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이들은 희미해지는가

 

“그냥 누가 와서 힘드냐고 물어봐 줬으면 해요”

 

캄보디아에서 온 소다빈(22)씨가 인터뷰 말미에 내뱉은 말이다. 이주 배경 청년의 삶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들이 청소년기부터 겪은 소외는 청년기의 삶까지 일그러뜨렸다. 

 

▶▶이주 배경 청년은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적절한 지원을 위해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차례다.
▶▶이주 배경 청년은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적절한 지원을 위해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차례다.

 

납작한 논의 속 이주 배경 청년
그들을 호명해야 할 때

 

이주 배경 청년이 온다. 그간 ‘다문화’란 이름으로 호명되던 이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다문화 배경 청년의 평생교육 실태 및 지원방안」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 결혼이민자 러시(rush) 기간에 혼인한 부모 세대가 일종의 다문화 자녀 베이비붐을 형성했는데, 이 시기에 태어난 다문화 2세대가 성장하면서 최근 초기 성인기에 해당하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점차 실체로 다가오는 이들은 정부 통계나 실태조사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현재 다문화가족에 대한 실태조사는 「다문화가족지원법」(아래 가족지원법) 제4조에 따라 3년마다 실시된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의 교육 현황 및 다문화 가족 자체에 집중할 뿐 이주 배경 청년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족지원법은 아동과 청소년을 24세 이하로 규정해 25세 이상 청년은 배제된다. 몽골 출신 벗드갈(29)씨는 “이주 배경 청년을 위한 정책 지원이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흔적이 사회에서 지워진 배경엔 도구적인 결혼이민 정책이 있다. 애당초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이민을 장려했다. 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홍석준 교수는 “지난 20세기 말부터 국가는 농촌 총각의 미혼 문제와 세계화의 흐름이 맞물리자 외국인 여성을 찾기 시작했다”며 “국제결혼 문제에서 당사자들은 사람이 아닌 국익을 위한 객체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편협한 다문화 정책은 줄곧 가족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제호 변호사는 “가족지원법은 이주 배경으로 이뤄진 가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닌, 외국인 배우자와 한국인 배우자로 이뤄진 가족만으로 한정한다”며 “정책은 그 외의 이주 배경 가정을 담지 못했다”고 말했다. 홍 교수 역시 ”대상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다문화 담론은 차별을 양산했다“고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다문화 가정에 포괄되지 못한 청년들의 이야기는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청년 담론도 이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은 “청년기는 원가족과의 주거가 분리되며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는 ‘이행기’를 의미한다”며 “같은 시기에 놓인 청년일지라도 상이한 배경으로 인해 다른 생애주기를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주 배경 청년을 위한 담론이 청년 정책 안에 없기에 소외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주 배경’과 ‘청년’ 사이에서 사각지대가 생긴다. 이 변호사는 “국적과 체류 자격에 따라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이들은 한국 국적이지만 다문화 가정이라는 차별에 대한 삶의 맥락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주 배경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청년이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배제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 배경에서 비롯된 어려움은 청년기의 문제로 번진다. 고양시다문화청년네트워크 김지민 대표는 ‘한국판 뉴딜 제4차 대한민국 집현포럼’에서 “다문화와 우리나라 문화 사이에서 경계선을 교차하는 정체성 혼란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크리스티나(22)씨는 “인생의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았기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고 말했다. 소씨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학교 대신 공장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노동시장의 저층을 형성했다”고 전했다. 

 

불안정한 가정, 언어의 장벽
문제는 ‘배경’부터

 

이주 배경 청년은 각기 다른 배경의 구성원을 한꺼번에 호명하는 개념이다.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 따르면 이주 배경 청소년은 ‘중도 입국 청소년’과 국제결혼 가정 혹은 외국인 가정의 국내 출생 청소년인 ‘다문화 청소년’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중도 입국 청소년 또한 재혼해 전혼 자녀를 데려온 경우, 이민자 자녀, 북한 이탈 주민 자녀 등으로 다시 구분된다. 이 변호사는 “달라진 법적 지위를 청년기에야 체감할 수 있기에 해당 개념은 청년기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주 배경 ‘청소년’이 성장해 이주 배경 ‘청년’이 된다. 이주 배경 청년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의 청소년기를 살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진희 연구위원이 공동 연구한 「다문화 배경 청년의 학습 생활과 교육 요구에 대한 질적 분석」에서는 ‘다문화 청소년은 성인이 되는 순간 아무런 보호막 없이 사회로 내몰리며, 청소년기부터 누적된 문제가 겹쳐 심화하는 상황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이주 배경 청년의 어려움을 파고들기에 앞서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이어지는 소외와 배제의 맥락을 조명해야 하는 이유다. 

이주 배경 청년들은 청소년기 가정환경이 비(非)다문화가정에 비해 불안정하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소씨는 “학생 때 친구들은 대부분 아빠와 친하지 않았다”며 “그 피해는 자식들에게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도 입국 청소년은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진 상태에서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며 “국내 출생의 경우 성장기에 차별을 겪는 사연이 많다”고 말했다. 

불안정한 가정환경은 이주 배경 청년의 감정까지 옭아맨다. 고양시다문화대안학교 김세영 대표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경우 비다문화청소년에 비해 스트레스도 높고 우울증 증상도 많이 나타난다”며 “정서적인 문제로 진로를 고민할 시간 자체가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장기의 문제가 청년기까지 번지는 셈이다. 

‘언어’ 또한 가정과 함께 상이한 배경을 구성하는 요소다. 언어 능력의 부족은 곧 삶 전반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후기 청소년기 중도 입국 청소년의 자립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에서는 ‘언어는 사회 적응의 시작이자 기본’이라며 ‘중도 입국 청소년의 학업 부적응, 탈학교, 취업의 어려움 등은 대부분 한국어 능력 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김세영 대표는 “이주 배경 청소년이 공교육에 진입하거나 대입을 준비할 때 ‘한국어’가 하나의 큰 장벽”이라며 “이로 인해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공교육의 사각지대,
‘이주 배경’이 장벽이 되는 현장 

 

▶▶고양시 다문화대안학교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공교육의 장벽은 높다.
▶▶고양시 다문화대안학교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공교육의 장벽은 높다.

 

이질적인 배경으로 인한 어려움은 공교육 현장에서 가시화된다. 전문가들은 공교육에서의 소외가 사회적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8 다문화가족실태조사」(아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자녀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49.6%로, 전체 고등교육 취학률보다 18% 정도 낮다. 김 연구위원은 “다문화 청년의 경우 대학 진학을 통해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한 ‘참조 체제’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교육에서의 배제가 사회적 격차를 유발하고, 이것이 다시 소외 문제를 공고히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공교육의 장벽은 높다. 특히 중도 입국 청소년은 공교육 진입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에 직면한다. 이들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일반 학교로의 입학·전학을 신청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학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김세영 대표는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비교적 진입이 쉽지만, 고등학교는 온전히 학교장 재량에 좌우된다”며 “제 나이에 입학하지 못하면 나이가 맞지 않는 학생들과 공부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중도입국 청소년 실태 및 자립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중도 입국 청소년이 6개월 이내에 정규학교 입학에 성공한 비율은 50% 남짓이다. 

공교육 진입 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이주 배경 청소년들은 이질적인 배경으로 인해 대인관계 형성, 학업 등에서 난관에 직면한다. 실제로 실태조사에서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업 중단 사유를 조사한 결과, ‘친구·선생님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응답이 23.4%를 차지했다. 외국에서 주로 성장한 청소년의 경우 ‘학교 공부가 어려워서’, ‘학교생활, 문화가 달라서’ 학업을 중단했다는 응답이 각각 27.5%, 26.4%에 달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주 배경 청소년들은 언어 문제로 인해 열패감을 느끼는 등 공교육에서의 소외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한국말을 잘 읽지 못해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다문화’라고 무시 받던 기억이 군대에서까지 이어진 청년도 있었다”며 교실에서의 차별과 낙인이 갖는 영향력을 강조했다. 

공교육의 울타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의 다양한 욕구를 포괄하지 못한다. 우즈베키스탄 이주여성 나르기자(45)씨는 자녀의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중학교 진로 상담에서 아이가 희망하던 특성화고와는 너무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며 “외국인이기에 보통의 한국인 학생들과 다른 방향으로 진학할 수 있는데도 이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고 전했다. 벗드갈씨 또한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한 대입 특별 전형을 잘 아는 선생님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주 배경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이 부족한 탓에 이주 배경 청소년의 어려움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주 배경’과 ‘청년’, 노동에서 맞물려
이주 배경 청년 옥죄는 사회적 환경

 

이주 배경과 청년이라는 두 정체성은 노동시장의 이중고로 이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 연구위원은 “결혼이민자의 범주를 벗어나 다양한 특성을 지닌 이주 배경 청년이 있음에도 이들이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지원 프로그램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주 배경 청년이 노동시장에서 갖는 지위는 성장 배경과 교육 과정을 비롯해 사회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덧붙였다.

이주 배경 청년은 구직 과정에서 ‘이주 배경’으로 인한 제약을 겪는다. 한신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쭈 티 레튀(25)씨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과정에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 자체를 거부당한 적이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외국인’일 뿐이었다.

이주 배경 청년은 여타 청년들처럼 취업·실업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때 이주 배경 청년이 겪는 어려움은 ‘청년’이라는 정체성이 작동한 결과다. 쭈 티 레튀씨는 “전공을 살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며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대학에서 제공하는 이력서 상담을 받은 적은 있으나 대학 밖에서 취업 관련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찾아오는 이들에게만 노동 정책이 가닿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청년 니트(NEET)*가 심각하다”며 “이주 배경 청년은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고 구직을 위한 네트워크가 부족하다 보니 이러한 니트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주 배경 청년의 노동 경험이 열악하고 불안정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송원대 유아교육과 윤형준 교수는 「다문화 2세대의 성인 초기 발달과업 수행에 대한 지원정책의 발전방향」에서 ‘이들(이주 배경 청년)의 직업을 살펴보면 서비스 종사자, 장치와 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단순 노무 종사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반면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에서 세 배 가까이 낮은 비율을 보였다’며 ‘경제활동에 따른 근로시간, 근로환경, 소득수준 등 다문화 2세대의 경제활동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 설명했다. 김지민 대표는 “청년 정책의 혜택이 청년에게 골고루 전달되고 있지만, 이주 배경 청년들은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로 청년 정책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청년기의 어려움은 청년 이후를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쭈 티 레튀씨는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최근 본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가고자 마음을 바꿨다. 그는 “한국에서는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고민이나 어려움을 나누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씨는 “한국에 중도입국자녀가 어디에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이주 배경을 가진 청년들에게 잘 지내고 있는지, 힘든 건 없는지 주변에서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주 배경 청년은 ‘이주 배경’과 ‘청년’ 사이에 놓였다. 가정 배경과 공교육을 거쳐 드러난 이주 배경 청년의 사각지대는 성인기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이주 배경 청년에게 다양한 공적 지원이 이뤄지려면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성인이자 사회의 일원이 된 이주 배경 청년의 삶을 둘러싼 논의의 장은 열리고 있다. 이제 이 장을 현실과 엮어보자.

 

*니트(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고 교육, 고용, 훈련 등을 모두 거부(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하는 청년을 가리키는 말

 

글 김서하 기자
seoha0313@yonsei.ac.kr
박경민 기자
lightmiin@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 김다영 기자
dy3835@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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