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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전특집] 동인 인터뷰나성범 선수, 김기성 선수, 문경은 감독을 만나다
  • 이정은 기자, 이주인 기자, 박은미 기자
  • 승인 2015.09.12 21:49
  • 호수 1757
  • 댓글 0

NC 다이노스 나성범 선수

우리대학교 야구선수를 떠올린다면 바로 ‘나성범 선수’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지난 2011년 정기연고전(아래 정기전) 야구경기를 승리로 이끈 주역! 1학년 때부터 고려대(아래 고대)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고 4학년 때는 2회부터 등판해 경기를 마치고 승리투수가 된 정기전의 역사적 인물. 지금은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에서 뛰고 있는 우리대학교 동문 나성범 선수(체교·08)를 만났다.

Q. 정기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A. 대학생활에 있어 정말 좋은 추억이었다. 어릴 적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감독님의 권유로 우리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우리대학교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학교를 다니면서 정기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만큼 애착이 생겨 정기전 경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재학 4년의 정기전 동안 2승 1무 1패를 기록했는데 1패를 한 경기는 운도 따르지 않았고 실수를 했던 기억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반면 1학년 때인 2008년 당시에는 경기 실력도 좋았고, 처음 뛰는 경기여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정기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임하는 각오는 어땠는지?
A. 방학 전 7~8월달, 한 달 동안엔 어느 한 지역 야구장 하나를 빌려 합숙훈련을 한다. 야구선수들은 정기전만 바라보고 매일 훈련을 한다. 첫 경기 출전은 긴장이 많이 됐지만, 매년 출전하다보니 노하우도 생기고 긴장감보다는 즐기는 자세로 임했다. 또한 정기전 훈련을 할 때 매번 응원가를 틀어놓고 실제 시합을 하는 것처럼 준비를 했다.

Q. 많은 고교선수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보다 바로 프로에 지명되는 걸 선호하고 있는데, 대학생활이 나성범 선수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A. 우선 돌이켜보면 대학교에 진학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어린 친구들한테 말해주고 싶은 건 바로 프로로 가는 게 좋을 수 있지만 대학 입학 후의 경험들이 드래프트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는 유혹이 너무 많다. 고등학생 때는 접해보지 못했던 미팅, 술자리들이 선수들의 자기관리에 있어 힘든 부분이다. 돌이켜보면 1학년 때는 이런 유혹에 흔들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학할 때는 남들보다 다른 자세로 훈련에 임했던 것 같다.

Q. 닮고 싶은 선수를 뽑는다면 누구인가?
A. 단언컨대 추신수 선수다. 배울 점이 많고 본받고 싶은 선배다. 워낙 존경하는 선수이기도 하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직접 만난 적이 있었는데 연예인을 보는 느낌 그 이상이었다. 당시에는 추선수 선배님을 뵙는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고, 선배님이 먼저 알아봐주셔서 정말 기뻤다.

Q. 이번 정기전 야구선수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원정을 가도 정기전은 꼭 챙겨볼 만큼 매년 정기전 경기를 본다. 정기전 선수시절에는 이겨야 된다는 강박에 가끔 의욕이 앞섰는데, 아마 선수들도 경기 때가 되면 다들 의욕이 앞서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벤치클리어링* 등 이상한 플레이가 나온다. 정기전 선수였을 때 당시 감독님의 “신사답게, 품격 있게 우리대학교 학생답게 경기에 임해달라”는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런 자세로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다.

*벤치클리어링 :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양 팀 소속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뒤엉키는 현상. 벤치가 텅 비기 때문에 벤치클리어링이라 불린다.

글 이정은 기자
lje8853@yonsei.ac.kr
사진 강수련 기자
training@yonsei.ac.kr

안양한라 김기성 선수

대학 빙구의 최정상답게 우리대학교 빙구부는 매년 실력 있는 선수를 배출하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현재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생활 10년차로, 다가올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대활약을 기대 받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우리대학교 빙구부 출신 안양한라 김기성 선수(체교․ 04)다. 정기연고전(아래 정기전)은 물론 각종 대학리그에서 활약하며, 졸업 후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김기성 선수를 만났다.

Q. 첫 정기전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A. 2004년 정기전이 첫 출전이었다. 5:3으로 이긴 날인데 사실 신입생이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경기종료를 앞두고 고려대 골대에 골리(goalie)가 없어 퍽을 쳐서 마지막 골을 넣었다. 선배들과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을 뿐인데, 운 좋게 골까지 넣을 수 있었다.

Q. 정기전 외에도 고려대와의 짜릿했던 승부가 있었나?
A. 1학년 때 출전한 ‘2004 강원도컵 코리아 아이스하키 리그’ 결승전이다. 챔피언 결정전이 5전 3승제였는데 고려대랑 두 번이나 붙었다. 한 번만 이겼어도 됐는데 두 번 다 이겼다. 결승전에서 상대선수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퍽을 빼앗아 골을 넣었다. 그 순간이 가장 짜릿했다. 팀의 우승은 물론 개인적으로 그 리그에서 MVP도 받았다.

Q. 우리대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가장 즐거웠던 점과 힘들었던 점은?
A. 힘들었던 점은 자유롭지 못했던 점. 선수생활이 우선됐기에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래도 그 당시 감독님 말씀을 잘 따랐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가장 즐거웠던 때는 1학년 때. 흔히 말하는 미팅을 선배들이 많이 주선해주셨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리 각 지역에서 모이는 곳이잖나, 여러 지역에서 모이니 다들 초반에 서먹했는데, 다 같이 합숙도 하고 미팅도 나가니 서로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Q. 당시 우리대학교 빙구부의 훈련은 어떻게 진행됐나?
A. 우리대학교 빙구부는 음대 계단, 그리고 체육관에서 훈련을 병행한다. 여름에 음대 계단에서 훈련하는데 감독님이 정신력으로 버티라며 물도 주지 않았다. 지금의 감독님은 그렇지 않다고 해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버텨냈기에 정기전 첫 경기부터 골도 넣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지난 8월, 소속팀이 우리대학교와 고려대와 각각 연습경기를 치렀다. 전력총평을 내린다면?
A. 고려대가 체력적인 부분과 팀의 짜임새에서 우리대학교보다 우세한 것 같다. 작년 정기전 우리대학교 골리가 신입생이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골리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2년차니, 이미 안정적으로 적응하지 않았나 싶다. 부족한 수비도 남은 기간 동안 보완한다면 이번 정기전에서 충분히 좋은 경기를 보여줘 고려대에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부상 없이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열심히 준비해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가 활약하고 싶다. 빙구가 지금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빙구는 TV중계로 보는데 한계가 있는 종목이다. 경기장에 와서 직접 보면 매우 재밌다. 특히 남성들은 빙구의 바디체킹*을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고도 한다. 어떤 팬은 “죽여!”라고 과격히 외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더라. 직접 와서 보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Q. 정기전을 앞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A. 모든 운동 중 쉬운 것은 없는 것 같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모두 다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한걸음씩 매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자리에 있을 테니 스스로를 믿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바디체킹 : 선수 간 허용되는 몸싸움. 퍽을 가지고 있는 선수나 퍽을 가지러 가는 공격수를 수비수가 상체를 부딪쳐 막아내는 것.

글 이주인 기자
master0207@yonsei.ac.kr
사진 심규현 기자
kyuhyun1223@yonsei.ac.kr

SK Knights 문경은 감독

1990년대는 말 그대로 농구의 시대였다. 농구가 황금시대를 구가하던 그 시절,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건 다름 아닌 우리대학교 농구부다. 당시 이상민(경영·91), 우지원(법학·92), 문경은(체교·90)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하면서 농구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우리대학교 농구부. 영광의 시대를 보내고 현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SK Knights 문경은 감독을 만나봤다.

Q.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는데, 기억에 남는 정기전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A. 첫 정기전과 세 번째 정기전이 기억에 남는다. 1학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뛰었다. 몸만 풀어도 좋을 정도였는데 당시 15점 정도 득점을 해 심장 뛰는 게 유니폼 밖으로 보일 정도로 떨렸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며 여유가 생겼다. 3학년 때는 우리대학교 농구팀 자체가 위기였다. 고려대는 그 몇 년 사이에 멤버가 좋았는데 우리대학교는 4학년 선배들이 일찍 실업팀에 나갔다. 그래서 신장이나 객관적인 전력 부분에서 많이 밀렸다. 그러나 당시 멤버들과 의기투합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들 우리가 질 것이라며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겨서 더 기억에 남는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정기전을 뛴 4년동안 모두 이긴 것이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한 선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Q. 당시 정기전에서 농구 종목의 위상과 농구부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는가?
A. 정기전이 치러지면 농구 인기가 최고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선수인데도 친구한테 줄 표가 없었던 적이 많다. 더불어 교내에서만 인기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도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 경기장이 꽉 차고 일반 팬도 많았다. 그 당시 우리대학교 농구부의 인기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지금의 탑스타들 원빈이나 빅뱅과 같은 사람들의 바로 밑 정도는 됐다고 생각한다. 팬레터도 워낙 많이 와서 하루에 쌀가마니만한 걸 한 자루씩 받았다. 그러다보니 우체국에서는 우리 농구부에 오는 트럭이 따로 하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희한한 시대였다.

Q. 현재의 정기전을 지켜보고 있는가?
A. 정기전에는 항상 많은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생중계를 볼 수 있으면 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분석실에서 녹화본을 본다. 현재 나는 프로팀 감독으로 선수들을 드래프트를 통해 뽑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고려대와 경기를 할 때면 객관적인 전력 상 고려대가 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프로아마최강전에서 붙어본 결과 조금만 더 힘내준다면 좋은 경기를 할 것이다. 우리대학교가 그다지 밀리는 조건은 아니다. 특히 우리대학교가 고려대의 3~5번* 선수들에 비해 기술 세기가 조금 떨어지는데 최준용 선수(스포츠레저·13,F·5) 혼자 버티려니 힘든 것이다. 그 부분을 수비로 보완을 한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Q. 문경은에게 정기전, 그리고 연세대란?
A. 연세대학교 문경은이라고 하면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해주신다. 그렇게 알아주시는 것을 통해 4년 동안 내가 보여줬던 활약이 굉장히 컸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대학 4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지만 졸업하고 나니 대학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30년 동안 농구를 해왔고 우리대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4년에 불과하지만 그 기억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추억이 많은 곳이다. 연세대학교는 농구인 문경은이 있을 수 있게 해준 곳이다. 나는 역시 파란색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Q.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A. 비공식 친선 경기라고는 하지만 선수들한테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경기다. 그런 경기에서 몇 년 간 이기지 못했다는 불안감이나 부담감은 뒤로하고 일 년에 단 한 경기뿐이니 혼신을 다해 경기를 치르고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다. 더운데 고생한 만큼 그런 땀의 결실을 잘 거둘 수 있도록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르기를 바란다.

*3~5번 : 1번은 포인트가드(PG), 2번은 슈팅가드(SG), 3번은 스몰포워드(SF), 4번은 파워포워드(PF), 5번은 센터(C)다. 3~5번은 가드를 제외한 포워드와 센터를 말한다.

글 박은미 기자
enmiya@yonsei.ac.kr
사진 전준호 기자
jeonjh1212@yonsei.ac.kr

이정은 기자, 이주인 기자, 박은미 기자  lje885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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