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변화가 필요하다] 영어 강의

많은 대학들이 ‘글로벌화’를 외치는 요즘 각종 대학 평가의 주요 심사에서 영어강의 수는 빠지지 않는 항목이 됐다. 이런 추세에 맞춰 우리대학교 역시 영어강의 숫자 늘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연세비전 2020’에 따르면 우리대학교는 영어강의 교과목 비율을 현재 약 27%에서 오는 2010년에는 35%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대학별 학부 영어강의 비율(2008학년도 1학기 기준)

대학

영어강의 비율(%)

고려대

37.9

서강대

20.6

서울대

9.7

성균관대

15.7

이화여대

9.8

포스텍

25.0

한양대

11.4

 

◎ 우리대학교 학부 영어강의 교과목 비율

 

영어강의가 외면받는 이유

학교 측은 영어강의를 장려하기 위해 일종의 인센티브로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강의를 수강했던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강의에서 전문지식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강의에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강의를 하는 교수들 역시 이런 부분을 의식하다 보니 같은 과목의 한국어 강의에 비해 수업 진도가 느리거나, 심화된 내용을 강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영어강의에서 교수와 학생 간 소통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스포츠레저학과 정유미 강사는 “영어 수업에서 외국 학생들과는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지만 한국 학생들의 경우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학생들은 수업 참여가 어렵다 보니 영어강의를 기피하게 된다. 최원경(경영·08)씨는 “영어를 잘하는 학생들만 강의에 참여해서 소외감을 느꼈다”며 “언어 장벽 때문에 수업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내용적인 측면에서 얻은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강의는 의무, 준비는 선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는 의무사항이다. 교원업적평가 시행세칙 제14조에 따르면 교수는 임용 후 최초 재임용 심사 요건으로 영어강의 6강좌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교수에 대한 지원은 부족한 상태다. 우리대학교 교육개발지원센터에서는 영어강의와 관련한 표현이나 교수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지만 영어로 수업을 하는 데는 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이문 특별초빙교수(학부대학·철학)는 “영어강의가 나름대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미국에서 25년을 강의한 경험이 있는데도  한국 학생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영어강의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부족으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영어강의를 수강한 김아무개씨는 “교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며 “유학 경험이 있는 교수님이라 해도 무작정 영어강의를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실 있는 영어강의가 되려면

영어강의의 무조건적인 양적증가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공 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비율만 늘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 측은 국어국문학과에도 2010년까지 영어강의 비율을 35%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허문정(정외·08)씨는 “갯수만 늘릴 게 아니라 영어강의가 적합한 과목과 그렇지 않은 과목을 구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영어강의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한국어 사용을 얼마나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교무처 정광수 주임은 “영어강의의 원칙은 100% 영어 사용이지만, 구체적인 규정이 마련돼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영어강의의 질적 향상을 위한 방안도 미비한 실정이다. 정 주임은 “지난 2008학년도 2학기부터 강의평가에 영어강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2개 항목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측의 목표대로라면 영어강의의 양적 증가가 계속될 것인데 단순히 강의평가 항목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영어강의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국제화를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영어강의의 취지에 대한 공감도 확산되고 있다. 전문 지식을 영어로 습득할 수 있으며, 취업을 비롯한 여러 시험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영어강의 비율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영어강의가 시행된 지 10년, 철저한 준비 없이 이뤄지는 영어 강의는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영어강의가 영어 실력도 전공지식도 부족한 학생을 양산해선 안 될 것이다.

황이랑 기자 oopshuck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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