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이름을 붙일 때 모두가 자신의 차별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시기상조다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를 마주할 때마다 내놓는 대답이다. 지난 2007년 이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서 발의와 폐기를 거듭했다. 대선을 4개월 앞둔 지금도 정치적 논의는 부족하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 차별금지법 제정에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사회적 합의 부족은 차별금지법을 대하는 정치권 전반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사회적 합의는 이미 준비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의 움직임은 차별금지법을 향한 사회적 요구가 두텁게 쌓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은 건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의 의미는 사회적 논의를 주도하지 못할 때 퇴색된다. 차별금지법 논의가 20년 가까이 공회전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차원을 넘어 차별이 문제라는 인식 위에서 차별금지법을 제대로 논의하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이끄는 중이다.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과 다양성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장 의원과의 인터뷰는 지난 11일 서면으로 진행됐다. 장 의원과의 일문일답을 전한다.

 

Q. 21대 국회 첫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정치를 시작한 이유와 관련이 있다. 한 살 어린 동생이 중증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어린 나이부터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지내며 늘 차별에 노출되는 삶을 살았던 동생을 지켜봐야 했다. 2년 전 동생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고, 차별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내 자식보다 하루 더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회가 이 아이들을 돌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이들이 사회를 믿고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장애·성별·성적지향·종교 등은 죄가 아닌 개인의 특성일 뿐이다.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권의 이정표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모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Q.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A. 차별금지법의 가장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무엇이 차별인지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들은 차별을 겪으면서도, 그게 차별인지조차 알기 힘든 상황을 마주한다. 적어도 그 차별에 이름을 붙인다면 많은 시민이 자신이 겪는 차별을 인식하고 이야기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차별을 겪어도 구제받을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부터 시정 명령, 법원의 재판까지 실질적인 구제와 보호 수단을 마련해뒀다. 시민들이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실질적인 수단이 있다고 느낀다면,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차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Q. 차별금지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A. 모든 사람이 현실에서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법이다. 헌법에 평등이 새겨져 있지만, 실제 시민들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여태까지는 차별을 당했을 때 사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존재하는 차별을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통로가 생길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은 총 23가지의 차별 사유를 규정한다. 규정된 조항의 영향 밖에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는 여성을 차별하고, 노인을 차별하고, 성 소수자를 차별하고, 하다못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차별한다. 온갖 이유로 차별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차별금지법은 시민들을 차별로부터 지키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법이다.

 

Q. 차별이 모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A. 한 사람도 안전하지 못하면 모두가 안전할 수 없다. 가령 지난 2020년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며 성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퍼졌다. 이때 성 소수자들은 코로나19 검사를 두려워했다. 당시 방역 당국은 차별과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언해 모두에게 검사를 독려했다. 차별이 두려워 코로나19 검사를 피하게 될 때 그 위험은 공동체 모두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Q. 누구나 약자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다.

A. 우리 사회에는 복합차별이 존재한다. 한 개인이 장애인이면서 노인이면서 이주민이라는 여러 정체성을 가질 때 어떤 정체성 때문에 차별을 받았는지 무 자르듯 구별하기 어렵다. 차별의 구제도 온전할 수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복합차별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양한 약자성이 총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이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법이 필요한 것이다.

 

Q. 차별금지법에서의 차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A. 차별은 개인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깔린 혐오나 구분 짓기, 배제로 인해 발생한다. 즉 차별은 사회적 구조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다. 언제고 차별의 대상은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시민들은 감염뿐 아니라 차별로 고통받았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대구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은 대구 지역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번진 바 있다.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반 시민들이 너무나 많은 차별을 경험했다.

차별은 갈수록 교묘해진다. 차별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차별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다고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1조에 국민의 평등을 규정하나, 여전히 차별받는 시민들은 존재한다. 국가는 현실에서 평등이 작동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법을 만들어 국민을 차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Q. ‘포괄적차별금지법은 차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A. 현재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법은 10개가 채 제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는 차별 금지 항목만 23개다. 차별에 대한 대응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별법을 하나씩 추가하는 것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래서 23가지 사유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을 명시했다. 법에 규정된 차별 사유 외에도 다른 차별 사유가 있음을 열어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규정된 23가지의 사유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강하게 존재했던 차별의 목록이다. 이외 새롭게 등장할 차별들도 차별금지법이 다룰 수 있다.

 

Q.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차별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A. 차별금지법상 유일한 형사 조항은 제55~57, 진정 또는 소의 제기 등을 이유로 신분이나 처우의 불이익 조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용자 및 임용권자, 교육기관의 장이 인사 및 처우와 관련해 불이익 조치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차별을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 시정, 손해배상 등의 민사 조치만 가능하다.

 

Q, 차별금지법이 역차별과 불공정을 조장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 화두가 된 이유는 불평등 때문이다. 공정 뒤에 숨어있는 단어는 경쟁이라 생각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지면 정의가 달성된다는 시각인데, 공정한 경쟁이 정말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계적 공정을 따지는 게 아니라 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책들을 마련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기본법이다. 노력보다 더 본질적인 요소는 개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다.

 

Q.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A.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故 변희수 전 하사의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 명령을 내리면 변 하사를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방부의 강제 전역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해도 시정 권고에 그칠 뿐이다. 국방부가 이를 거부해도 실질적으로 바꿀 힘이 없다. 결국 법원으로 해당 문제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 동안 변 하사가 받은 고통은 가중됐다.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바로 구제가 가능했을 일이다.

 

Q.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여태껏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정치권의 의지 문제라고 본다. 차별금지법은 국회가 굉장히 의도적으로 외면해 온 법이다. 누군가는 그 이유를 종교계의 반대로 지목하지만,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14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국회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국민을 차별로부터 지켜야 할 책무에 소홀하다. 국회에 학습된 공포와 과장된 두려움이 있는 듯한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일부 종교 세력들이 이를 굉장히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은 전반적인 시민의 삶이 아니라, 일부 조직된 소수의 반대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연대하는 종교계가 있다. 소수자의 존재를 탄압하며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종교계는 일부라고 본다. 그렇기에 모든 시민의 존엄을 바라는 종교계와 함께 온전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한다.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대한 비타협적 신념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헌법에 아로새겨진 존엄한 가치다. 이제는 그 두려움을 이기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Q. 지금 21대 국회의 입법 동향은 어떤가.

A.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 만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했고 계속 논의를 촉구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외면했다. 하지만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자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더불어민주당이 평등법을 발의할 수 있었다. 법이 제정되기까지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았다.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고 본회의 표결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시민들의 요구가 있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Q.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A. 지난해 차별금지법 및 평등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의 주한대사를 만나 연속 대담을 이어갔다. 법 제정 이후 사회에 어떤 변화가 생겼느냐는 질문에, 많은 대사가 법은 변화를 끌어내는 기반이다는 공통된 답변을 내놓았다. 국가와 사회는 계속해서 인권 감수성과 경각심을 지니고 차별금지법 정신을 기반으로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내 법안 제정에 가장 책임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대선 국면에서 차별금지법이 주요 의제로 부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차별금지법이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비판하고자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여야를 비롯한 모든 정당의 합의를 통하는 것이다. 지금 시기에 걸맞은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대선이 인권에 대한 비전을 내놓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차별금지법은 모두가 존엄한 사회를 열 수 있다.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은 정체성을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며 나답게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라 말했다. 정치의 시간을 차별이 아닌 평등에 맞추는 건 존엄한 사회와의 거리를 좁히는 토양이 된다. 차별금지법은 시민사회에서 출발해 정치가 매듭을 묶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글 박경민 기자
lightmiin@yonsei.ac.kr
복건우 기자
geonu_20@yonsei.ac.kr
<사진제공 장혜영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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