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연세 사랑한다 연세
내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사랑이 되어라

우리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노래. 모두가 한 마음이 돼 파란티를 입고 응원가를 외치는 그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우리대학교와 고려대의 (아래 정기전)이 5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다. 다가오는 18일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를 보러 가기 전, 정기전의 50년을 살펴보자.

‘연고전’을 연고전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상처가 나면 흉터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보통 연고(軟膏)를 찾는다. 하지만 고려대 약국에서는 고연이라면 모를까 연고는 팔지 않는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다. ‘연고전’과 ‘고연전’. 이 명칭을 두고 양교는 항상 치열한 기싸움을 벌여왔다. 이렇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명칭 논란에 대해 알아보자.

정기전의 시초는 1925년 5월 30일 조선 체육회 주최로 열린 ‘제5회 전조선(全朝鮮) 정구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시합에서 양교가 만난 것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젊음을 발산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계기로 양교간의 대결은 축구에서 농구로 점차 종목이 확대됐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범민족적인 경기로 발돋움하게 됐다. 양교간의 대결은 그 당시 우리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이름을 따 ‘연보전’ 혹은 ‘보연전’으로 불렸다.

광복 이후 1946년에는 두 학교의 교명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변경됐고 재학생간의 축구와 농구 정기전이 매년 열리기 시작함에 따라 현재의 명칭이 사용됐다. 정기전 시작 이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고전’이란 용어가 사회 보편적으로 통용돼, 지난 1958년 이에 불만을 품은 고려대 측은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정기전이 현재와 같은 경기방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1965년부터는 ‘주최하는 학교가 상대방의 이름을 먼저 쓰기’로 양교가 합의했다. 그럼에도 각 학교에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여전히 자신의 학교명을 앞에 붙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970년대 TBC방송(현 중앙일보 JTBC의 전신)에서 앵커맨으로 활약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봉두완 동문(영문·56). 당시 자신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에서 “뉴스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오늘은 연고전이 열리는 날입니다. 젋은이들의 축제를 우리 모두 축하해줍시다”라는 멘트로 아침 뉴스를 시작했다. 이날 고려대 측은 공식 언론이 고연전을 연고전이라고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항의와 비난을 던졌다. 그럼에도 다음날 아침 봉 동문은 “어제 연고전이라고 했다가 많은 항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서해빙을 서동해빙이라 하지 않고 남북대화를 북남대화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연고전은 연고전입니다”라고 말했다가 성난 고려대 학생들이 방송사 유리창을 다 부수기도 했다.

민족의식을 공유해온 양교의 우정 어린 경쟁은 어느덧 5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대학교가 주최를 하는 올해의 정기전의 공식명칭은 ‘고연전’이다. 하지만 우리대학교 학생이라면 그 누구도 고연전을 고연전이라 부르지 않는다. 마치 약국에 가서 ‘연고’를 고연으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정기전과 함께 달려온 응원단 ‘아카라카’

정기전하면 우리대학교만의 응원 문화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과거엔 종목별 프로리그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기전에 국가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로 인해 잠실구장은 지금과 달리, 뜨거운 응원의 열기로 불타올랐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응원 역시,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과거 정기전에서 응원은 수술과 카드섹션을 이용해 앉아서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 1973년 응원도구에 불이 붙으면서 큰 화재가 발생했고 이후부터 맨손 응원으로 변화했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스탠딩 응원 형태로 발전했는데 이런 적극적인 응원은 우리대학교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정기전의 응원 형태를 보면 우리대학교와 고려대, 두 학교의 서로 다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도 정기전의 또 다른 재미다. <관련 기사  1690호 10면 ‘한국의 연고전을 넘어, 세계의 연고전으로 더욱 비상하라!’> 우리대학교의 경우 1931년 ‘제1회 조선 축구대회’에서 밴드 중심으로 구성된 응원가를 바탕으로, 현재는 클래식이나 대중가요와 같이 신나고 재미있는 손동작 위주의 응원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고려대의 경우 1931년 농악을 반주로 한 응원곡을 시초로 하기 때문에 주로 민족을 강조하는 응원곡이 많다. 어깨동무를 하는 등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동작을 바탕으로 육성 위주의 응원이 대부분이다. 

정기전이 시작하고 50년이 흐르는 동안 응원의 형태는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특히 정기전의 마스코트 역할을 해온 우리대학교 응원단 ‘아카라카’ (아래 응원단)도 정기전과 함께 50주년의 역사를 써오고 있다. ‘선수를 진심으로 응원해 승리로 이끄는 것’ 을 목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정기전의 숨은 일등 공신이 아닐 수 없다. 2015학년도 응원단 단장 오근범(지템·08)씨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응원 컨텐츠를 공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 응원단이 해야 할 일”이라며 “연·고대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응원문화를 선도해, 우리나라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응원단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정기전의 미래를 바라보다

정기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학 스포츠 대항전이다. 또한, 정기전과 그 문화는 사회문화적으로 양교의 공동체적 특성이 잘 반영돼 있는 문화적 산물이자 사회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두 대학 구성원에게 정기전이라는 큰 스포츠 행사는 그들 자신만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인하고 정기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독특한 집단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런 정기전은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일제 강점기 당시 정기전은 스포츠로 민족 애환을 달래는 기제이자 근대 스포츠를 선도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광복 이후 정기전은 근대 스포츠의 발전과 현대 한국 스포츠의 초석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그 이후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정기전은 더욱 발전해 왔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로 인해 정기전 문화 전파가 정체기로 접어들며 정기전은 점차 대중성을 상실해, 양교만의 문화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현재도 우리대학교와 고려대는 정기전의 문화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구성원들 또한 정기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엔 과거 정기전의 단결력 강한 성격이 많이 퇴색되고 ,학생들의 참여율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사회적 추세 따라 학생들의 관심 역시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스포츠 종목의 다양화로 인해 관심의 집중도가 예전만하지 않은 부분과 선수들의 기량 약화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양승함 교수(사과대․정치외교학)는 “정기전은 우리대학교의 오랜 전통으로 교육적 차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며 “사회적 흐름과 학생들의 관심사가 변화하는 가운데 정기전이 대학문화의 일환으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기전의 미래 발전 방향과 현재 상황에 대해 체육위원회 이영석 팀장은 “다양한 기관들과의 협력과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대학 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며 “앞으로 정기전은 사회와 연계되는 스포츠 행사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유진 기자
yujin221@yonsei.ac.kr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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