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노방전도 체험기

백양로를 걷다보면 종종 이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저기요...”라는 말과 함께 다가오는 그들의 다음 멘트는 다양합니다. “좋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인상이 좋으시네요”, “성경 공부하는 학생들인데요. 몇 가지 설문조사를 해주실 수 있으세요?”, “교회 다니세요?”...
재작년 부푼 마음을 품고 백양로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받은 첫 질문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성경 공부하는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집에 갈 때까지 서너번은 만난 것 같습니다. 그 후에도 종종 만났습니다만 매번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지나쳤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연세인이 저와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있더군요.

▲ 댓글의 이상민은 기자와 동일 인물이 아닙니다 ^^;
그러게요. 그 질문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요? ‘개박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궁금했습니다. 학내에서 활동하는 노방전도(路傍傳道)자들은 누구일까요. 기자는 ‘바이블 스터디’하는 학생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기사는 시간 순으로 진행됩니다.

#1 “바이블 스터디를 준비하는데요.”

최대한 힘없이 백양로를 서성이던 기자. 드디어 중도와 한글탑 사이에서 노방전도자들을 만났다. 상냥하게 웃으며 여자 두 명이 접근했다. “바이블 스터디를 준비하는데요. 발표 준비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바이블은 얼버무리고 스터디를 강조해서 정확히 뭐라고 말하는지 몰랐지만 사실 이런 패턴이야 대부분 한 번쯤 경험했을 식상한 멘트다.

▲ 위 사진은 재연사진입니다

#2 “인상이 참 좋으세요.”

그들은 “어디 앉아서 이야기 할까요?”라며 농구장 앞 벤치로 향했다. 물론 “인상이 좋으시네요”라는 칭찬을 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의 비밀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며 성경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어머니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디 소속이란 질문에는 얼버무리며 초교파적인 연합동아리라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다.
처음에는 발표를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한다고 했건만, ‘어머니 하느님’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스터디를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스터디는 우리대학교 공학관에서 2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3 “ㅇㄹㅎ 아카데미... 도와주세요ㅠ”

스터디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들이 들고 있던 다이어리에 쓰여있던 ‘ㅇㄹㅎ 아카데미’를 검색했다.

재미있게도 그들의 말은 패턴화 되어 있었다. 기자가 들은 말과 말하는 순서까지 일치하는 경험담도 있었다. 떨고 있던 찰나 전화가 왔다. 밥을 같이 먹자는 내용이었다.

#4 “앞으로도 함께 하고 싶어요.”

강의실에 들어가자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강의실에는 피아노곡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30분 가량 간사가 ‘유월절’에 대해 설명을 했다. 간사의 직업을 물어보니 정식 목사는 아니고 ‘신학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간사의 설명이 끝나고 개별적으로 주제와 관련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이 있었다. 기자 옆으로 길에서 만난 노방전도자가 와서 성경책을 뒤척이며 주제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그 시간이 끝나고, 한 학생이 앞으로 나가 역시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했다. 그 발표가 끝나고는 간단한 인터뷰 시간이 있었다. 인터뷰 시간이란 새로 온 사람들에게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이것저것 묻는 시간이다. 새로 온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집은 어디인지, 혼자 사는지 등을 물어봤다. 자리 배치에서 느낄 수 있듯이 서로에 대해서 알기 보다는 나에 대해서 그들이 아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일방향성은 계속됐다.
그 날 새로 온 사람은 기자를 포함해 세 명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는 특이하게도 ‘마피아게임’을 했다. 친목을 다지기 위함인 것 같았다. 가기 전에 간사가 “세미나는 일주일에 한번이고, 많은 시간 잡아먹지 않으니 함께하자”고 권유했다. 다른 스터디 참가자들은 교회에 초대하고 싶다며 내일 시간 되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초교파적인 ‘바이블 스터디’모임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모두 ‘ㅎ’교회의 신도였다. ‘연합동아리’라는 말마따나 우리대학교 학생은 기자를 제외하고 1~2 명 밖에 되지 않았다. 기자에게 전도를 한 사람은 교회를 다닌지 1년 정도 되었다고 하고, 이화여대를 다닌다고 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질문을 할 때마다 서둘러 화제를 교리로 돌려서 더 이상 깊게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끝까지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는 등 그들의 신상정보에 대해서는 쉽게 말해주려 하지 않았다. 내 이름, 학과, 학교는 다 얘기했는데 말이다.

#5 “오늘은 시간 괜찮으세요?”

그날 밤과 다음날에 거쳐 3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 교회에 초대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전화는 받고 그 다음 부터는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은지 이틀 후(월요일) 또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받았다.
“전화를 안 받으셔서 저희는 걱정했어요. 혹시 무슨 일 있나 해서요...오늘은 시간 괜찮으세요?”
“네? 무슨 일로...”
그는 토요일에 못 만나서 오늘 교회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6 “형제님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어요.”, “침례 받고 가세요.”

교회는 신촌역 6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안에 있었다. 들어가 보니 꽤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한쪽에는 찬송가 비슷한 것을 부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세미나룸 비슷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노트북으로 그들 교회를 소개하는 홍보 영상물을 보여줬다. 교회의 규모가 크다는 것과 각종 활동을 활발히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상의 끝부분에서는 외국에서 그 교회에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며, 은근히(그러나 티 나게) 민족주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노트북 옆에는 “총회장님이 주신 교훈의 말씀”이라는 것이 있었다. A4로 2장 정도 분량이었는데 말 그대로 교훈적인 말도 있었지만 주로 전도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전도의 열의가 작아진다는 것은, 성령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다”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만났을 때 “형제님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다”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글귀를 보니 갑자기 섬짓했다.
영상이 끝나고는 다시 유월절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결론은 유월절을 받기 전까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침례를 받고 가라’는 것이었다. 침례란 침례복을 입고 몸에 등목 하듯이 물을 뿌리는 것이다. 거절하니 “침례는 원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라며 계속 설득했다. 아무리 취재라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계속 거절하니 “강요하지는 않는다”며 언제든 편하게 와서 놀다가라며 기자를 배웅했다.

/글 이상민 기자 chalddugice@yonsei.ac.kr

/사진 김지영 기자 euphori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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