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배경 청년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몽골 출신 벗드갈(29)씨는 지난 2019년 졸업 논문으로 고민이 많았다. ‘이주 배경 청년에게 필요한 다문화 정책’을 주제로 정했지만 관련 자료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결혼 이주 여성, 이주 배경 아동·청소년 관련 논문, 정책 제안 및 실천과는 대조적이었다. 선행 연구는 차치하고 실태조사, 통계조차 없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벗드갈씨는 이주 배경 청년 10명을 대상으로 어떤 정책 및 지원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더 많은 이주 배경 청년을 대상으로 한 양적 연구는 아직도 과제로 남아있다.

이렇듯 이주 배경 청년과 관련된 논의는 백지상태에 가깝다. 이주 배경 청년이기에 지닌 특수한 욕구와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곳이 없으며, 기반이 될 실태조사도 없다. 숨어있던 이주 배경 청년을 가시화하는 단계부터 다문화 사회를 위한 정책 제안까지, 긴 논의의 여정이 이제는 시작돼야 한다. 

 

이주 배경 청년 지원, 밑그림부터 제대로 그려야

 

이주 배경 청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려면 가족 중심으로 다뤄진 기존 다문화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김규찬 교수는 “다문화 가족이 유입되던 초기에는 당장의 적응과 초기 이주 지원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다문화 정책은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김 교수는 “다문화 정책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혜적인 정책을 넘어 이들의 사회통합과 자립을 살펴야 할 단계”라며 “이주 배경 청년이 이주 배경을 가졌기에 겪는 자립, 사회 진출, 역량 강화 영역에서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다문화 정책이 지금처럼 아동·청소년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다문화 사회에 발맞춰 정치가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치가 변하면 이주 배경 청년에게 정책적으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고, 다양한 다문화 정책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정회옥 교수가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이 많이 거주하는 안산시 단원구, 서울시 영등포구 등 20개 지역의 18~20대 총선 공약을 분석한 결과 다문화 관련 공약의 질적 측면은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다문화 가정 또는 자녀를 대상으로 한 공약이 주를 이뤘으며, 무료 건강검진 사업, 교육 지원과 같은 초기 정착에 도움을 주는 정책이 제시됐다. 이를 연구한 정 교수는 “현재의 다문화 공약들은 이주 배경 청년 등 다문화 집단 내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하며 일방향의 시혜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며 “정치권이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위해 정치과정에서 다문화 요소를 더 강하게 반영해야 한다”며 “정당이 다문화 배경을 지닌 사람을 공천했을 때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방안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 배경 청년에 대한 실태조사 또한 급선무다.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이주 배경 청년의 특수한 어려움을 가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발표된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경기도 이주배경청년 생활경험 및 정착방안」(아래 경기도 이주 배경 청년 연구)에서도 이주 배경 청년 관련 정기적인 실태조사와 통계 지표 개발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이를 위해 연구에서는 ‘현행 「다문화가족지원법」 및 이주 배경 청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법정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25세 이상의 이주민에 대한 명칭의 통일, 관련 부처들의 합의하에 통계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주 배경 청년을 논의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다양성 또한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 이주 배경 청년에게 ‘이주 배경’이라는 공통된 특성뿐 아니라 각기 다른 배경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기도 이주 배경 청년 연구에 따르면 이주 배경 청년 중 국내 출생 청년은 아동·청소년기의 부정적 경험으로 인해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외국 출생 청년은 일할 의지가 없는 무직자인 니트(NEET)가 될 가능성이 크기에 이를 고려한 정책적 개입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이주 배경 청년에 대한 전반적 지원과 더불어 집단 내 다양성을 고려한 촘촘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 배경’ 고려한 촘촘한 정책 필요해

 

올바른 정책적 지원을 위해서는 ‘이주 배경’으로 인한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주 배경 청년들의 정체성 찾기가 우선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은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청년기 사회 적응과 진로 확립에 문제가 생기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서적 문제가 한국 사회 정착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네트워크는 이주 배경 청년이 사회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통로로, 이주 배경 청년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다. 자기 탐색으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회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네트워크는 정체성 혼란을 해결할 뿐 아니라 이주 배경 청년의 역량을 강화하고, 정보 소외를 해결할 수도 있다. 이주 배경 청년들은 정보 소외를 가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다문화청년네트워크(아래 다청넷) 김지민 대표는 “외국인 엄마 밑에서 자란 청년과 한국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접근할 수 있는 교육 정보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주 배경 청년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과 정책적 혜택과 정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만들면 사회 발전과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네트워크가 취업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다청넷은 이주 배경 청년이 취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 학교를 운영 중이다. 

낮은 공교육 접근성을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특히 청소년기 격차를 줄이기 위해 대학 진학 전 진로·진학 교육의 확대가 필요하다. 벗드갈씨는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상담소 운영 등 진로 교육 확대 및 질적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 노동 시장 진입 전 대학을 거치는 만큼 청소년기부터 대학 진학에 실패하지 않도록 진학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며 “고등학교 졸업까지 학습 결손이 없도록 진로 탐색과 관리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대학의 역할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도 이주 배경 청년들의 진로, 사회 진출, 통합 등에 대해 상담 받고 접촉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취업 등 전반적인 생애를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에 생애주기별 맞춤형 교육이 제시됐다. 김지민 대표는 ‘한국판 뉴딜 제4차 대한민국 집현포럼’에서 ‘맞춤형 교육을 통해 성장하다 보면 성인이 돼 학교 밖 울타리를 벗어나더라도 자신의 역할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일환에서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지난 2020년 발간된 한국교육개발원 「다문화배경 청년의 평생교육 실태 및 지원방안」에서는 ▲다문화배경 학습자 특화 입학 및 학사 상담체제 개선 ▲학문 목적 한국어교육 지원 강화 ▲고등교육 수학능력 향상을 위한 기초교육 지원체계 수립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고용‧취업 등은 공통적인 생애 주기상의 과제”라며 “이주 배경을 가진 인구에게 긴 생애 주기적 관점에서의 통합, 사회에의 안착, 성공 기회와 모델을 보여준다면 다음 다문화 세대들도 다문화 사회로서의 한국에서 가능성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 배경’ 청년에서 이주 배경 ‘청년’으로

 

그러나 이주 배경 청년들에게 특화된 정책적 지원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이주 배경’ 청년이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소수자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문화 시대에 발맞춰 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상상공작소 송샘 대표는 “이런 정책들은 이들이 이주 배경 청년임을 입증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이들을 이주 배경이라는 틀에 가둔다”며 “다문화 가정이나 다문화 청년이라는 범주 아래 예산을 배정해 무조건 지원하는 건 차별적이고 비효과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주 배경 청년을 ‘청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주 배경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지원 위주의 정책 외에도 이들을 청년의 일부로 포함해 청년 정책의 일환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청년대학 김정윤 대표는 “이주 배경 청년만을 위한 정책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역차별이라거나 소수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반발이 생길 수 있다”며 “청년 정책 대상을 넓혀 이주 배경 청년이 참여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부분 중 결핍된 것이 있다면 이를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 대표는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 확보, 필수적 생존 능력 등을 갖추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이라는 범주 내의 문화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주 배경 청년들이 우리 사회 청년 구성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첫 출발이다. 김정윤 대표는 “문화다양성은 세계화 시대 속 이주민 늘어나는 시기에 꼭 필요하다”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얘기했다.

의식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실제 청년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이주 배경 청년 의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청년들이 직접 정책을 제언하는 시민참여기구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도 현재 이주 배경 청년 관련 의제는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정책 설계 과정에서 다문화라는 요소를 의식적으로 고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송 대표는 아산재단에서 운영하는 ‘아산상회’ 프로그램을 하나의 예시로 소개했다. 아산상회는 북한이탈주민 청년, 외국인 등 다양한 청년들을 포함해 모집하도록 기획 및 홍보되고 있다.

이때 강조되는 요소가 바로 당사자의 정치 참여다. 김정윤 대표는 “청년 정책은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복지 정책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며 “다양한 문화 배경 가진 청년들이 청년 정책 결정 과정에 들어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더욱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정책은 다른 정책들과 달리 당사자의 참여가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주 배경 청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확대돼야 한다. 한국다문화센터 김성회 대표는 “편견과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는 건 접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생애,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주 배경 청년들과의 접점이 많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청넷이 지난 2020년 고양시 청년 공간 ‘청취다방’과 함께 운영한 1:1 언어 교류 프로그램이 그 예다. 송 대표는 “사적 모임이나 문화, 스포츠 등 특정 분야에서의 교류뿐만 아니라 창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방면에서 이주 배경 청년들과 만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더 많이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교류를 통해 차별적인 시선이 완화될 때 당사자들이 주체로서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달리 다문화 2세대, 중도입국 자녀처럼 다양한 이주 배경 청년들과 함께 살아간다. 이들이 겪는 문제는 유년, 청소년기뿐 아니라 청년이 될 때까지 이어지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회적 인식과 정책 탓에 청년이 된 이들은 사회에서 도외시된다. 이주 배경 청년의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활발히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글 이연수 기자
hamtory@yonsei.ac.kr
김민정 기자
bodo_elsa@yonsei.ac.kr
안태우 기자
bodo_pap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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