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차별금지법, 논의의 출발선에서

우리 사회가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차별이 낳는 고통 뒤에는 지체된 논의가 자리한다.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우리신문사에서 지난 2~8일 우리대학교 학부생 5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세인, 차별을 묻다설문조사(아래 설문조사)를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
연세로 뻗다

 

우리 사회에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지난 20204월 실시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2.0%가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우리대학교 학생들도 차별을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32%는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87.83%는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차별은 반헌법적이며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라며 최근 들어 차별과 혐오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차별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차이, 차별, 처벌의 저자 이민규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는 여러 영역에 걸쳐 차별이 존재한다서열주의와 집단주의 문화가 그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의 서열을 세밀하게 구분해 혐오와 차별을 일상화하거나, ‘단일민족주의라는 허상이 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배척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장혜원 의원이 지난 2020629일 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올해 616일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은 차별 사유를 각각 23가지, 21가지로 규정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 신분, 문화, 신체순으로 각각에 따른 차별을 경험했다. 이들은 차별적인 상황을 마주하기도, 차별의 수혜를 입기도 한다. 우리대학교 재학생 A씨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은연중에 들어왔다여성주의를 향한 부정적 시선으로 차별을 겪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재학생 최씨는 군 복무 당시 간부들이 이따금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동기를 무시하고 차별했다이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동기보다는 후임에게 일을 맡겼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재학생 B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때 연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편한 부서에 배정됐다정작 들어가 보니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부서였기에 동료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모든 차별 사유가 수치화되기는 어렵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차별이 어느 영역에서 심각한지 명확하게 수치화하기는 힘들다여론조사 혹은 차별 진정 건수만으로 차별을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정이 많이 제기되는 것은 해결 기관에 대한 신뢰와 해결 의지가 있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며 진정도 제기되지 못하는 취약한 분야가 있다고 말했다.

 

경험에서 비롯된 인식
차별에 대한 합의는 아직?

 

차별은 왜 발생할까. 범주화를 통해 우리를 구분 짓는 것에서 차별은 시작된다. 이 변호사는 차이, 차별, 처벌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해 범주화하는 성향을 가진다이는 외집단을 경계할 뿐 아니라 내집단에서도 평균에서 벗어나는 자들을 배제하는 행위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차별의 심리적 원인으로 뿌리 깊은 우월심을 지목했다. 임 교수는 외집단을 공격하고 비하함으로써 내집단이 우월하다고 느끼게 된다이를 통해 스스로 안정감과 우월심리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와 다른사람을 마주했을 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53.04%로 과반을 조금 넘겼다.

배타적 행위에서 비롯된 차별은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한 교수는 “‘타자성을 받아들여야 내 생활도 존재한다우리는 관계 속에서 사회가 유지될 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은 타자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대체로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다양한 형태의 차별에 대해 68.44%에서 90.87%의 응답자가 부당하다고 답했으며, 전체 응답자의 91.63%가 차별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답했다. ‘적극적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경제적 재분배의 필요성에도 각각 81.18%, 66.73%의 응답자가 공감했다.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차별을 경험한 응답자의 98.63%는 차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했으며, 85.91%는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분모를 전체 응답자로 확대했을 때 그 비율이 각각 87.83%, 75.10%인 것을 고려하면, 높은 수치다. 특히 차별이 심한 영역으로 을 꼽은 비율은 여성이 72.31%, 남성이 57.48%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차별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87.83%지만,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55.32%, 차별을 가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32.70%에 불과했다. 이는 설문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무의식적 차별등 다양한 차별의 존재를 보여준다. 홍 교수는 본인이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어도 상대방은 차별로 받아들일 수 있다차별 가해 경험을 묻는 질문은 제한적인 정보만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인권 수준이 높아질수록 노골적인 차별보다 무의식중 발생하는 교묘한 형태의 차별이 빈번해진다고 덧붙였다.

차별의 범주와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개인의 선택, 특히 노력으로 발생한 차이나 격차에 따른 차별이 부당한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학력으로 인한 차별은 논쟁이 가장 치열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차별을 판단하는 기준이 정립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헌법 조문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관련 내용이 있지만 추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법이 마련되고 여러 결정례*가 쌓여야 차별 개념이 경험적으로 확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의로 지체된 차별금지법
제도권에서 다시 시작될 논의

 

차별 해소에 대한 고민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로 흐른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불합리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으로, 지난 2006년 인권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안을 내린 뒤 200712월 처음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첨예한 대립 속에 본격적인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고, 그간 제출된 7개의 차별금지 법안 모두 입법에 실패했다. 현재 차별금지법안과 더불어 이 의원의 평등에 관한 법률안’,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의 평등에 관한 법률안까지 총 4개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연세인은 대체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6.16%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차별은 부당하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가 각각 31.32%, 30.75%, 24.43%를 기록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 이유로 차별 행위에 관한 규정이 애매모호해서33.71%로 가장 높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서25.28%로 뒤를 이었다. ‘법적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22.47%로 드러났다. 종교적 신념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제동을 거는 요소 중 하나다. 한국교회법학회는 지난 8일 성명문을 통해 3의 성을 인정하는 차별금지법은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이들은 종교계가 말하는 혼란에 의문을 제기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장예정 공동집행위원장은 성 소수자를 인간으로 존중하고 싶지 않다는 주장은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 역시 일부 종교 세력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되고 있다차별금지법은 성 소수자의 문제를 넘어 경제적 차별 등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다루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현재 차별 관련 내용을 규정한 법률은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법, 경력단절여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등이 있다. 한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하나의 일반법으로 개별법이 포함하지 못하는 영역을 포괄한다고 말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둘러싼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홍 교수는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보다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조문은 국회에서 의논해 보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논의를 멈추기보다는, 정치권에서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차별금지법 제정 후 차별의 복잡성을 직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차별에 관한 개별적인 사안들을 치열하게 논의하는 과정에서 차별의 기준을 섬세하게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헌법 제10조와 제11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그리고 평등을 우리에게 약속한다면서도 차별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혐오와 차별, 배제가 만연한 사회에서 차별과 평등은 우리모두의 문제로 귀결된다. 국회 차원에서 전향적 논의가 시작될 때 비로소 차별에 대항하는 경고등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결정례: 어떤 사항에 대해 결정한 사례

 
글 여근호 기자
khyeo1123@yonsei.ac.kr
원대한 기자
wondaehan1@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