이 아닌 ‘평가’를 충족하는 용도로 교사들의 노동 강도를 높인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 ‘2022 어린이집 평가 매뉴얼’에 따른 평가지표 구성. 어린이집 평가지표는 4개 영역, 18개 지표, 59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 ‘2022 어린이집 평가 매뉴얼’에 따른 평가지표 구성. 어린이집 평가지표는 4개 영역, 18개 지표, 59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아이’ 대신 ‘서류’ 도맡는 보육교사

 

‘2022 어린이집 평가 매뉴얼’에 따르면 어린이집 평가지표는 4개 영역, 18개 지표, 59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항목마다 세부적인 평가 기준이 다르고, 평가 내용이 매년 조금씩 수정되는 까닭에 대다수 어린이집은 평가 대상으로 선정되고 나면 신속한 재정비에 들어간다. 일지를 작성하고, 보육 환경을 점검하고, 아이들과의 수업 계획을 세우는 데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 넘는 기간이 걸린다.

현장에선 아동을 관찰하는 것보다 서류 업무 같은 형식적인 측면에 ‘평가의 시간’이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보육교사 김금선(39)씨는 지난 2021년 5월 어린이집 평가를 마쳤다. 평가 5개월 전부터 서류 준비에 공을 들였다. 일간, 주간, 월간, 연간으로 세분화한 일지와 보육계획안을 평가 형식에 맞춰 작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씨는 “영유아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평가는 짧은 관찰로 끝나는 반면 무수히 많은 서류와 문서 기록을 평가하는 비중이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평가를 위한 평가’를 준비할 때 보육교사의 부담은 커진다. 영유아반 교사 윤씨는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서야 평가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복되는 서류가 많은 탓에 평가 준비는 야근으로, 퇴근 이후 주말로 이어진다. 높은 평가 등급을 받기 위해 다른 어린이집의 ‘모범 서류’ 양식을 베끼기도 한다.

서류에 대한 압박은 아이들을 대하는 일관성을 무너뜨린다. 학기 초부터 6개월가량 연장 근무가 지속되면서 윤씨에게는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쌓였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반응이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윤씨는 “평가를 준비하는 기간은 아동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며 “어린이집의 많은 부분을 문서 제출로만 관리해서는 평가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내년도 개편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여전히 어린이집 평가제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보육교사 배씨는 “주변에 평가 기간을 피해서 취업하거나 이미 평가가 끝난 곳으로 이직하는 교사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 2021년 평가를 마친 김씨는 주변의 만류에도 보육교사 일을 그만뒀다. A등급으로 평가를 통과해 추가 수당이 지급되는데도 평가제에 “학을 뗐다”고 할 정도로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 평가 영역 ‘보육교직원의 전문성 제고’에 해당하는 3개의 평가 항목. 질 좋은 보육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척도 중 하나로 보육교사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제공
▶▶ 평가 영역 ‘보육교직원의 전문성 제고’에 해당하는 3개의 평가 항목. 질 좋은 보육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척도 중 하나로 보육교사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제공

 

 

평가제 빈틈 채우는 건 교사의 몫

 

평가 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18개 평가지표 중 하나로 ‘보육교직원의 전문성 제고’가 있다. 이는 직무 교육, 자체 관찰, 근무 평가 실시 여부 등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질 좋은 보육을 측정하는 객관적인 척도 중 하나로 보육교사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보육교사의 전문성을 뒷받침하는 ‘조직 문화’가 현행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뤄진다는 지적이 있다. 어린이집 내 조직 문화가 개방적이고 수평적일수록 보육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공간은 더 넓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호원대 아동복지학과 서영미 교수는 “평가 당일엔 보육교사가 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언행을 삼가는 등 평소와 다른 근무 환경과 조직 문화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정확한 평정이 이뤄지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라 짚었다.

보육 현장에선 평가자마다 지표를 해석하는 방식이 모호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3년 가까이 보육교사로 일해 온 최은정(41)씨는 “평가의 채점 기준과 방향이 제시돼 있긴 하지만 평가자마다 세부적으로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다”며 “평가자에 따라 평가 결과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교사들은 과중한 부담을 안고 평가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충분한 평가지표와 다소 포괄적인 평가 방식의 빈틈을 채우는 건 여전히 교사의 몫이자 부담으로 남아 있다.

현행 평가지표가 보육교사의 근무 환경과 임금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2022년 보육교직원 인건비 지급기준’에 따른 보육교사 1호봉 월지급액은 201만 8천400원이다. 2022년 최저임금(9천160원)을 적용한 월급 191만 4천440원을 살짝 웃돈다. 대구에서 11년간 보육교사로 일해 온 최모(51)씨는 “휴게시간, 급여 등 근무 조건이 평가지표에 반영돼 있긴 하나,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는 날은 드물고 급여는 11년간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답답함을 내비쳤다.

 

▶▶ ‘2022년 보육교직원 인건비 지급기준’ 일부. 보육교사 1호봉 월지급액은 201만 8천400원이다. 2021년 최저임금을 적용한 월급 191만 4천440원을 살짝 웃돈다. 보건복지부 제공
▶▶ ‘2022년 보육교직원 인건비 지급기준’ 일부. 보육교사 1호봉 월지급액은 201만 8천400원이다. 2021년 최저임금을 적용한 월급 191만 4천440원을 살짝 웃돈다. 보건복지부 제공

 

평가제, 하향식 아닌 상향식으로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이건 보육의 핵심 명제다. 교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들을 잘 돌보고 보호할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가 발표한 ‘2020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5%는 ‘보육교사의 스트레스’가 ‘아이 돌봄의 질’에 악영향을 준다고 응답했다. 김씨는 “어린이집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교사의 보육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동반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타율적이고 국가 주도적인 어린이집 평가를 자율적이고 상시적인 체제로 개편하기 위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을 논의한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연성대 아동보육과 유주연 교수는 “평가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어린이집 교사들의 자율권을 보장해 이들이 의지를 갖고 좋은 보육을 만들어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무 평가’보다 ‘자체 평가’를 지원하는 쪽으로 평가국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평가 일정을 통보하고 등급을 매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교사의 자체 평가 결과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는 평가가 평가로만 끝나지 않게끔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받기 위함이다. 유 교수는 “교사들이 보육 질을 강화하는 데 자발적으로 나서게 하려면 정부에서 먼저 어린이집과 교사에 대한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김예서 기자
kimyeseo1@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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