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상현 이사장을 만나다

특성화고등학교(아래 특성화고) 학생들은 교육 체계 안에서 주변인에 해당한다. ‘일반적인교육과정과 분리돼 배제와 소외를 경험한다. 앞선 기사에서 다룬 졸업생의 경력단절, 대학 진학 논의를 넘어 지금, 그들의 목소리를 응시하고자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상현 이사장을 만났다.

 

▶▶ 특성화고 학생들을 비롯한 고졸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특성화고권리연합회를 출범한 이상현 이사장. 이 이사장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특성화고 학생들을 비롯한 고졸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특성화고권리연합회를 출범한 이상현 이사장. 이 이사장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Q. 특성화고권리연합회가 출범한 계기는 무엇인가.

A. 지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특성화고 출신 청년 노동자 김모군이 있었다. 사고 추모 현장에 다니면서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은 반복되고, 특히 특성화고 학생들을 비롯한 고졸 노동자들이 부당한 현실에서 일하는 것을 마주했다. 고민이 이어지면서 2017년부터 이 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Q. 출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A.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특성화고가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며 복종을 강요당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학생들의 권리의식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 자체가 용인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학교 앞 홍보를 나가면 방해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노조 아니냐’, ‘왜 이런 걸 학생들에게 홍보하냐는 식의 얘기도 들었다. 노동을 바라보는 보수적인 시각 자체에서 오는 어려움이었다.

 

Q. 직업계고* 정책소통단 운영 언론 성명 학생 대상 요구조사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활동들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A.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지금은 학생 당사자들의 의견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짜현실에 관심을 갖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특성화고 문제는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을 통해 관심을 모아 사회적 의제로 만들면 구체적인 개선책들이 나올 것 같다.

 

Q.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률은 27.7%에 불과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률이 저조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 구조다. 학력 중심의 서열화를 살펴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학 학력이 없으면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고가 기저에 놓여 있다. 대학 학위를 갖는 것이 기본값이 됐다. 이게 없으면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시각 자체가 매우 큰 문제라 생각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로 나아갈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닫혀 있다.

 

Q. 특성화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특성화고의 본래 목적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 많은 특성화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이다. 팬데믹 이후에는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지금 취업하지 말고 대학에 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직업 교육이 직업계고에서만 진행돼야 하는 건 아니다. 일반계고는 대학 진학을 위한 교육, 직업계고는 직업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고 이분법으로 나눈 것 자체가 지금의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학생들이나 당사자들의 요구를 더욱 반영하겠다는 취지에서 직업 교육 체계를 여러 번 개편했으나, 여전히 교육 체계는 저임금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전격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니 교육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 큰 변화도 없다.

 

Q. 지난 2016년 구의역 김모군 사망 사건부터 2021홍정운 군 사망 사건까지, 현장실습생의 사망 사건이 그치지 않고 있다. 사망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현장실습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교육부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교육부는 산업안전이나 노동관계 법령과 관련한 전문적 역량도, 권한도 없다. 해당 권한을 가진 건 고용노동부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권한이 있음에도 안전 문제 관련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 지금도 대응은 문제가 발생하면 파악해서 처벌하는 구조다. 그런데 사람이 죽고 나면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안전 관련 법률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번 홍정운 군 사망 사건에서도 기업은 법을 여러 차례 위반하면서 잠수 작업을 시켰다. 지난 2017년 제주 이민호 군 사망 사건 또한 현장실습 과정에서 사업주가 안전 관련법을 많이 위반했다. 사업주들이 법을 위반하는 것도 강력한 처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사업주가 법을 위반했을 때 발생한다.

 

Q. 정부에서는 지난 2019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 방안을 내놓았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무엇이 문제였나.

A. 교육부가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고시를 개정한 것이 문제다. 당시 기존 현장실습이 학습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현장실습생의 신분이 노동자가 아닌 학생으로 규정됐다. (이 같은 신분 규정은) 입법 절차를 밟았어야 하나, 교육부가 고시를 통해 해당 사항을 개정했다. 이는 권한 밖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현재 현장실습생은 노동자성을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태인가.

A. 그렇다. 현장실습생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부 조항만을 적용받기 때문에 사업주는 해당 조항을 위반했을 때만 처벌될 수 있다. 더불어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아예 노동 관련 법률의 범위 바깥에 있다. 실제 실습 기업 중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은 상당하다.

 

Q. 지난 2019, 교육부는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해 신기술 분야의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아래 도제학교) 사업을 추진했다. 도제학교 사업은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나.

A. 현장실습은 교육부, 도제학교 프로그램은 고용노동부 소관이다. 체계적이지 못하다. 현장실습생과 도제학교 파견 학생들은 모두 직업계고 학생들인데 통일된 기준이 없다. 예를 들어 도제학교에 파견된 학생은 학습 근로자로 인정돼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는데, 현장실습생은 (학생 신분으로 규정돼있기에)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을 적용받는다. 사실 현장실습생과 도제학교 파견 학생들이 하는 일이 유사한데도 불구하고 제도상의 차이만 있는 것이다. 물론 예산 편성 및 소관 부처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의 처우마저 달라지지는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Q. 지금도 주목받지 못하는 죽음이 있나.

A. 학교를 졸업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잘 보도되지 않는다. 많은 사망 사건 중 몇 건만이 보도되는데, 확인해보면 특성화고 출신들이 매우 많다. 지난 927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에서 외벽 청소 중 안전 로프 미착용으로 추락한 노동자도 특성화고 졸업생이다. 현장실습생이 경험하는 노동환경이나 졸업 이후 취업하는 기업의 노동환경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실습은 기간이 짧으니 사고 건수가 많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졸업 이후 노동환경까지 응시한다면,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Q. 이 같은 참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하나.

A.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처벌은 계속 보완되고 강화돼야 한다. 법을 위반하면 정말 큰일 난다는 인식이 생겨야 사업주들도 법을 철저히 지킬 것이다. 또한 현장실습생을 노동자로 인정해 노동 관련 법률을 적용받도록 해야 한다. 정말 노동이 없고 교육만 있는 실습 과정이 있다면, 이 경우만 예외로 두면 된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실제 행정력을 투입해 철저한 관리를 주도해야 한다.

 

Q. 무엇보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향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A. 세계에서 우리나라 기업만큼 안전을 위한 비용을 낭비로 생각하는 곳이 있을까. 이런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라고 생각한다. 제도도, 기업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고졸자를 공부 못하는 사람’,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사람’, ‘일반계 갈 실력이 없어 특성화고에 간 사람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에 대학 졸업장을 가져야 나머지 인생이 좌우되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Q. 이외에도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환경이 조성돼야 하나.

A.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많이 열려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이건 역차별이 아니냐라 이야기할 정도로 과도한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한 80%의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대학을 가는 청년들에게도 엄청난 낭비가 수반되는 셈이다.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필요할 때 대학에 진학해서 필요한 걸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Q. 어쩌면 특성화고 등 직업 교육 환경개선이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나 학벌 카르텔 등을 풀어나갈 단초가 될 수도 있겠다.

A. 그렇다. 직업 교육 지원은 단순히 고졸 청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졸자 중심 구조를 타파하고, 이를 통한 교육의 패러다임을 새로 만들기 위해 획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간혹 전문가들도 지원에 의문을 던진다. 청년 지원책이 있으니 고졸 청년들을 위한 지원책을 별도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너무나 협소한 시각이다.

 

Q.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지금 당장필요한 건 무엇인가.

A. 특성화고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다. 모두가 중요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 열악한 기업, 어려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런 기업에서는 다수의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들이 일하는 만큼, 이들이 인정받고 대우받아야 한다. 또 주목받을 수 있는 권리에 앞서, 당장 무시당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Q. 특성화고 권리연합회의 향후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고 싶나.

A.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활동할 예정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실을 조사하고 분석해, 학생들이 원하는 변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당사자들이 직접 우리 사회에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가려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우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어려움을 많이 겪는 청년들의 문제도 정치에서 거론되지만 실질적인 어려움이 해소되지 못한다. 저임금 고용 불안 속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로 우리 사회 전반이 균형을 찾아가길 바란다.

 

Q. 끝으로 대학생 독자들이 특성화고 학생들의 문제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사회적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 사회 청년들 다수는 청년집단이 마주하는 문제 중 하나 이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들은 연결된 경우가 많기에 함께 해결해야 한다. 직접 겪지 않는 문제라 하더라도 깊게 생각해보면 자신과 맞닿아 있을 수 있다. 특성화고 학생, 졸업생들이 겪는 문제가 대학생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청년들의 과도한 대학 진학률, 대학 교육의 질 문제 등과 연결돼있다. 무리하게 나서서 뭔가를 하지는 못해도 괜찮다. 한 번쯤 다른 사람들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준다면 청년들이 겪는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 묻자, 이 이사장은 연신 관심을 당부했다. 진정 우리가 바라야 하는 것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이것이 동화로 남지 않아야 한다.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에 아파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교육과 노동의 중간 지대에 놓인 이들이 어떤 위치에 놓이더라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당장 지금 우리가 가진 학벌을 내려놓고 바라보자. 우리 근처이자, 모두의 이야기다.

 

*직업계고: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 교육을 위해 설립된 고등학교를 통칭하는 말.

 
글 박경민 기자
lightmiin@yonsei.ac.kr
사진 허유신 기자
yushin062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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